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글 입력 2020.03.0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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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발매된 <산울림 7집> 수록곡 '청춘'은 음울한 기타 소리로 시작한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40년 된 이 노래가 좋은 건, 청춘 역시 세월의 흐름일 뿐이라는 관망 때문이다. 요즘의 청춘 담론에서는 찾기 힘든 시선이다. 열정, 연애, 여행, 건강, 도전, 적당한 방황과 불안감이 '청춘'과 일치하는 단어일 것이다. 연령주의가 심한 한국 사회에서는 그만큼 청춘에 대한 예찬과 기대가 크지만, 정확히 무엇이 청춘을 의미하는지는 두루뭉술하다.

 

청춘의 사전적 정의는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이다. 하지만 청춘/젊음이라는 단어는 그보다 더 복잡한 의미를 품고 있다. '청춘을 낭비하지 마라', '젊음을 즐겨라' 등의 언설에서 볼 수 있듯이, 젊음은 특정 연령대 안에 내재해 있고, 귀중하며, 소모적이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유용하게 써야 앞날이 편하다. 청춘이 귀하면 귀할수록 인생의 남은 세월은 값어치가 떨어진다. 계절의 순환에 빗대 인생을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어떻게 해야 젊음을 완벽하게, 화려하게 불태울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청춘 역시 나이 듦의 일부라는 인식은 줄어들고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는 생산력과 소비 능력에 있다. 젊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경험'해야 한다는 풍조가 각자의 자아실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활동성을 숭배하는 건 자본주의의 동력이다. 하지만 모든 경험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가. 단순히 젊은 나이라 해서 모두가 활동성과 시간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장애인, 병자, 경제적 빈곤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청춘다움'을 누리기엔 삶의 무게가 무겁다. 그렇다면 나이 구분을 넘어서는 청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회적 자원의 부족, 미래에 대한 불확정성, 유동하는 자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지만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상황이 청춘인 걸까?

  

생애 주기에 따라 공통된 집단으로 호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기하기만 하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에 대한 태도는 아주 뚜렷해서 숨이 막힌다. 젊은 건 좋고 늙음은 추하다. 단순히 젊은 거로 만족하지 않고, 젊으면 젊을수록 좋고, 젊은 데도 성취한 게 많을수록 (스펙이 좋을수록) 좋아한다. 젊음을 칭찬하는 데는 항상 의뭉스러운 면이 있는데, 내 나이가 얼마나 어리든 항상 나보다 어린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가치가 존재가 아닌 나이라는 불가피한 요소에 좌우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소외감은 커진다. 나이는 본래 인간의 정체성이 될 수 없고, 개인이 온전히 느끼고 분투해야 할 귀중한 감각이다. 그러나 사회적 연령 담론은 이런 고유성에 갖가지 말들을 얹어 압박한다.

 

그래서인지, 청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들으면 항상 말문이 막힌다. 청춘은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건 나이가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어떤 기준이라고 말하는 것 같고, 동시에 연령이라는 동질성 하나로 전혀 다른 무수히 많은 사람과 함께 묶이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 우리가 건강할 때 몸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듯이,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른다. 무언가를 겪으면서 동시에 그 경험에 대해 사유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청춘이 무엇인지 알려면 이미 그 시기를 지난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 역시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니, 시간과 인생이라는 주제에 충고를 할 수 있는 아무도 없다.

 

'나이 듦은 감정이다'. 이십 대라 하더라도 오백 살은 먹은 것처럼 늙고 지칠 수 있고, 육십 대의 사람도 삼십 대처럼 열정적일 수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청춘이라고, 또는 그 일원이라고 느끼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건 봄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같다. 봄은 그냥 봄일 뿐이다. 여름과 겨울이 그냥 그 자체로 살아가듯이. 나무가 꽃을 피우는 건 봄이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 몸 안에서 솟아 나온 욕망의 발현이라고 생각하면 좋지 않는가. 세상 만물이 거대한 질서가 아니라 자기 의지에 따라 삶을 시작하고 스러져간다고 생각하면.

 

청춘은 그렇다 치고, 왜 다들 노화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살아간다는 건 나이 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건 모든 생물이 향하는 길이다. 갓난아기의 정해진 미래는 노인이 되는 것이다. 종종 인생은 길이 아니라 깊은 우물을 채우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무엇으로 그 공허를 채우는지야 각자의 몫이다. 나는 책과 영화로 채운다. 열 번을 봐도 여전히 가슴 설레는 '반지의 제왕' 같은 이야기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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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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