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 수업 끝. 복습 시작. [도서]

글 입력 2020.03.08 20: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0교시. 교과서를 펴다.



스스로를 민감한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민감한 건가?’하는 사소한 의문도 품은 적이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나는 아직 수업의 첫날의 출석체크조차 마치지 않았고 그렇다고 예습을 한 것도 아닌 그저 보통의 학생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내가 이토록 민감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은 것을 보면 내가 내린 결론이 틀린 것은 아닌가 보다. 나는 꽤나 민감한 사람이다.


영화를 볼 때나 드라마를 볼 때 다른 이들은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반면 나는 이게 그렇게 울 일인가 싶은 경우가 태반인지라 되려 감수성이 꽤나 죽은 사람이라 여겼다. 이따금 내 감정의 문을 느닷없이 쾅하고 열어젖히는 작품들로 인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터저버린 적은 있었어도 그건 아마 귀띔도 없이 쳐들어온 탓이라 여겼기에 민감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348쪽에 해당하는 글자 수만큼이나 두꺼운 그 보이지 않는 회초리로 내 마음을 사정없이 후려맞은 뒤에야 지금껏 내 삶에 찾아온 힘든 순간의 대부분이 감정적 예민함 탓임을 뉘우쳤다. 나는 ‘과잉 분석형 접근’에 해당하는 민감한 학생인지라 무슨 일을 하던지 생각을 깊게 하고 준비 기간을 길게 가지는 편이다. 플랜 A로는 부족해서 플래니 B나 C, 심할 때는 D까지 마련한 뒤에서야 행동으로 옮기는 때가 많았다.


사실 그 마지막 플랜조차도 불안해서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낸다. 그저 나는 퍽이나 신중하고 계산적인 사람이라 객관적인 자료와 계획이 충분치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것이라 여겼었다. 결론적으로는 그저 감정이 지나치게 민감한 것조차 모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올바른 파악조차 못 내린 말로만 이성적인 부진아였음에 속이 꽤나 쓰리다.


25년의 인생만큼의 향이 배인 걱정, 슬픔, 분노, 불안함 따위가 섞인 민감함을 마주하자니 코를 찌르는 독한 향에 취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나의 민감함을 제대로 보고 마주하라 다그치며 물을 끼얹는 민감한 사람, 정서적인 사람, 정체성 따위의 단어를 덕지덕지 붙여놓고서 나를 날카롭게 째려보는 이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단어들이,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객관성이라는 화풍으로 그려진 그 단어들이 사정없이 내 뒤통수를 찔러대니 정신을 잃을 수도 없었다. 덕분에 졸지 않고 무사히 수업은 마쳤으니 다행이다.

 



0교시. 문제집을 펴다.



수업이 끝나니 어쩐지 마음이 허했다. 그동안 내가 원인조차 모르고 시달렸던 그 모든 행동의 근원이 단순히 내 안의 민감함 단 하나였음이 시시하기도 했다. 어떻게 여태껏 내 속에 그리도 잘 숨어 있어나 대단하기도 했다. 왜 나는 그걸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싶어서 미련하기도 했다. 이제는 찾아냈지만 이걸 가지고 있어야 하나 내다 버려야 하나 하는 또 다른 고민을 짊어져버렸다. ‘민감함’에 대해 풀어내라는 짧고도 간결한 단 하나의 문제만 주어진 이 문제집에 어떤 답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답안지는 또 왜 이리도 두꺼운지 모르겠다.



정서적으로 예민하다는 것은 삶의 선물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한다. 감정에 압도당할 때가 많다면 예민함을 선물로 생각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예민한 사람들이 갖기 마련인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 강렬한 기쁨, 깊은 유대감, 자연을 향한 열망 등은 당신의 삶에 의미와 만족감을 더해준다.


따라서 정서적 민감성을 삶의 선물로 느끼고 활용하려면 우리는 격렬한 감정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불편한 감정에 대처하는 건강한 방법을 익히고, 혼란과 불안 속으로 자신을 더욱 깊숙이 몰아넣는 대신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현명한 행동을 선택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손이 많이 가는 아이를 봐달라는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쓴 소리를 서슴지 않는 친척들을 집에 초대하거나, 공과금을 낼 돈이 없을 정도로 쇼핑을 계속 하거나, 과식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함을 친다면, 당신은 지금 자신의 감정을 현명하게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의미이다.


_10쪽



어디가 마지막 페이지인지 모를 만큼 끝도 없이 두꺼운 답안지에 나는 짧고도 간결한 답을 어렵고도 힘들게 적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련다. 그 이상의 답을 생각할 수가 없었기에 내 나름의 최선이었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채점을 해보니 만점이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출제자고, 학생이고, 채점 자니까. 내 안의 민감함을 어떻게 가져갈지는 나 말고는 아무도 정할 수 없으니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처음 내가 민감한 사람임을 인식했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앞으로 이 민감함 때문에 얼마나 더 피곤한 삶을 살게 될는지 걱정했다. 지금도 어려움에 시달리는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더 많은 어려움을 만날지 걱정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고 넘길수록 그 걱정은 사라졌다. 민감함을 받아들이고 익식 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말 그대로였다. 나는 민감하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피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민감하기에 다른 이들은 놓치는 슬픔을 발견한다. 나는 민감하기에 다른 이들은 흘려보내는 행복을 잡아낸다. 나는 민감하기에 다른 이들은 그저 그렇게 넘길 분노를 느낀다. 나는 민감하기에 다른 이들은 무뎌진 기쁨을 느낀다. 나는 민감하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다채롭게 내 삶과 시간을 칠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민감하다. 정서적으로 민감하다. 감정적으로 민감하다. 그리고 나와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 또한 민감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과 나를 포함하여 하나의 범주로 묶어두고 민감함이라 적었다 삭선을 두 줄 정도 무심하게 그어버렸다. 지워진 민감함 위에 ‘섬세하고도 다채로움’이라 다시 적는다. 아무렇지 않게 수정한 답안지에 다시 한 번 만점을 주고나니 어느세 0교시는 끝났고 나는 홀가분하게 쉴 수 있었다.

 

 

민감-입체.jpg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

 

지은이 ․ 캐린 홀

 

옮긴이 ․ 신솔잎

 

분야 ․ 인문학 > 심리

 

발행일 ․ 2020년 2월 7일 

 

판형 ․ 130*200

 

면수 ․ 348쪽

 

값 ․ 16,000원

 

ISBN ․ 979-11-88545-77-3 (03180)


 

김상준.jpg

 


[김상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