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커서 뭐가 되고 싶나구요? 그냥 아무나 될래요.

어떤 꿈을 꿀지는 내 마음이잖아요?
글 입력 2020.03.02 05:5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숱하게 듣던 말. 저 말을 들으면, 내가 꼭 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큰 꿈을 꿨다.나를 비롯한 반 친구들의 꿈은 매우 다양했다. 선생님, 가수, 발레리나, 대통령, 경찰 등 우리나라의 직업군은 거의 다 나온 것 같다. 가끔 꿈이 없거나 어른들이 보기에 좋지 않은 꿈을 적은 아이들은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이 없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닌데 말이다.

 

멋있는 사람을 보면, 나도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친할아버지는 소방관이셨는데,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하는 할아버지가 너무 멋있어서나도 할아버지처럼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 내가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소방관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실감하기 시작했다. 나는 소방관이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나는 일단 여잔데, 여자가 소방관이 되는 건 쉽지 않았다. 물론 여자 소방관도 있지만, 그건 거의 드문 일이었고 체력이 정말 좋거나 특출난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난 소방관이 되는 걸 포기했다.

 

그렇게 소방관이라는 첫 번째 꿈을 포기한 나는 다시 꿈을 꿔야 했다. 장래희망란에 무언가를 적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다음으로 꾼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우리 엄마는 피아노를 아주 잘 치셨고, 결혼 전에 피아노 학원에서 일을 할 정도로 피아노를 잘 쳤다고 한다.나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본 우리 순진한 부모님은 내가 절대음감이라며 나를 어릴 적부터 피아노 학원에 보내셨다.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집에는 아주 큰 피아노가 있었고, 엄마는 가끔 피아노를 치셨는데그런 엄마가 너무 멋있어 보여서 나도 엄마를 따라 피아노를 뚱땅뚱땅 따라 쳤다. 그걸 보고 우리 순진한 부모님께서는 내가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고, 절대음감이라며 피아노 학원을 보내셨다.

 

그렇게 피아노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처음엔 피아노가 재밌었다. 그리고 나는 피아노를 곧잘 쳤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서 매일 체르니만 펴놓고 연습하는 것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요를 좋아했었는데, 내가 쳐야 하는 건 체르니나 클래식이었다. 게다가,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한 번에 두음, 세음을 쳐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는데, 나는 손이 매우 작은 편이어서 도와 도 옥타브를 짚는 것도 잘 안됐다. 그래서 내가 칠 수 있는 곡은 한정적이었고, 그렇게 피아노에 대한 흥미를 잃은 나는 피아노를 그만뒀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당시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나는 항공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래서 1지망에 항공고등학교를 적었는데, 그걸 보신 담임선생님은 큰 충격을 받고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거셨다. 당시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전교 10등 안에 드는 성적을 냈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갑자기 항공고등학교를 간다고 하니 놀라신 것이다.


당시 항공고등학교의 이미지가 어른들 보기에 좋지 않았고, 소위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진학하는 학교라고 생각하신 거다. 그날 저녁 엄마는 나에게 선생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셨고, 나는 그렇게 어른들의 말에 넘어가서 그냥 집 근처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렇게 달콤한 꿈을 꾸다 깬 나는, 점점 꿈에 대한 기대가 없어졌다. 하지만, 어른들은 대학교에 가면 네가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할 수 있다며 나를 다시 속였고, 나는 그 속임수에 넘어가 그저 공부만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는 꿈을 꾸면서. 참 순진했다.

 


3743814077_kiCHfNB5_KakaoTalk_20200301_235227250[1].jpg

 

 

그렇게 대학 입학에 성공한 나는, 큰 꿈을 꾸며 그렇게 1년, 2년, 3년, 4년을 보냈다. 꿈을 이뤘냐고? 아니, 꿈을 이루기는커녕 꿈을 꾸는 방법도 잃어버렸다. 꿈이 없는 채로 그냥 버티던 나는 뭐라도 경험을 해보고자 인턴에 지원했다. 경험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걸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경험이 없다며 불합격했다. 경험을 쌓기 위해 인턴에 지원했는데, 경험이 없어서 탈락이라니? 대체 그럼 경험은 어디서 쌓아야 하는 걸까? 사회에선 꿈을 꾸라며 재촉하는데, 막상 꿈을 꾸기 시작하면 꿈에서 바로 깨버린다. 그래서 난 꿈 꾸는 걸 그만두려고 했다. 꿈을 꾸고 말고도 내 마음대로 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트인사이트에 지원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문화 예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아트인사이트는 나에게 너무 매력적인 활동이었다. 하지만 인턴에 떨어지고 의기소침해 있던 나는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하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서를 보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지만 막상 발표일이 다가오니 오랜만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너무 큰 기대를 하면 그만큼 실망하니까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자 한 통이 왔다. "에디터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라고 시작하는 장문의 문자는 나를 환호하게 했다.

 

"내가 에디터라니!"

 

아트인사이트는 잊고 있었던 꿈꾸는 방법을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가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죽은 줄 알았던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다음은 어떤 글을 쓸지 깊이 생각하고, 사색하고, 관찰하면서 지루했던 내 일상은 활기를 되찾았다. 내가 무언가를 꿈꾸고, 그것을 해나가는 과정은 정말 설레고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준 아트인사이트에 너무 감사하다. 요즘은 이렇게 설레는 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다. 만약 장래희망을 적어야 한다면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꿈은 굳이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 글을 무엇에 대해 쓸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떻게 노력할지 등 이 순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꿈꾸고 그것을 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꿈은 나를 설레게 하고, 무언가를 하게 만들어준다. 이제는 어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남편 등 어른들이 정해 놓은 꿈을 꾸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원하는 꿈을 꾸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어떤 꿈을 꾸던 그건 내 자유니까.


 



[정윤경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02589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