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익숙하지 않은 3월의 봄, 마음의 평화를 빕니다. [사람]

“그레고리안 성가”를 추천하며
글 입력 2020.03.01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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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2월의 문턱을 지나 3월이 되었다.


이맘때쯤이면 으레, 우리는 꽃샘추위와 3월 개학, 개강일에 딱 맞춰 내리는 거짓말 같은 봄눈에 좋은 듯 싫은 듯 짐짓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함박눈의 광경을 바라보며 설레었을 것이다. 분명 그런 때여야 정상일 텐데. 현재 이 나라는 코로나라는 말도 꺼내기 싫은 신종바이러스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지금의 이 어지러운 현실이 싫어 TV를 꺼버렸다. 연일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기사들로 넘쳐나는 휴대전화의 알림문자소리도 듣기 싫어 방구석에 처박아두었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린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망스러울 뿐이고, 이기적이고 안일한 태도의 인간들 탓에 잠잠해지려 했던 초기와는 다르게 대한민국과 온 세상이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버렸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일명 ‘코로나 공포 후유증’이라는 것에 시달리고 있고, 지하철이나 사람 많은 곳에선 마스크를 끼고 있다 하더라도 자칫 재채기하거나 마른기침을 하면 ‘나’를 피하는 주변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언제 끝날지 모를 이 공포에서 그저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사랑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다.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누리지 못한다. 심지어 치아 교정하는 치과에서도 치료를 지양한다고 안내문자를 보내온다. 먼훗날의 어느 날일 거라 생각했던 지구의 재앙이 내년, 아니 내 달에 당장에라도 들이닥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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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라디오를 틀었다. 음악만 그저 주구장창 나오는 채널을 랜덤으로 맞추었다. 마치 항상 평온했던 것처럼, 일상에 아무 걱정 없던 불과 한 달 여전의 그날처럼 이전과 같은 느낌을 받고자 가만히 들려오는 음악을 조용히 듣는다.

 

그런데 음악이 예사롭지가 않다. 듣자마자 마음이 평온해지고 가만히 눈을 감게 된다. 내 마음의 나쁜 마음들이 모조리 다 씻겨나가는 듯,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천사 라파엘, 미카엘라 등의 대천사들에게 둘러싸인 느낌이다.

 

이 경건하다 못해 벅차오르는 무언의 감정을 전달하는 음악은 알고 봤더니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로마 가톨릭의 전통적인 전례 성가였다. 마치 중세유럽시대의 서사적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고딕양식으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찬란한 성당 안을 비추는 햇살의 잔상이 떠오르며 근엄함과 숭고함이 느껴진다.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휴대전화를 찾아 라디오를 향한 채, 음악 앱의 음악검색을 재빠르게 한다. 아뿔싸, 검색되지 않는다. 검색되지 않는 휴대전화를 한 손에 쥔 채, 그렇게 한동안 몇 시간을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어지럽고 복잡했던 마음이 생각지도 않게 조금은 치유된 듯해서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나 역시도 걱정이 많았으니까. 해야 할 건 많은데 이전처럼 마음대로 외출을 할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내 가족과 지인들의 안위. 무엇보다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졌다.

 

그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안엔 나와 내 가족이 포함되어 있었고, 나의 친구들과 동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무섭고, 걱정되지만 나의 하루를 살아야 하고, 두렵고 불안하지만 우리의 생존수단을 버릴 수 없는 현실이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방을 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시국을 굉장히 심각하게 만든 모처의 도지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나 현 시국을 지적하며 떠들어대던 수많은 지도자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시민의 공포심만 잔뜩 확산시켜 놓은 채, 무책임하게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참 이기적이고 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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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저절로 신을 찾게 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평범한 우리를 지켜달라고 신께 간절히 기도드리고 싶다. 부디 하루빨리 이 어지러운 시국이 진정되어 우리의 평범하고 소중했던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드린다.

 

“혼자서는 따뜻할 수 없다”는 말이 요즘은 가슴에 사무친다. 내 가족이 너무도 소중하고, 내 사람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하다못해 전혀 알지 못하는 스치는 수많은 사람이 소중하다. 마스크를 끼고, 익숙하지 않은 보호장비를 착용하고선, 어쩌다 마주친 상대방의 눈빛은 나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다. “많이 걱정되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예요.”

 

지금껏 이토록 타인을, 그것도 생판 모르는 타인까지 걱정하며 안타깝게 여긴 적이 있었던가. 그만큼 나는 지금의 우리모두가 진심으로 더는 아픈 사람 없이 무탈하게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건 나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익숙지 않은 이 두려움의 시간이 지나고 벚꽃 흩날리는 4월이 될  때쯤엔,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으면 좋겠다. 해가 길어져 아직 다 저물지 않은 한강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맥주 한잔을 들이키고 싶고, 퇴근길에 사람 많은 을지로의 노상포차에서 소맥을 말며 잘 구운 노가리를 뜯고 싶다. 익선동의 갈매기 골목에서 선배가 구워주는 갈매기살도 먹고 싶고, 줄을 서야지만 갈 수 있는 평양냉면 맛집도 가고 싶다.

 

이 모든 게 마치 꿈같다.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것들을 이제는 꿈꾸어야 하고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그래 왔듯, 이 모든 난관을 잘 헤쳐나갈 것이다. 그동안 우리모두는 가장 어려울 때 늘 함께 했고, 어지러웠던 고난의 터널을 슬기롭게 잘 통과해 왔으니까. 머지않아 오늘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곁들일 것이고, 언제나 그렇듯 소중한 사람들을 끌어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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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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