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 쓰세요?” - “음, 글쎄요.” : 당신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

나에게 글이란
글 입력 2020.03.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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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세요?” - “음, 글쎄요.”

: 당신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나는 글을 쓴다. 문학 작품을 쓰는 데에 처음 본 사람에게 내세울 만한 이유는 없다. 나는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모임에서 내가 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아 자주 나가려고 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과의 만남은 항상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나는 나를 소개할 때 주로 이렇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이고 일 학년입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많은 시행착오 끝에 사람들은 확실히 ‘저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삶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와 같은 재미없는(그들에게) 문구보다는 소속을 밝히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은 내 소개를 들으면 거의 같은 반응이다. “아, 국문학과. 글 잘 쓰시겠네요? 글 쓰세요?”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다. “네. 시랑 소설 같은 문학을 쓰기는 써요.”와 같은 대답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아니요. 글을 잘 쓰지는 않아요.”와 같은 대답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할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나는 내 글쓰기가 이렇게 누군가의 당연한 기대에 충족하는 행위가 아니었으면 한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음, 글쎄요.”

 

유치원 시절 그리고 초등학교에서도 글을 썼지만 그건 생일인 친구에게 편지 쓰기 아니면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비밀 편지쓰기 정도였다. 나에게 글은 길고 지루한 것,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수행평가에서 우연히 글은 나의 문을 두드렸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께서 시를 쓴 다음 쓴 이유를 적어 내는 수행평가를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글에 관심도 없는 아이들에게 시를 요구하는 것이 선생님께도 큰 도전이었을 듯하다. 수행평가 공고지를 집에 들고 가서 한참을 들여다보고만 있으니 엄마는 최근에 했던 일로 쓰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셨다. 최근에 한 일은 팔공산 갓바위 간 것밖에 없어서 나는 할 수 없이 제목을 ‘갓바위에서’로 하고 시를 썼다.

 


갓바위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소원이 하나씩 없어진다.

산바람 들바람에

마음속 욕심

하나, 둘 사라지고

계단이 높아질수록

걷고 있던 나조차 보이지 않는다.

올라와 갓바위를 마주하니

산들바람에 잡념들이 널리 흩날린다.

 

 

지금 보면 나름 담백한 시인데 그때는 너무 못 쓴 느낌에 수행평가 당일에 남들 못 보게 가리면서 썼던 기억이 난다. 수행평가를 한 지 5일 정도 지난 후 국어 선생님께서 다른 수업 시간에 갑자기 교실 문을 열어서 나를 찾으셨다. 다들 영문을 몰라 나를 쳐다보는 상황에서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 “갓바위 시, 진짜 네가 쓴 거야?” 나는 당황스러운 질문에 당연히 제가 썼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나를 잡으시더니 시를 너무 잘 써서 교지에 올라갈 거라며 글 써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으셨다.

 

글에 재미를 붙인 것은, 그 순간부터였다. 한창 방황하고 있던 터라 칭찬이 돌아오지 않던 중학교 2학년의 나에게 선생님의 기대 어린 눈빛과 칭찬은 정말 설렜다. 선생님께서 나를 볼 때마다 작가 할 생각 없느냐고 물으셨고 그때마다 글 안 쓸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 집에 가서 주변 풍경, 사물, 사람을 소재로 시를 썼다.


그리고 웃기게도 현재 국어국문학과에서 열심히 글을 뽑아내고 있다. 처음은 시를 쓰다가 60편 정도 쓰니 긴 글도 쓰고 싶어 대학교 일 학년 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학년인 지금은 서평을 쓰고 있으니 후에는 희곡도 평론도 쓰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내 작품들을 통칭해 ‘글 타래’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글이 실타래처럼 나온다는 의미이다. 쓰는 이유는 모르지만 나에게 글은 내 눈과 같이 소중한 존재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주변을 보고 나와 통하는 모든 것이 글이 되고 참신한 소재가 된다.

   

매번 느끼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너무 많다. 화려한 문장, 수려한 문장을 쓰며 이미 작가 같은 사람도 있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지만 내가 잘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어 자신감이 떨어지고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감탄한 적도 많다. 그래도 나는 나의 의미를 찾아가려 한다. ‘한 명의 누군가라도 내 글을 읽고 느낀 것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내 글의 의미는 충분하다’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그래도 다음에 누군가가 ‘국문학과인데 글을 쓰나요?’라고 물어볼 때의 내 대답은 여전히 같다. “음,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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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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