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맨덜리 저택 둘러보기 (2) [공연예술]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본 뮤지컬 <레베카>의 이모저모
글 입력 2020.03.0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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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막심 드 윈터



막심 드 윈터는 주인공 '나'의 아내이자 맨덜리 저택의 주인이다. 막심은 상류층 인사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나'의 '순수함'에 반해 '나'와 결혼한다. 전처였던 레베카를 죽였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는 '나'가 불안에 떠는 자신을 사랑으로 안심시켜 주길 원한다.

 

 

과거가 날 짓누를 때

사랑을 보여줘

너를 믿게

내 마음 잡아줘


- 하루 또 하루 中

 

 

그러나 막심은 '나'에게 순수한 사랑을 요구하면서도, 트라우마에 사로잡힐 때마다 '나'에게 분노를 표출하거나 '나'를 거칠게 미칠면서 폭력을 행사한다. 영국 최고의 신사로 인정받는 막심이지만, 그는 사실 트라우마를 핑계 삼아 그보다 어리고 약한 ‘나’에게 광기와 분노를 표출하는 비겁자일 뿐이다. 겉으로는 언제나 귀족적이고 품위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막심이 약자 앞에서는 괴물 같은 존재가 되는 장면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는 점이 씁쓸하기도 하다.


문제는 뮤지컬 <레베카>가 이러한 막심을 온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막심이 '나'에게 보이는 폭력성을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레베카>는 공포에 떠는 막심의 '비극적인 처지'를 강조하며 살인이라는 범죄를 아내와 함께 극복해야 할 역경에 불과한 것으로 만든다. 또한 막심의 누나 베아트리체의 대사 중 ‘(막심은)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라는 말에서 보여지듯, <레베카>에서 막심의 폭력적인 성향은 그저 그의 성격의 일부로 여겨진다.


남성 캐릭터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내세워 약자에게 가하는 신체적, 정신적 위협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기에, <레베카>가 아내를 살해한 막심에게 보내는 동정적인 시선은 상당히 문제적이다.

 

 

2-1.jpg

 


같은 맥락에서 <레베카>의 결말 또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뮤지컬 <레베카>는 막심의 범죄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맨덜리 저택이 불타는 장면과 함께 일단락시키고, 막심과 '나'가 트라우마를 '극복'한 후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장면과 함께 막을 내리는데, 이러한 결말은 아내를 살해한 막심의 범죄를 용서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는 원작 소설과도 반대되는 설정이다. 원작 소설 <레베카>는 맨덜리에 불이 났다는 암시와 함께 끝을 맺을 뿐 아니라, 소설의 첫머리에서 묘사되는 화재 사건 이후 막심과 '나'의 삶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것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품이 캐스팅 보드나 커튼콜에서 주인공인 ‘나’나 관객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댄버스 부인이 아닌 막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보내는 것은 부당하다. 막심은 캐스팅 보드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커튼콜에서는 댄버스 부인과 ‘나’가 소개된 후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


하지만 막심은 <레베카>의 주인공도 아닐 뿐더러, 댄버스 부인처럼 작품에서 주인공만큼의 존재감을 뽐내는(혹은 뽐내야 하는) 캐릭터도 아니다. 막심이 나이가 많은 남성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캐스팅 보드와 커튼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 시정되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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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는 작품의 나레이터이자, 막심과 결혼한 후 맨덜리 저택에 들어와 작품에서 묘사되는 모든 모험을 겪게 되는 당사자이다. 특정 이름이 아닌 대명사(나)를 통해 소개되는 ‘나’의 자아는 맨덜리의 위압감 속에서 늘 불안하다. ‘나’의 미약한 자아는 단 한 번도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지만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는 인물 레베카와 대비된다. 불안과 공포 속에 놓여 있는 ‘나’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들려주는 사건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작품의 스릴감을 증폭시킨다.


작품으로부터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나’는 아마도 정체성이 다 확립되지 못한 어린 여성일 것이다. 이러한 ‘나’는 맨덜리에서의 모험을 겪으며 점점 성숙한 개체로 성장해 가는데, 우리는 ‘나’의 성장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나’의 성장이 남편인 막심의 범죄를 그와 함께 은폐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작품의 주제로 설정한 것은 좋지만, 남편의 범죄를 합리화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성장이라 말할 수 있을까?

 

 

3부에서 계속.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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