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털뭉치들의 Shall We Dance? [영화]

새들과 춤을
글 입력 2020.02.29 21:4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아침에 일어나 여유 있는 커피 한잔, 잘 구워진 토스트와 샐러드로 간단한 아침을 즐긴 뒤 지난 밤새 일어난 뉴스를 천천히 정독한다. 조금 밍기적 거리다가 나가서 혼자 전시회를 관람한 뒤 오랜 친구를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다. 그 후 멋들어진 칵테일 바 혹은 정겨운 삼겹살 집에서 복작복작 분위기를 즐기다 달뜬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내일을 준비하며 잠이 든다. 오늘도 행복했다-고 생각하며.

 

읽기만 해도 정말 여유로운 삶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이들이 꿈꾸며 평생에 이런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걱정과 불안은 저 멀리 동떨어져 이 행복과 안락함을 절대 침범할 수 없을 듯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런 삶을-혹은 이런 여유로운 감정을-느끼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는 ‘아니’라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의 삶이란 대부분 비슷한 구석이 있으니 말이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 일과가 떠오른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시간은 오차 없이 맞물리며 시간의 흐름을 자각하기 어려워진다. 어제보다 특별할 오늘을 그리고 오늘보다 더 특별한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일정한 삶의 박자 속에서 이것이 안정감인지 지루함인지 스스로조차 헷갈린다.

 

 

blog-2-edit.jpg

 

 

이런 미묘한 날들이 흘러가는 동안에 과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할까. 출근을 위해 제 시간에 고단한 몸을 깨우고 점심메뉴를 결정하는 등의 일들도 소소한 도전과 선택이다. 이것들은 우리의 생존과 장기적인 편안함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또 때로는 의식적으로 행해진다.

 

그러나 어떤 것은 그것을 통해 돈을 벌어 생활을 영위할 수도 명예를 얻을 수도 없다. 번개처럼 짧고 강렬할지 동굴 속 종유석처럼 길고 지루할지 뛰어들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의 종류처럼 확실하게 알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결론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을지조차 흐릿하다.


이처럼 결론을 알 수도 없고 돈을 버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며(오히려 잃을 가능성이 더 높다) 딱히 삶에 있어서 어떤 확연한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그런 일이 있다. 도전을 하겠는가? 아마 당장 나부터도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도박은 취급 안 해!

 

그럼에도 누구보다 이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이것을 위해 집을 건축하고 춤을 배운다. 화려하게 꾸며 입고 친구와 길을 나서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한다. 모든 생활방식은 이것을 위해 돌아간다.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새들과 춤을(Dancing with the birds)>은 새들의 사랑과 구애를 담은 영상이다. 새들은 단 한번의 사랑을 위해서라도 모든 노력을 쏟아 붓는다. 하루 종일 같은 춤 반복하기, 최대한 예술적이고 화려하게 둥지 짓기, 친구와 협동하여 춤추기, 경쟁자들 속에서 돋보이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 결과가 성공이던 실패던 좌절하지 않는다. 그저 또 다시 춤을 시작할 뿐이다.

 

다큐멘터리는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은 화려하고 유쾌하며 가슴 따뜻해진다. 위트 넘치는 내레이션과 함께 수컷 새들의 뜨거운 구애를 보다 보면 어느새 그들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랑, 그 한가지 목표만을 위한 수 많은 새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든다. 나는 무형의 가치를 위해서 온 마음을 다 할 수 있을까? 순수한 마음의 불꽃을 일으킨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14-Vogelkop_sing_Tim_Laman_ML_Feature-1.jpg

 

 

새들은 수 없이 구애하고 또 수없이 실패한다. 이때까지 실패는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열정 뒤의 실패는 부끄럽지도 숨겨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잠시 쉬며 잠시 실망하고 다시 춤을 추면 되었다.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숨기지도 않는다. 지켜보는 관람객인 나 또한 그들이 우습거나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감탄스러웠다.

 

단지 이것이 인간이 아닌 새의 이야기라 그렇게 느껴진 것이라 보지 않는다. 그 누가 순수한 열정을 비웃을 수 있을까? 이것은 절대 내일의 고민을 해결해 주지 못하지만 어제와 오늘의 경계를 허물고 오늘과 내일의 차별을 만들어 준다. 직접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의미와 활력을 넣어준다.


꼭 사랑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어떤 일이던 복잡한 생각은 시작하지 못하게 만든다. 수 많은 가정과 상상은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며 결국 다시 침대에 눕게 만든다. YES 아니면 NO, 이 두 가지만 이용할 때 새로운 활력이 찾아 올 기회를 얻는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알록달록한 털 뭉치들이 통통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다큐멘터리는 충분히 가치 있다. 일상에 회의감이 드는 하루 잠시라도 새들의 사랑 속으로 빠져 귀찮은 일들을 잊으면 끝날 때쯤 가벼운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운이 좋으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크기변환]EH0tdvNWoAc3rkh.jpg

 


[김유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