[Opinion] 삼십팔 원짜리 십 원 [사람]

글 입력 2020.03.1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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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난다. 초등학교 시절 영어 학원 선생님은 우리가 숙제를 해오지 않을 때마다 우리를 ‘십 원짜리’라고 불렀다. 그때의 십 원은 무겁고, 크고 투박했다. 지금처럼 윤이 나지도 작은 장난감 같지도 않았다. 지금 같은 모양의 십 원이 만들어지게 된 건 지극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랬다. 옛날 십 원을 한 개 만드는 데는 38원이 든댔고, 지금은 그것보다는 단가를 낮출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제조비용이 발행액보다 높다고 한다. 참 웃긴 일이다. 십 원을 만들기 위해 십 원보다 더 많은 돈을 쓴다는 게. 그렇다면 퍽 자주 ‘십 원짜리’라고 불리던 나는 삼십팔 원짜리였던 걸까, 십 원짜리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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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십 원짜리로 불리는 삼십팔 원인 것인지, 삼십팔 원으로 만든 십 원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전자라면 왜 내가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십 원어치의 인정밖에 받지 못하는지 억울해했을 테다. 반면 후자라면 나는 십 원짜리인데, 원래의 내가 삼십 팔 원어치의 가치가 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내 그릇의 크기를 탓했을 것이다. 내가 전자일지 혹은 후자일지 잰걸음으로 그 경계를 넘나드는 매 순간이 나를 갉아먹는다. 결국, 나는 삼십팔 원은 무슨, 십 원조차 안 되는 그냥 녹슨 구리 조각이 되고 만다.

 

이 작은 구리 조각은 몸 어디에 박혀있는지는 몰라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튀어나올 듯 나를 괴롭힌다. 내 가치를 증명해내지 못했다는 한이라도 쌓여 만들어진 결석인 양, 나를 목타게 한다. 나는 원래 삼 십 팔 원이나 되는 십 원이야! 라고 외쳐야 할지 아니면 삼십팔 원이나 되는 게 십 원어치 기능 밖에 못 하는 것이 부끄러워 조용히 십 원이 아닌 체해야 할지 전전긍긍한다. 간지럽다. 벅벅 긁어 이 조각을 빼내고 싶다.

 

사실 이 조각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기도 모르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리고, 조각이 상처를 낸 탓인지 간질이는 심장을 짓누르려 엎드려 눕고. 앞서가는 친구를 볼 때면 왜일까, 심장이 쿵 떨어지고. 모두 이 조각이 꿈틀대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했다면 그것보다는 잘 했을 텐데, 하는 후회와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초조함. 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감. 온갖 끈덕대는 미련과 자책 그리고 은근히 남아있는 일말의 희망이 뒤섞인다. 잔돈을 잔뜩 쥐고 있던 손바닥에서 나는 지독한 동전 냄새가 내면에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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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럽의 유명 분수든 뒷산의 작은 연못이든 작은 십 원짜리가 가득 쌓여있다. 다들 어떤 소망을 담아 던져넣었을지 몰라도 각자의 작은 구리 조각을 게워내는 심정이지 않았을까.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취업하게 해주세요. 내 가치가 세상에 드러나는 날을 기다리며 혹은 나의 가치를 뭉개는 세상을 원망하며.

 

밤이 되면 분수에 조명이 켜지고, 가끔은 노래에 맞춰 뿜어나오는 물줄기가 춤을 추기도 한다. 그 현란함 아래 가라앉아 있는 동전들. 동전들도 분수의 물거품에 조금씩 오르내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환호받는 물줄기와 그 아래 동전들을 생각하면 또다시 나와 우리가 떠오른다. 우리도 저 하얀 물줄기를 타고 튀어 오를 수 있을까, 밝은 조명 아래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늘 절망하고 자신을 비난한다. 나는 이 정도뿐인 인간인가, 낙담하고 나는 이것보다는 나은 사람인데, 하고 좌절한다. 마음속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십 원인지 삼십팔 원인지 모를 것이 자꾸만 나를 그저 ‘존재하는 나’가 아닌 ‘끊임없이 빛을 발해야 하는 나’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것을 주머니 어딘가에 쑤셔 놔야 한다. 복권을 긁든, 마트 카트를 끌 때 쓰든, 아무튼 쓸 데가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작은 구리 조각을 품고 살아가자. 깊이 더 깊이 박혀야 이 조각이 꿈틀댄다 해도 나의 내면을 덜 휩쓸 것이다. 깊이 박힐수록 나는 단단해질 것이다.

 

우리는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본능을, 아니면 나의 무가치를 숨기려는 의도를 품고 또 품어서 성장한다. 나는 열등하기도 우등하기도 한 결국엔 보통의 사람이라는 걸, 그냥 나는 순간마다 변하고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걸. 분수를 타고 튀어 올라야 할 동전이 아닌 나 자체로도 하얀 물줄기라는 것을. 우리는 우리가 얼마짜리인지 생각하느라 잊고 있었다. 삼십팔 원인지 십 원인지 모를 것이 결국에는 내 안에 남은 희망이 된다. 나를 어제의 나보다 성장하게 하고 내일의 나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나는 내 마음속의 십 원을 꼭 붙들고 살다가 우연히 작은 분수라도 발견하는 날에 그곳에 던져 보낼 참이다. 그때는 내게 십 원이든, 작은 구리 조각이든 필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히 단단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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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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