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잘 때마다 시간이 6일씩 흐르기 시작했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도서]

심너울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글 입력 2020.03.0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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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총 5편으로 이루어진 심너울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이다. 2018년 6월에 첫 소설을 시작으로 그는 2019년 12월까지 무려 21편의 작품들을 펴냈다. 1년 6개월 남짓한 경력이지만 문장에는 그의 색채가 짙다. 문체가 간결하다. 술술 넘어가는 그의 이야기들은 한자리에서 3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한 편을 삼키고 나면 그 여운이 혀 곳곳에 진하게 남아서, 그것을 여한 없이 곱씹을 때까지 다른 것을 맛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꼭 어디선가 일어날 법한 일들이다. ‘생계 밀착 SF’라고 할까. 과학이 발전하면 삶의 질도 한껏 높아질 거란 기대는 버린 지 오래지만, 용의 세포를 손에 넣고 마력을 통제할 수 있는 ‘또 다른’ 대한민국에도 반복되는 부조리를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착잡하다. 이건 소설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 현실은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테니.

 

소설의 모든 지명은 실제 존재하는 곳의 이름과 동일하다. 마포구, 서대문구, 백마역, 관악산. SF 소설 주인공은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큐를 가지고 있다든가, 남들에게 없는 슈퍼 파워가 있다든가 하는 줄 알았다. 마포구와 백마, 관악산 부근에 살고 있는 주인공들은 꼭 나를 보는 것처럼 지극히 평균적이고 지극히 평범하다. 월세 집 보증금 때문에 학교에 발이 묶이고, 악명 높은 경의중앙선에 오르고, 이 회사 저 회사 찔러보고, 머릿속에서 상사를 잘근잘근 씹어대는 모습이 꼭 나다.

 


많은 학자들이 이 기묘한 침묵 현상에 달려들어서 세부 상황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일단, 마포구와 서대문구를 빠져나가면 소리가 들렸다. 구분선은 정확히 행정상 경계 그대로였다. 가양대교, 성산대교, 양화대교, 서강대교를 반쯤 지나면 갑자기 소리가 뚝 끊기거나 확 풀려났다.


p. 13 <정적>


 

90년대에 태어났다는 심너울 작가의 인물 묘사는 같은 세대를 걸어온 나에게 다분히 사실적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의 작은 비틀림은 더욱 실제처럼 느껴진다. <정적>에서 마포구와 서대문구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일은 실제로 일어날 법 하지 않은가? 생각보다 사회는 촘촘하게 엮여 있어서 소리라는 연결 고리 하나만 끊어져도 사람들은 쉽사리 공포에 빠진다. 하지만 애초에 사회가 고리 속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그래서 배제되었던 청각장애인에게 그 끊어짐이 큰 대수겠는가.

 

 

“저게 인공 달팽이관이거든요.”

 

“인공 달팽이관이라고요?”

 

“지하철 기다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저걸 건드려요. 신기하다면서.”

 

갑자기 얼굴에 몰린 피가

확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정말로 그러는 사람이 있다고?

 

 

다시 소리가 돌아왔을 때 그는 서럽게 울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다는 것은 이 둘이 동등한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이동권 보장, 자막 방송은 비장애인이 베푸는 너그러움이 아니라 그들 또한 한 사람의 국민으로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다. 잠시나마 실현되었던 정의가 다시 박탈되었을 때 그 상실감은 어떠했겠나. 그가 ‘왜인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났던’ 이유는 소리가 돌아옴과 동시에 다시 생겨버린 격차가 너무 생생히 느껴졌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것은 땅값이든, 시선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우리를 찌를 것이다.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재치 있다. 유머러스하다. 과장된 현실로 쓰인 허구가 웃음을 준다. 생기 없는 사람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모습에 분명 소름이 돋아야 정상인데. 절규하듯 역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우습다. 대부분 연착되는 열차에 역에 묶여버리지만, 성하리만큼은 예외다. 오히려 연착으로 창작의 원동력을 얻고 있으니,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경의중앙선은 다른 열차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라 배차 간격이 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절규와 창작이 꽃 피었겠는가. 참 아름다우면서 슬픈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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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분명히 어제는 금요일이었는데. 김장 행사 때문에 하루 종일 김치를 날랐는데.


잘 때마다 시간이 6일씩 흘렀다. 금요일 밤에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다음 주 금요일 아침이었다. 세 번의 연속된 금요일과 두 번의 시간 도약을 경험하고서야, 현은 그 비현실적인 현상이 실제임을 받아들였다.


p. 74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정적>,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가 심너울 작가의 이름을 알렸던 초기작이라면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신화의 해방자>, <최고의 가축>은 이번 소설집을 위해 새로 쓰인 이야기들이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에서 분명히 모든 날이 금요일만 같아라고 생각하던 그에게 정말로 금요일만 끊임없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다른 6일이 없는 금요일은 더 이상 황금 같은 요일로 기능하지 못한다. 쾌를 위해 고통이 있어야 하고 고통을 위해 쾌가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스켄데룬은 온갖 진귀한 음식들의 향과 맛을 즐기면서 의문을 품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간은 용에게 있어 최고의 가축이었다. 굳건한 계약 아래 인간은 용에게 식량과 보물을 바쳤고, 용은 외부의 침범으로부터 인간들을 보호했다. 인간의 능력이 이토록 자랐다면, 분명히 인간은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터였다. 그들의 새로운 요구사항은 과연 무엇일까?


p. 130 <최고의 가축>


 

<신화의 해방자>와 <최고의 가축>은 시간 차이를 두고 서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인간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이야기 아닌가.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용이다.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그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뒤 변화한 세상 속에서 인간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간다. 다른 작품과 달리 조금 빠른 템포로 읽게 되었는데, 두 마리의 용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날아다니고 뿜어대는 보라색과 붉은색의 연기, 그리고 비늘을 들여다보느라 덩달아 눈과 마음도 빠르게 날아다녔다.

 

 

“왜 실험동물들을 다루는 데 대한

여러 윤리적인 규칙들이 있잖아.

 

필요 없는 고통을 주면 안 되고,

가능한 희생을 최소한으로 해야 하고.

 

사실 그런 규정이 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어짜피 죽는 건 매한가진데 말이야.”

 

 

셀트린이 용아 세포를 조직세포로 분화시키기 위해 쥐에게 용의 조직을 이식하는 것은, 인간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잘못을 좀 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나라 경제를 살리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말이다. ‘실험용’이라고 이름 붙여진 쥐는 말 그대로 실험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발전과 경제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인다. 먹이사슬의 상위층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이 아래의 동물들을 착취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용의 세포가 박혀있는 쥐는 어떨까. 순간 이동을 하고 거대한 마력을 내뿜는 쥐는 먹이사슬에서 인간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아닌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은 그들이 더 우월했기에 정당한가? 이스켄데룬은 인간과의 ‘합의된 계약 관계와 주체적으로 결정한 것’을 만족스러워한다. ‘참으로 탁월하고 평화적인 결론’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찜찜한 마음이 남는다. 평화적인 결론 뒤의 ‘실험용’들은 언제쯤 합의와 주체에 대해 인간과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유소현의 가방에 있던 그 쥐한테는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야. 용 DNA의 발현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겼던 것 같아. 사실 그 쥐는 이미 쥐보다는 아르마딜로 같은 모습이었어. 온몸의 조직이 용의 조직으로 변하고 있었거든. 아마 연구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소현의 가방 속으로 순간 이동해 들어가지 않았나 싶기도 해. 누가 자기를 잘 보살필 사람인지를 알아보았던 걸까?


p. 97 <신화의 해방자>


 

단편집은 짧지만 그래서 더 여운에 남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심너울 작가는 같은 레시피 속에서도 본인만의 손맛을 가지고 있어 좋다. 일상처럼 지나갈 수 있는 일은 그의 손맛이 더해져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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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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