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시절 우리는 우리의 새크라맨토에서 성장통을 겪었다 : 레이디버드 [영화]

우리는 성장에는 늘 엄마의 존재가 있었다.
글 입력 2020.03.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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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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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 사춘기 시기에 갑작스러운 성장으로 모두가 한 번쯤 겪게 되는 통증이다. 대개 성장통이라 함은 신체의 성장으로 인해 발현된 통증을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레이디버드>를 논할 때에는 '정신적 성장통'을 위주로 말하고 싶다.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파생된 감정들로 인해 우리는 정신적 성장통을 겪는다.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사실 꿈(이상)이라는 것은 이룰 수 없는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삶에서 이 같은 정신적 고통을 필연적으로 마주하고 그 고결한 숙명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영화 <레이디버드>이다.

 

 


레이디버드, 현실에 대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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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이름은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이다. 이름 중간의 '레이디 버드'는 그녀가 자신에게 부여한 미들네임이면서, 그녀가 정신적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요소이다. 왜냐하면 레이디 버드라는 미들네임 속에는 그녀의 현실 부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실직한 아버지, 변변찮은 직업이 없는 오빠. 주립대 등록금도 아깝다며 동부 대학에 가길 반대하는 엄마. 이런 걱정거리가 가득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새크라멘토를 벗어나고 싶은 그녀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은 부유하지 못한 현실 안에서 자신을 한정 짓는 모든 것들에 대한 부정이자 자신에 대한 거부 그 자체이다.


사람에게 이름이 주는 의미는 크다. 누군가가 나를 인식하게 되는 첫걸음이자 다른 이와의 구별점으로 앞으로 평생 불리게 될 나의 표지어이다. 그 이름이 주는 중대함을 우리 모두 알기에 자식 이름을 지을 때면 몇 날 며칠 고민의 밤을 지낸다거나, 철학관에 가서 비싼 돈을 주고 이름을 받아오기도 하지 않는가. 내 이름은 은혜 은 곧을 정으로 다른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마음의 뜻이 흔들림 없이 바른 이로 자라길 바라는 할아버지의 염원을 담아 지어진 이름이다.


하지만 나는 은정이라는 이름은 너무 평범하고 이름 세 글자에 모두 받침이 있는 것이 싫었다. 한때는 나 또한 크리스틴처럼 나만의 '예명'을 만들곤 했었는데, 내가 좀 더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그 두 글자에 꾹 눌러 담아 마음속에 간직하곤 했다. '레이디 버드'라는 그녀의 이름에도 현재 현실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오르고픈 그녀의 소망이 담겨있다.

 

 

 

엄마,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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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살면서 싸워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특히 딸이라면 엄마와의 빈번한 갈등은 대부분 겪어봤을 것이다. 영화 <레이디버드>에서는 엄마와 딸의 첨예한 갈등 상황을 현실감 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엄마와 딸의 갈등은 정말 '갑작스럽게'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데, 영화 초반부에 크리스틴과 그의 어머니가 차 안에서 오디오북을 들으며 서로 감동받다가 갑작스레 흘러나온 크리스틴의 진로 이야기로 갈등을 빚는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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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크리스틴과 그의 어머니 매리언 맥퍼슨의 갈등 장면을 볼 때마다 나와 나의 엄마의 갈등이 떠올랐다. 다른 애들에게 뒤져지길 않길 바라셨던 엄마와 그런 경쟁이 힘겨웠던 나. "선생님께서 너는 타고난 머리가 있어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데 왜 노력을 안 해? 너는 다른 애들처럼 학원 안 다녀도 좋은 점수가 나와서 다들 널 부러워하는데 왜 안 하느냐고" 엄마의 바람은 조금만 집중하고 노력하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음에도 노력하지 않는 내가 석연치 않으셨던 것이다.


딸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셨던 엄마의 간절함에서 나오는 충고였을지언정 나는 이상하게도 점점 청개구리처럼 구는 습관이 있었다. 영화에서 그녀의 어머니 매리언이 크리스틴에게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랐듯, 나의 어머니도 나의 최고의 모습을 바라셨다. 하지만 나 또한 그녀와 똑같은 답을 내놓았다. '엄마,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내게 모든 걸 맡기셨다. 그리고 나는 공부가 영 맞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부모님께 창피하고 싶진 않아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했고 그냥저냥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을 졸업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엄마의 잔소리가 참 듣기 싫었지만 '엄마 말이 모두 옳다 할 수는 없지만, 틀린 말은 없었다'라고 납득하게 되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더 많은 기회들이 찾아오는 건 사실이니까.


매리언이 딸의 동부 대학 입학을 결국 허락하게 된 것처럼 나의 엄마는 나를 '사랑'하기에 어느 순간 나에게 모든 걸 맡겼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방황하는 걸 보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녀의 그런 결정은 '적어도 창피한 딸은 되지 말아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게했다. 그 순간들이 내겐 크리스틴과 같은 성장통의 과정이었다. 엄마와 딸은 이런 관계인 것 같다. <분노의 포도>라는 오디오북을 들으며 같이 눈물을 흘리다가도 1분도 안 돼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만 골라 어떨 땐 전생의 악연이 만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좋은 것을 보면 '같이 와야지'하고 생각한다거나 하는. 엄마와 딸의 관계는 그렇게 서로 한없이 상처 주면서도 한없이 품어주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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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전해졌던 것일까? 대기자 명단에 있던 동부 대학에 그녀는 최종 합격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다시금 어머니와 갈등을 빚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어디 있냐는 말이 있지 않던가. 결국 크리스틴은 엄마의 허락을 받아 동부 대학을 입학하게 된다. 영 따분하고 답답했던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나 그녀에게 유토피아와도 같은 뉴욕으로 드디어 떠나게 된 것이다.


문화의 도시 뉴욕에서 자신의 인생이 미들네임 '레이디 버드'처럼 한없이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의 뉴욕 생활은 마냥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도착한 첫날 새크라멘토에서도 늘 해오던 파티,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끝에 결국 만취한 채 응급실에 실려와 화장이 잔뜩 번진 얼굴로 아침을 맞는 그녀이다. 어쩌면 고향 새크라멘토에 있을 때만큼이나 또 다른 절망에 빠진 사람 같다. 그렇다. 사실 그녀에게 뉴욕은 그녀의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도피처였을 뿐, 뚜렷한 목표 없이 발을 옮긴 뉴욕은 이제 그녀에게 유토피아가 아닌 또 다른 새크라멘토가 되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뉴욕이란 그녀가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양한 인종이 있고 많은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뉴욕에만 가면 뭐든지 잘 풀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도망친 공간에는 또 다른 현실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녀는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시련들을 마주할 것이고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녀가 상상하던 이상적인 행복은 장소의 변동과 막연한 시간의 흐름에서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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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처음으로 차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새크라멘토의 정겨운 풍경을 봤어.엄마도 매일 이런 풍경을 봤었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오랜만에 들른 새크라멘토는 아름답고 정겹다. 분명 항상 떠나고 싶어 했던 지긋지긋한 풍경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나고 자라온 곳의 소중함은 떠난 후에 절실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녀가 성장통을 겪었던 새크라멘토는 이제 그리운 곳이 되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그녀는 이제 '레이디 버드'라는 미들네임을 사용하지 않게되었다. 이는 그녀가 허상을 쫓던 고등학생 사춘기 소녀에서 벗어나 크리스틴 맥퍼슨으로서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성장통을 견디고 비로소 성인이 된 것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의 시나리오 가제는 '엄마와 딸'이었다. 거윅감독은 시나리오에서 딸의 성장통 과정에서의 딸과 엄마의 관계성에 초점을 잡은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딸의 치기 어린 행동과 불만 속에도 엄마는 결국 나를 한없이 품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그 시절 나의 마음을 몰라주던, 나를 좋아하긴 하는지 의문이 들던 '엄마'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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