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성장통 들여다보기, 소설 '작은 아씨들'
글 입력 2020.03.0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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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았다./얼마 전, 영화 <뮬란>을 다시 봤다. 거의 10년 만이었다. 다시 본 뮬란은 묘하게도 내게 다른 느낌을 주었다. 어릴 적엔 뮬란이라는 작품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 없었다. 뮬란이 무슨 이유로 저리도 슬퍼하는지, 또 어떤 사유로 자꾸만 저지당하는지.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했다. 그저 노래가 좋고 재밌다는 생각만 했다. (물론 알지도 못하는 사이 내게 영향을 주었겠지만)오랜만에 다시 본 <뮬란>에서는 전장에 나가 싸우는 주체적 여성이 보였고, 그런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가 보였으며, 동양에 대한 디즈니의 몰이해도 보였다. 작품은 그대로인데, 감상은 놀랍도록 달랐다. 감상이 달라진 이유는 분명했다. 시대의 변화, 그리고 그 시대와 함께 성장한 나 스스로의 변화 때문이었다.<작은 아씨들>도 마찬가지였다. 라임 절임을 좋아하던 에이미의 나이 즈음, <작은 아씨들>을 처음 만났다. 그 때의 내게 <작은 아씨들>은 한 가족의 성장과 사랑의 이야기였다. ‘조’라는 인물에 동조하며 팬으로 소설 속 인물을 좋아했다. 어느덧 나는 우산 아래 조의 나이가 되었고, 새로운 번역으로 이 책을 다시 만났다.내 감상이 동전 뒤집듯 바뀐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라임절임을 좋아하던 에이미의 나이에서 우산 아래 조의 나이가 되기까지, 그 사이 시대가 바뀌었고 내 안목이 바뀌었다. 그대로인 이야기 속에서도 다른 감상을 느꼈고 처음 보는 생각을 마주했으며 새로운 키워드를 발견했다. 덕분에 나는 ‘작은 아씨들’의 성장통은 물론 나 자신의 성장통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작은 아씨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연애와 결혼 속에서 난 그저 재미만을 찾았다. 하지만 다시 만난 소설 속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을 목격했다. 고전 혹은 시대물이라 부르며 옛것이라 그렇겠지 싶었던 것들 속에서 이제야 진실이 또렷이 보였다. 여성의 행동거지부터 꿈, 여성의 가난부터 결혼. <작은 아씨들>은 당시를 살아가며 여성들에게 빼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긴 소설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결코 당시에만 국한되지 않고 150년을 뛰어넘어 현재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로 남아있었다. 왜 여성은 얌전해야 하는가? 왜 여성은 결혼을 해야 하는가? 15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잔재한 씁쓸함을 되짚었다.“내가 남자애였으면, 너랑 같이 가출을 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거야. 하지만 비참하게도 난 여자야. 집에 얌전히 머물면서 처신을 바르게 해야 하는 여자. 그만 꼬셔, 테디. 정신 나간 계획일 뿐이야. (중략) 난 여자라서 고상한 척하면서 살아야 해. 어떻게든 순응하고 살아야 된단 말이야. 난 너를 설득하러 여기 왔지, 내 처지를 상기시키는 말을 들으러 온 게 아니야.” -p.424
“돈을 벌려면 남자들은 일을 해야 하고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해. 정말 지독하게 불공평한 세상이야.” -p.319
여성으로 태어난 본인의 처지를 확인하는 조와 가난에 몸서리치는 메그의 말이다. 여성의 행동거지는 제한되어 있었고, 여성의 결혼은 곧 여성의 경제 상황과 맞닿아 있었다. 여성은 얌전히 굴다가 결혼으로 가정을 꾸려야 했다. 그 것이 당연시 되던 사회였고, 그 안에서의 여성의 결혼은 하나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대고모는 자매들에게 부자들과 결혼해 집안을 살리라고 말한다. 결혼이 장사라도 되는 것처럼. 이건 선택권의 문제다. 선택권이 주어졌느냐 주어지지 않았느냐의 차이.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사람들은 설교가 아니라 재미를 원합니다. 도덕적인 얘기는 요즘 안 팔려요.” -p.680
“네 글에는 진실이 담겨 있어. 그게 비결이야. 유머와 비통함도 생생하게 살아 있어. 이제 너만의 방식을 찾은 거야. 넌 유명세나 돈을 바라지 않고 진심을 담아 글을 썼어.” -p.844
여성의 행동과 결혼뿐 아니라, 창작에 관해서도 전달해내고 있는 바가 많았다. 작가 지망생인 조는 글 기고에서 여러 난관을 맞이한다. 돈을 벌기 위해 재미거리로만 읽히는 쓰레기 소설을 쓰고, 출판사의 입맛에 맞춰 본인의 글을 절단해낸다. 그 과정에서 돈을 제법 벌지만, 본인 스스로 떳떳해하지 못한다.그런 조의 모습은 독자인 나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어떤 글을 써야하는지, 글은 독자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중요한 것은 돈인지 신념인지. 신념이 더 중요하다면, 과연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을 할 수 있을지. 조 마치가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이 투영되어 만들어진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글이란 근본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고민을 남기는 독서였다.작은 아씨들은 내면이 물질보다 중요하다는 윤리를 가슴에 새기며 성장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자신 역시 어떤 착오와 깨달음을 겪고 성장해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유년 시절은 끝났다. 잊고 있다가도 문득 깨닫는다. <작은 아씨들>은 자매들과 함께 자랐던 시기에 대한 그리움, 흐릿해져가는 추억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스위치였다.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슬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할 수 있다는 감사함이 교차되는 독서였다. 긴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은 책은 새로운 감회를 준다. 데미와 데이지를 학교에 보낸 메그의 나이쯤 되었을 때, 베스를 안아주던 마치 부인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 때쯤 다시 읽으면 또 어떤 감상을 남길까. 내 책장에 두고 꾸준히 꺼내보고 싶다.영화로만 <작은 아씨들>을 접한 사람이라면, 꼭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영상으로 담아낼 수 없는 무엇이, 소설에는 있다. 조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에이미가 느낀 감정은 어땠는지, 영화로는 다 표현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들을 글은 고스란히 전달해내고 있다. 영화에 그치지 않고 글로 계속 읽히는 <작은 아씨들>이 되길 바라며, 아직 읽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특히 이번 윌북의 <작은 아씨들>은 젊은 여성번역가의 완역으로 군더더기 없이 읽기 좋았다. 같은 시리즈로 나온 <빨간 머리 앤>, <하이디>, <작은 공주 세라>도 함께 읽어보면 더 없이 좋겠다.작은 아씨들_걸 클래식 시리즈원제
Little Women저자
루이자 메이 올컷옮긴이
공보경분야
문학 > 영미소설 / 고전펴낸곳
윌북발행일
2019년 7월 30일면수
968면판형
124*178mm정가
15,800원ISBN
979-11-5581-217-4 (02840)[이주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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