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줄곧 중심을 잡는 힘의 청각화. 안예은 정규 3집 [ㅇㅇㅇ] [음악]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연대를 노래하다.
글 입력 2020.03.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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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레이를 못 하는 나는 즐겨 듣는 음악을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배경으로 두어 일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이다. 예컨대 소일거리를 할 때, 책을 읽을 때 듣는 음악이다. 이때 음악은 주목적이 아니지만, 음악이 그 순간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다른 하나는 온전한 집중력으로 소중히 향유하고 싶은 음악이다. 아무런 다른 행동도 하지 않고 아끼고 아껴 듣는 음악. 음악에 노출된 그 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음악 말이다. 안예은의 음악은 후자이다.


또 허를 찌르는 말솜씨가 없는 나는 속 시원한 말이나 글을 경애한다. 나에겐 어렴풋하기만 한 마음속 무언가, 속 시원히 설명하기엔 시간이 꽤 걸리는 머릿속 생각들. 그것들을 누군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와 닿게 가꾸어 낸 표현을 보는 것은 즐겁다. 안예은의 정규 3집 [ㅇㅇㅇ]을 듣는 것이 그러하다.

 


[크기변환]1.jpg

 


안예은의 정규 3집 앨범 제목 ‘ㅇㅇㅇ’은 안예은의 초성을 뜻하기도, 3집을 뜻하기도 한다. 앨범 제목의 형식은 그 색깔이 분명하다. 틀의 구애 없이 자신을 내보이는 안예은만의 색깔. 이러한 색깔은 지금까지 봐 온 안예은의 가창, 가사, 음악에서 모두 나타난다. 안예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앨범 제목부터 존재감을 확실히 한다. 오늘은 이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두 곡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타이틀 곡인 ‘KAKOTOPIA’는 디스토피아의 유의어이자, 유토피아의 반의어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지치게 하는 것들에 의해 지쳐버린 정신이 냉수마찰 당한 기분이었다. 가사 속 현실과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모두 차갑다. 하지만 듣는 내내 마음은 울렁이며 뜨거워진다.


 


 


카코토피아 자체는 허구 세계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곡이 말하는 카코토피아의 구조는 현실을 반영한다. 곡은 바쁜 움직임을 철저하게 표현하며 머릿속에 완벽히 그려낸다. 손을 쓸 수조차 없이 망가진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 전해진다. 하지만 완전한 엉망의 카코토피아에서 도망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아니다. 외면, 도망, 방관은 그 엉망인 세상의 위력을 보다 강력히 실현시킬 뿐이다.


비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을 벗어나는 방법은 회피가 아닌 파괴다. 권력 있는 몰상식의 연합을 일개 구성원이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수의 구성원들이 연대하여 돌진해야 한다. 피가 흐를 때까지 아무리 도망쳐도 유토피아는 나타나지 않고 제자리인 세상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도망가고 맞서자며 노래는 용기를 북돋아 준다. 지치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고, 시든 분노의 불꽃 대신 연대라는 원동력을 심어준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우 에이 우에이야’를 반복하는 코러스다. 곡의 초반부터 후반까지 여러 번 반복되는 이 코러스는 곡의 흐름에 따라 매번 다르게 들린다. 곡이 시작할 때는 잔잔한 호흡같이 느껴진다. 아직 무질서와 질서의 차이에 눈을 뜨지 못한 채 무질서에 익숙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눈을 뜨고 나서의 코러스는 정신없이 도망가는 그의 거친 숨같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후반 ‘도망치지 마’를 외치기 직전의 코러스는 고함을 연상시킨다. 도피가 카코토피아를 탈출하는 방법이 아님을 깨달은 이의 슬픔과 분노가 섞인 고함 같다. ‘난 날아올라’라고 소리친 뒤 다시 반복되는 코러스는 치열한 결투의 소리였다가, 결투가 끝난 이의 숨 고르기처럼 들린다. 이처럼 안예은은 단순한 반복도 하나의 서사로 완성한다.


다음으로 소개할 곡은 5번 트랙 ‘배’이다. ‘배’는 상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몰라 헤매는 이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중간중간 울리는 안예은의 목소리는 파동에 아른거리는 호수를 떠오르게 한다. 그 호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잇는 호수일 것이다. 그리고 ‘배’는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그 사이를 떠돈다.



있잖아 나는 이러다 정말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까 봐
하루 종일 그게 뭐였는지 되감다
그렇게 될까 봐

.
.
.

난 뭍으로 가고 싶어 항해를 끝내줄래
더 이상은 떠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이 이야기의 결말은 아무도 모른대도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아 난 닻을 내릴래

 


개인적으로 이 곡은 [ㅇㅇㅇ]의 다른 곡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담는다고 생각한다. 다른 곡들은 기쁘거나 화가 나는 감정은 물론 슬픈 감정까지도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 분명한 감정들은 확실하게 전달된다.


즉, 안예은은 감정 전달력이 높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가사의 성격과 목소리의 합이 잘 맞기 때문이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배’의 가사는 다른 곡들과 비슷한 성격이 아니다. 감정 자체가 불확실하다. 상대와 함께하고 싶은 것인지, 상대와 마찬가지로 그도 지친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리고 안예은은 이 불확실한 감정마저 확실히 전달한다.


이 두 곡 외에도 [ㅇㅇㅇ]은 아껴 듣고 싶은 곡들로 가득하다. 1번 트랙 ‘속삭임의 회랑’은 공허마저 풍성하게 느껴지게 하고 중간의 웅장한 연주는 뮤지컬 ‘위키드’를 떠올리게 한다. 3번 트랙 ‘도깨비’는 익살스럽게 뛰어다니는 도깨비들의 모습을 차갑고 영롱하게 표현한다. 4번 트랙 ‘꿈’은 후반부 점점 커지는 연주 소리가 악몽에서 깬 후 주체할 수 없이 뛰는 심장 소리를 연상시킨다. 8번 트랙 ‘문어의 꿈’은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은 문어의 불안한 해맑음 같아서 마음을 아리게 한다.


안예은의 목소리는 줄곧 겁 없이 뻗어나간다. 그리고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방식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이런 대담함과 솔직함에 그와 그의 음악을 소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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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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