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이 바꾼 글쓰기의 의미

나에게 글쓰기는 원래 수행평가였고, 레포트였다.
글 입력 2020.02.25 11:5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에게 글쓰기는 원래 수행평가였고, 레포트였다.


그런 내가 어쩌다가 아트인사이트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용감 무쌍했다. “친구따라 갔다가 오디션에 붙었어요!”하는 격이었다(친구를 따라가지는 않았지만). 마감날에 지원서를 보게 되었고, 그 날 따라 글이 잘 써졌다. 그게 전부였다. 당연히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그냥 오랜만에 브레인 스토밍을 하게 해 준 지원서가 재미있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당장 다음주까지 글을 써야했다. 다행히 나는 보유자산이 많았다. 영화도 많이 봤고, 전시도 많이 다녔었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자각하지 못했지만, 문화산업형 인재였던 것이다. 쓰고 싶은 말들이 많아졌고, 넘치는 소재들을 감당하지 못해 메모를 하기에 이르렀다.
 


수집1 – 문화소비 방식의 변화


회사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폭의 문화를 소비할 수 있었으나, <관람 전(글쓰기) – 관람 – 관람 후(글쓰기)>의 3가지 스테이지를 거쳤다. 정말로 귀찮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 친구들과 함께 갔는데, 어느 새 설명을 해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고리타분한 옛날 말 중 하나인 “아는 만큼 보인다.”는 시야를 같이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항상 같이 작품을 관람하던 사람들임에도 대화는 달라졌다.

관람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목차에 맞게 정리가 되고 있었다(관람 후에도 후기를 작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기계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했다. 이전에는 눈앞을 왔다가 간 것에 의의를 두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문화를 ‘소비’하고 있는 것 같다.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에 속하게 된 것이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제 시작되었다. 생각이라는 걸 한다.
 


쓰기


흔히 복습의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공부, 공부, 공부! 한국 사회는 공부를 너무 강요하는데, 문화에서마저 그래야 하는가? 재밌으면 된 것 아닌가? 나도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했다. 직업도 아니고, 필수도 아닌데 왜 나를 한시도 편하게 두지를 못하는 건가?

나는 읽은 책들 중, 인상깊은 문구만을 골라서 메모해 놓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책을 다시 읽지 않고 내용도 어느 정도 떠오르고, 그 메모만 보더라도 당시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보여서 재밌다. 그런데 최근에는 영화도 그 작업을 시작했다. 정말로 영화의 한 장면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아트인사이트에서 쓰는 글로도 많은 부분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복습하기로 했다.

그러나 비슷한 주제로 원고를 새로 작성하게 되었을 때, 두둑한 기반이 되어준다. 회전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니까 나는, 생각할 준비가 되어있다. 뭐, 스스로는 비속어로 치트키라고도 생각한다. 실제로 근래에 “말을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빈번하게 듣는다. 혹은 언어에 대한 재능이 잦은 사용으로 활성화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발전했거나, 재능을 발견했거나!

우후죽순으로 수집했던 문화작품들이 서로가 서로의 데이터베이스가 되려면 글쓰기를 통한 정리가 필요하다. 혼란 속에서는 어떤 자료를 집어내야 하는지 감도 잡기 힘들고, 찾기도 힘들다. BBC 드라마 [셜록]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셜록의 기억의 궁전을 만들어내는 작업에 일반인인 나는 글쓰기라는 코딩과정을 거쳐야 한다. 건축에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생각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둥둥 떠다닌다. 나는 그것들을 잡아채어 단어로, 문장으로 표현하고 기록해 놓았다. 기억은 왜곡된다. 지금도 에디터로 이제 막 발을 뗀 4개월 전의 글을 보면, 놀라운 점도 있고, 부끄러운 점도 있다. 간혹 ‘이 글을 내가 썼다고?’하면서 감탄하기도 한다. 뭐랄까. 내 생각들을 썩히지 않게 된 것이 너무 좋다.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릴 적 사진앨범을 불에 타버린 우리 집에 두고 나온 것과 같다.

정교화된 생각은 의견 표출 가능성에도 힘을 실어준다. 전보다 말하기에 효과적인 사람이 된 것은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근거도 따라와야 한다는 것을 ‘글’의 구성 상 예상하고 있다. 언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글쓰기와 말하기는 동시에 발전하고 있다. 20대의 중반 줄에서 아직도 배움이 끝나지 않았을 줄은 어린이의 나는 싫어했겠지만,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많다는 것을 자각한 지금의 나는 너무 반갑다. 지금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생소했던 글쓰기가 이제는 내 다이어리와 보고서를 벗어나 재미있는 취미가 되었다.


1.JPG
네 달간의 에디터 활동으로 쓴 원고

 



수집2 – 공유


‘플랫폼’이라고 하면, 부정적 집단 기능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쟤네들 몰려다니면서 하는 꼴 좀 봐라!”하는 느낌으로. 21세기에 살면서도, 어느 하나 제대로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간간히 삶에 피해를 입지 않을 정도의 정보와 뉴스들만 보며 살았고, 의견교환은 내가 실체로써 속해 있는 학교나 회사 커뮤니티를 이용했다. 이마저도 깊은 이야기는 친밀한 사람들과 진행했다. ㅡ 결국 비슷한 이야기만 오간다.

어느 날, 내가 썼던 원고가 출력되었는지 확인하려고 아트인사이트 홈페이지에 로그인했다. 오, 약간의 좌절감과 함께 내가 확인한 것은, 내가 워드에 쓰고 있던 영화를 누가 이미 오피니언으로 작성한 글이었다. 이미 반절 정도 쓴 글을 버리고, 주제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휘몰아쳤다. 점점 절망적으로 이번주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봤다. 도저히 새로 글을 쓸 시간을 분배할 수가 없었다.

읽어볼까? 읽어보지 말까? 마우스도 방황했다. 다 그만두고 내 글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나는 ‘서프라이즈’가 아니다. 문화를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거지, 최초가 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도 모르게 표절할 수 있는 계기는 차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 새로운 글도 다시 퇴고한 뒤에 망설였던 글을 클릭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각이었다. 많이 놀랬다. 결국 큰 틀로 보면, 이 곳에 글을 쓰고 있다는 특수성이 그 글의 에디터와 나를 묶어 놓는다. 그러나 처음 접한 신선함과 충격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장면은 내 4개월의 에디터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내 지인들 중 나와 같은 영화를 보고 그 글에 있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분명하다. 에디터라는 공통점 말고는 나와 같은 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이런 것이 플랫폼이구나, 하고 강하게 체감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영화가 새로이 보였다.

페이지의 다른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참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많이 느낀다. 좌절의 부족함이라기보다는 내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설렘일 것이다. 내가 기회를 놓친 문화초대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소스를 기반으로 한 글들이 너무 많다. 개 중에는 내가 차마 문화라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문화이다. 지금 생각나는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프루아(ffroi)의 비전이다. “We Design the Air Around You.”.

그동안 여행으로 다니면서 넓어진 시야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런 플랫폼으로 시야를 넓히는 방법에 대한 시야도 넓어졌다. 너무 스스로 정의한 ‘플랫폼’이라는 단어에 갇혀 있지 않았나 싶다. 나의 내부에서 새롭게 재정의한 플랫폼에서는 같은 문화를 얼마나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는 물론, 문화 소비의 폭을 확장해주고 있다. 나는 더 바빠졌다. 보고 느껴야 할 것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00225_002828872.jpg

  

*

글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초등학생 때 나는 글이 쓰기 싫어 항상 사생대회를 택했다. 대학입시 때 논술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 정도면 다행이지 내신입시도 형식적으로 수만 채워서 접수한 뒤, 정시로 입학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언급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도전이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반년도 안되는 시간 만에 나는 글쓰기가 강점인 사람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 전시를 관람하는 내 자신이 가끔 현실도피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소위 ‘한량’이라고 하는 부류로 스스로를 분류할 때도 있었다. 이제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들이 리듬을 가지고 옆에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박나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17190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