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눈사람]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네 번째 눈사람: 2020년 2월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글 입력 2020.02.25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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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온통 '코로나19'에 관한 이야기들뿐이다. 진정되길 간절히 바랐던 상황은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었고, 이제는 완전히 일상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최악의 상황으로 남겨두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제는 여행이 문제가 아니라, 외출조차 어렵게 되었다. 한국은 지금,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영화 같을 수 없다. 재난 영화는 기승전결이 있고 시점이 다양하기 때문에 판단력을 유지하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현실은 절대 우리에게 기승전결의 어디쯤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흐려지는 판단력을 붙잡고, 바이러스보다 깊게 퍼져가는 불신과 불안의 하루를 견뎌야 한다.

계속해 바뀌는 여러 일정으로 안정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하다. 나는 미뤄지는 개강으로 기숙사 입실 일정 역시 조절해야 했고, 언제 휴업할지 모르는 공연장에서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할 때에도 당연히 마스크를 써야 했고, 혹시나 면역력이 떨어질까 매일 영양제를 먹고 있다.

당연히 바이러스는 무섭다. 백신이 없는 '코로나19'는 말 그대로 재앙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개인위생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외출을 자제하는 것밖에는 없다. 전염은 한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이런 긴장과 걱정 속에서 강한 불안이 자라난다. 우리 안의 불안은 '코로나19'만큼, 아니 그보다 더 빠르게 우리 사회를 잠식했다.



아픈 게 죄가 되는 세상


나는 국내에 바이러스가 퍼지기 직전, 몸살을 앓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몸살이었고, 열이 펄펄 끓거나 기침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훌쩍이는 나를 보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에 나는 겁을 먹었다.

'절대 기침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종일 긴장해있던 나는, 집에 오자마자 몸에 좋은 모든 것들을 먹었다. 따뜻한 차, 귤, 감기약, 오렌지 주스, 비타민 등 모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혼자 죽을 끓여 먹으며 회복에 집중했다. 아팠던 기간은 아픈 것보다 "아프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러웠다.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일을 하러 갔을 때나, 친구를 만났을 때, 약을 먹는 것이 상당히 눈치 보이는 일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빨리 회복해야 했고, 필사적으로 건강을 챙겼다. 다행히 바이러스가 더 퍼지기 전에 나는 건강과 면역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침을 참아내야 했던 시간 동안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프면 죄가 되는 세상"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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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가 전국 곳곳에 퍼진 지금, 기침하는 사람을 경계하고 피하는 건 거의 본능적인 일이 되었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기침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리를 이동하게 되고, 괜히 길을 더 돌아간다. 이 시점에서 당연히 필요한 처사이고, 더 이상의 확산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일이지만, 그 광경은 무척 슬프고, 무서웠다.

감기는 흔하기 때문에 이 순간에도 수많은 감기 환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순간, 본인도, 지인도, 그리고 거리의 타인도 불안해하며 경계하게 된다. 전염병이 도는 사회는 사람이 퍼트리는 재앙인 만큼, 사람 간 불신이 극에 달한다. 모두가 예민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모두 "아프지 않음"을 온몸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했던 세상은 흑백 톤의 어두운 세상으로 변했다. 현재 사회에는 오로지 "감염자"와 "비감염자"만이 존재한다. 사회로부터 격리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필사적으로 "비감염자"가 되어야 한다.



불안이 낳은 분노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잡힌 불안은, 분노로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기 전까지, 감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감염자의 이동 경로 정보를 상세히 공유했다. 덕분에 감염자는 전국적으로 일상을 알리는 격이 되었고, 이로 인해 거센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감염자의 잦은 이동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도왔고, 더 많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했다. 모두가 예민하고 불안한 이 시기에, 바이러스 확산에 영향을 미친 감염자들은 전 국민의 원수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전국적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무기력, 그리고 그로 인한 더 큰 불안과 좌절감은 사람들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다. 비난의 화살은 곳곳으로 날아갔다. 확진자, 특정 단체, 정치인 등은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고, 뉴스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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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가는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것들을 향해 화를 내고, 비난을 쏟아붓는다. 그만큼 사회가 아프다는 뜻이다. 잘잘못을 떠나, 전염병만큼이나 빠르게 퍼져나간 분노는 더이상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다. '코로나19'가 진정이 된다 해도, 이미 사회에 난 생채기 흔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아야 하고, 밝혀질 것들을 밝혀져야 하지만, 너무 과한 비난과 잘못된 방향을 향한 분노는 사회를 갉아먹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의견충돌로 인해 생겨나는 갈등들은 회복이 더욱더 어렵다. 예민한 만큼 거세지는 주장과 비난은,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를 만들어낸다.
 
무섭고 불안한 마음은 당연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성마저 상실하지는 않아야 한다. 공포심에 객관성을 잠시 잃을 수는 있지만, 인간성을 잃는 순간 사회는 더 크게 곪을 것이다. 불안심리를 이용한 보이스피싱, 각종 음모론까지 대두되는 이 상황에, 모두가 현명하게 대처해서 더이상 문제가 확산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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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개강도, 설레야 할 봄도 전부 "희망"과 "현실" 언저리에서 맴돌고만 있다. 개강은 연기되었고, 새 학기 행사는 취소됐으며, 봄은 중요하지 않았다. 각종 공공기관이 문을 닫았고, 치열한 티켓팅으로 얻어낸 콘서트 티켓은 자동 환불처리 되었다. 세상은 온통 '코로나19'에 관해서만 말한다. 불신도, 분노도 커져만 간다. 2020년 2월이 그렇게 지나갔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될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봄이 오면, 우리의 마음에도, 이 차가운 세상에도 꽃이 피길 바란다. 이례없는 큰 역경인 '코로나19'를 이겨내고, 물리쳐서, 꼭 더 단단한 우리가 되길 바란다. 치료제가 개발돼서 "이제 다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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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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