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넘어가는 달력, 시작과 끝 같은 것들에서 오는 변화를 민감하게 맞는 사람이다. 매번 같은 이름으로, 매년 비슷한 시기에 돌아오고 또 가는 것이 계절이며 또 달력의 숫자 같은 것들이겠지만, 지구가 생긴 뒤로 지금껏 단 한 번도 같은 날씨였던 적이 없었다는 노래 가사는 내가 다시 돌아올 그들을 오늘도 기다리는 이유가 되어준다.
그리하여 내게 계절이란 책이며 영화고, 음악이며 축제다. 언젠가 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매년 계절에 대한 감상들과 나만의 감상법들이 달라졌다.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계절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는 건, 아직 덜 자란, 덜 단단한 내가 세상에 지레 겁을 먹고 경계와 의심으로 마주하는 불안한 하루를 잠시나마 쉬어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 시간은 정확히 무어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막연한 믿음과 희망으로 채워지는 시간이라고 불러보면 괜찮을 것 같다.
그리하여 또 계절이란 사람이고, 곧 향이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 근처로 어떤 계절의 기운이 자연히 몰려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봄일 수도 있고, 여름일 수도 있으며, 가을, 겨울일 수도 있다. 두 계절의 중간 어디쯤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각자가 겪어온 다른 경험과 감상들로 만들어진, 어떤 풍경과 향과 기억이 묻어있는 계절의 형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떠올려준다면 그 형태가 계절이면 좋겠다는 혼자만의 바람이 있다. 어떤 계절, 어떤 향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만의 색과 향이 짙은 사람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내가 읽고 듣고 써내려가는 것들로부터 풍기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 피천득, 「오월」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하지만, 그와는 또 다른 이유로 5월을 기대한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오월이 되면 떠오르는 할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피천득의 짧은 수필 「오월」을 읽고, 또 그걸 옮겨적는 일이다. 이 수필을 읽게 된 건, 즐겨듣던 음악이 이 수필로부터 영감을 받아 쓰인 거라는 인터뷰를 읽고 나서다.
왠지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고등학교 3학년과 스무 살 즈음까지 가수 심규선의 ‘5월의 당신은’이라는 곡을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말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조금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당시엔 곡에 이입한 나머지 한동안 5월에 태어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러한 기억들로부터 이 글을 매년 찾게 된다. 대개 무언가에 애정을 갖게 되는 일은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로부터 자주 온다. 스무 살의 기억과, 그다음 해 그러니까 5월생을 찾아다니는 일은 그만두었지만 여운은 놓지 못했던 스물한 살의 기억은 5월을 찾게 되는 이유가 되어준다. 물론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지나간 과거들이 그러하듯 그 시절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로써 떠오른다. 그런 표정을 앞으로 다시 지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불현듯 밥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밥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 피천득, 「오월」 중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남자는 숙성시킨 반죽을 꺼내 밀대로 반죽을 밀고, 일정한 굵기로 한참을 썰었다. 그렇게 반죽부터 양념을 만들고 육수를 끓이는 과정까지, 한 대접의 국수가 나오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피천득, 「오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