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꿈을 꾸고 리스트를 알고 싶어졌다 [음악]

글 입력 2020.03.1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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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하고 싶은 한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찾아오리라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을 하고, 사랑하고 싶은 한 시간이 온다는 말이 뇌를 스쳐가 심장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어딘가 모르게 의미심장한 이 말은 단순명료해 보이지만 그다지 명쾌한 해답을 제공해주진 못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하나의 이야기나 한 문장일지라도 그것이 각 개인의 마음에 닿는 순간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어떤 글을 만날 때 그에 대한 느낌은 천차만별이라는 말이다. 혹자는 지금 하고 있는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을 수도 있는 한편,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아직 찾지 못한 외로움에 대한 위로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 일전에 우연히 봤던 명언 하나가 떠올랐다.


 

사랑은 결정이 아니라 감정이다.
누구를 사랑할지 결정할 수 있다면
훨씬 더 간단하겠지만, 그러면 사랑이
마법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 트레이 파커


 

사랑하고자 하는 대상을 넘어 사랑하는 마음 또한 자유자재로 다스릴 수 있다면 참 간편하다. 머리가 시키는대로 결정하고 원하는 만큼의 마음을 맺고 끊는게 가능해지기에 슬픔에 허우적댈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의지대로 되지 않는게 마음이고 의지보다 더 진실한 게 마음이지 않을까. 사랑하고 싶다해서 내 의지대로 사랑이 짠 나타나는 건 아닌 것을 알기에 서론에 언급한 말이 조금은 슬펐고, 그럼에도 저 말이 오래 마음에 머물렀던 이유는 사랑에 대한 진심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 찾아올 미래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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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리스트>

 

 

앞서 언급한 것은 독일 시인 페르디난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이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클래식 <사랑의 꿈>의 가사다. 헝가리의 작곡가 겸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리스트는 페르디난트의 시에 곡을 붙여 <고귀한 사랑 G. 307>, <가장 행복한 죽음 G. 308>,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G. 298> 로 불리는 세 곡의 가곡을 작곡했다.

 

그는 이후 가곡을 편곡해 <사랑의 꿈, 세 곡의 녹턴>이라는 피아노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세 곡의 녹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녹턴 3번 Aflat장조 작품 62-1(G.541-3)은 내게 있어 리스트와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독일의 어떤 노인이건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들으면 젊어지는 느낌이 들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는데, 이처럼 아주 감미롭고 사랑이 싹트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최근 리스트의 곡 중에 계속 반복재생을 하게 만든 매력적인 곡 하나를 알게 되었다. 쇼팽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그와 함께 근대 피아노 기법을 창시한 리스트는 옥타브, 트릴 등 피아노로 가능한 테크닉을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이라는 작품으로, 총 6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3번 <라캄파넬라 La Campanella>가 내가 최근 접하게 된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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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어로 ‘작은 종’을 뜻하는 이 곡은 제목에 걸맞게 경쾌하고 청량한 종소리가 사방에 퍼지는듯한 느낌을 준다. 처음 이곡을 들었을 때 쉴 틈 없는 연주속도에 압도당했을 뿐만 아니라, 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연상되는 옥타브의 사용범위, 그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피아노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듯한 연주에 홀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리스트의 나이 20살 때 그는 당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던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고 엄청난 영감을 받았고,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3악장에서 나오는 ‘종의 론도’를 피아노로 편곡한 것이 바로 라캄파넬라다. ‘나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와 같은 리스트의 파가니니에 대한 경외심이 멋진 곡 하나를 탄생시켰고, 난이도가 아주 높은 이 곡은 초고난도의 손가락 훈련을 위한 피아노 연습곡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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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캄파넬라 악보>

 

 

실제 곡을 분석해봐도 알레그레토 빠르기,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인접한 두 개의 음을 연타하는 트릴 주법의 잦은 사용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리스트의 숨멎는 피아노 기교를 느낄 수 있는 또다른 대표적인 곡으론 12곡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들 수 있다. 곡의 난이도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슈만의 곡에 대한 평가만 봐도 짐작이 간다.

 

 

“이 세상에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10명이나 12명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리스트와 쇼팽 중 대다수 사람들에게 익숙한 음악가는 아마도 쇼팽일 것이다. 이 때문에 리스트와 쇼팽에 대한 일화는 내게 꽤나 충격적이기도 했다. 리스트가 잘생긴 외모와 신들린 연주로 엄청난 명성과 인기를 얻고 있을 당시 쇼팽은 무명 음악가에 불과했다. 어느날 쇼팽의 연주를 리스트가 우연히 듣게 되고 이것을 계기로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뛰어난 재능에도 사람들의 호응을 많이 얻지 못한 쇼팽이 안타까웠던 리스트는 자신의 연주회를 이용해 쇼팽에게 기회를 주고자했고, 연주 후 깜깜했던 공연장의 불이 켜졌을 때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선 사람은 모두가 예상했던 리스트가 아닌 바로 쇼팽이었다. 그 후 쇼팽은 점차 음악적 진가를 인정받으며 눈부신 성공을 거둘 수 있었고 그들은 음악을 함께 논하는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로 남았다.

 

천재적 재능과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명성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게만 심취해있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진 것, 타인의 뛰어난 재능을 훌륭하다고 칭찬해줄 수 있는 겸손함과 진정성, 경쟁자인 친구를 계산 없이 진심으로 위해주는 순수한 우정. 리스트와 쇼팽의 일화를 보며 느끼게 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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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의 관대한 매력을 알 수 있었던 또다른 일화로는 한 무명의 여자 피아니스트의 연주회 이야기이다. 리스트가 어느 지방으로 여행을 갔던 와중 마을에서 리스트의 제자 아무개의 피아노 연주회가 열린다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름의 제자를 둔 적이 없었던 리스트는 의아해했지만 연주회에 참석하기로 하고 그가 온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다. 이 소문은 그날 밤 연주회를 연 피아니스트의 귀에도 당연히 들어갔고 그녀는 불안감과 걱정으로 공연 전 리스트를 찾았다.

 

사실 이 무명의 피아니스트는 병든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연주회를 열어야 했고, 리스트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거짓으로 빌려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도록 한 것이었다. 사건의 전말을 다 알게 된 리스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 후 그녀에게 오늘 밤 연주할 곡을 쳐보게 한 다음 잘못된 부분을 교정해주었다.

 

 

“자 이제는 당신도 분명히

나의 제자가 된 것이오.

그러니까 오늘밤의 음악회는

리스트의 제자가 여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오.”

 

 

죄책감과 불안감에 떨던 피아니스트에게 리스트는 자신의 이름을 이용한 것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 도리어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이 외에도 리스트가 연주회마다 소위 말하는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인기 피아니스트였다는 점이나, 관객에게 등을 보이던 기존 연주 관행과 다르게 자신의 옆모습을 보이며 연주를 시도했다는 것도 재밌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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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의 연주를 보고 환호하는 관객들,

삽화 중간엔 기절하는 여성까지 보인다>

 

 

또한 오늘날 피아노를 학습하는 사람들에게 필수교과서인 체르니의 저자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체르니가 리스트의 스승이었다는 점, 단독 콘서트가 거의 성행하지 않던 당시 단독으로 콘서트를 가지며 모든 곡을 암기해서 연주한 리스트로 인해 리사이틀(Recital, 암송회, 단독연주회)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사랑의 꿈으로만 알던 음악가 리스트에 대해 알아보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놀랄 정도로 갑자기 그가 좋아졌다. 그에 대한 글과 그가 남기고 간 음악만으로도 이렇게 호감도가 급상승세를 보이는데, 눈앞에서 직접 리스트의 멋진 연주를 본 사람들이 마음을 뺏기지 않았을 리가 만무하다. 사랑의 꿈이 꿈과 같은 사랑이 되어 내게도 찾아올 날이 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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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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