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논픽션, 노년의 삶 [사람]

노년의 라이프스타일은 과연 쓸쓸하고, 폐쇄적이고, 몰개성적일까?
글 입력 2020.02.22 16:4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당신은 은퇴 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의 몸은 분명 현재를 살고 있지만, 머리는 미래를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짧게는 졸업 후를, 길게는 10년 뒤를 내다보며 과연 어느 기업에 취업할지 혹은 어떤 지역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할지 고민한다. 닥쳐올 취업 트렌드에 미리 발맞추고 그에 준하는 스펙을 준비하며 숨 가쁘게 한 계절, 한 계절을 보내고 있다.

 

늘 미래를 그리며 사는 것에 비해 은퇴 이후의 생활은 어쩐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어떤 옷을 입고 있을지, 어떤 인테리어로 장식된 집에 살고 있을지. 과거에도 현재에도 조금씩 자리를 바꿀 뿐, 변함없이 나를 구성해왔던 사소한 취향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기껏해야 하얗게 센 머리가 부끄러워 주기적으로 염색약을 사다가 새까맣게 머리칼을 물들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윽고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나와 내 동년배들의 취향이 몽땅 목가적으로 변하여 귀농하게 되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이어졌다. 아니면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해 실버타운에서 노년을 갈무리하는, 고요하고 고독한 풍경이 그려졌다.

 

때로는 기이하게 여겨질 만큼 우리 주변에는 이채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한다. 그러나 머릿속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노년의 라이프스타일은 획일적이다. 조금 관대하게 상상력을 발휘해 봐도 결국은 귀농 아니면 실버타운 중 양자택일. 특이했던 취향의 소유자들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전에 나는 왜 그들의 행방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미디어가 조명하는 노인, 현실에 던져진 노인



흔히 ‘아름답고 건강한 몸’하면 젊고 탄력 있는 몸매를 떠올린다. 역으로 생각하면 늙고 주름진 몸일수록 추(醜)하고, 병든 상태에 가깝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안티에이징 기능을 강조하는 각종 화장품과 리프팅 시술을 권하는 성형외과 광고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렇다. 미디어에서 이상적으로 위시하는 몸은 노화와 동떨어져 있다. 매끈하고 어린 몸이 진정한 미에 가깝기 때문에 미디어가 조명하는 것인지, 미디어가 조명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몸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같다. 다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주름진 외피에 가려, 노년의 삶을 포괄적으로 직시하는 미디어는 적다는 것이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노인의 양상에 관한 여러 선행연구들에 따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디어에서의 노인은 등장 빈도 자체가 극히 낮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더불어 노인은 청장년 세대와 함께 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단편적으로 소비되어 왔다. 가령 치매에 걸려 가족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거나, 우스꽝스러운 사고를 쳐서 주변인들을 난감하게 만들거나, 뿌리 깊은 가부장제로 차별을 일삼는 노인 캐릭터의 사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안하무인, 잔소리와 참견이 심하며, 몰개성적이고 폐쇄적인 인물로 등장하곤 한다.

 

노인 세대의 묘사 양상들을 크게 범주화 해보자면 ‘꼰대’같은 권위적인 모습과 무기력하고 병들어 의존적인 모습 두 가지로 정리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미디어에서 노인은 부정적인 이미지 하나로 관통되는 평면적인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젊은 주요인물이 극 중에서 겪는 고난을 한층 심화하는 반동인물로서 주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때의 갈등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중심적인 갈등이 아닌 부수적인 것에 해당하는데, 이처럼 노인은 전면에 나서지 못한 채 소극적으로 다루어진다. 이들이 ‘00 씨’라는 이름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등의 일반 명사를 통해 지칭되는 것 역시 미디어에서 노인이 지니는 타자적인 면모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미디어가 선별하여 제시하는 것들이 사회의 신념과 인식,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노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할수록 낙인 효과로 인해 노인을 향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나이 먹어간다는 사실은 도저히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노인이 과연 단순하고 편향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집단일까?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뒤, 2017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총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4.2%인 711만 5000명으로 집계되었다. 다시 말해 17년 만에 우리나라는 유엔이 인정하는 고령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령사회가 되기까지 24년이 걸린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아주 빠른 속도로 회색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까지 ‘노인’이라고 간주되어왔던 이들의 절대적인 숫자가 증가하면서 지금까지 노인 집단을 규정해왔던 기준, 우리가 틀림없이 정확한 수치라고 여겼던 연령 구분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에 발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78.3%는 70세 이상이 노인이라고 답했으며, 이미 2015년 5월 7일 대한 노인회는 정기 이사회에서 현행 노인 연령 기준인 65세를 70-75세로 상향조정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었다. 위와 같은 일련의 통계수치는 노인 역시 청장년에 견줄 필요 없이 끊임없이 혼돈을 겪고 있는 존재이며, 그만큼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복합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들에게는 내리는 정의에는 필연적으로 오류가 내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노인들이 사회 복지의 혜택을 누려야 할 약자이자, 보호 받아야 할 소수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기에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노인들을 거리에서, 곁에서 지켜보아 왔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몸이 약해지고 질병에 쉽게 노출되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그러나 신체와 두뇌의 노화가 반드시 생산능력의 전멸과 몰개성화, 욕구의 부재 상태로 이어진다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변화하는 미디어


 

고전 소설에서 인간은 권선징악의 단순한 플롯에 따라 평생토록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 이분법적으로 구분되곤 했다. 이들이 현실에 근거하여, 선과 악의 면모를 각자 다른 비율로 겸하고 있는 양가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비로소 ‘현대’의 지위를 얻었다. 최근 영상 콘텐츠가 노인을 다루는 양상에서 이와 같은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묵은 내 나는 고정적인 노인상을 탈피하여, 개인으로. 노인을 입체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tv N에서 방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다. 해당 드라마는 그간 미디어가 노인에게 씌워온 그릇된 프레임을 적확히 지적한다. “어른과 노인의 차이가 대체 뭘까?”

 

 

드라마를 위해, 우리는 청춘들의 어른에 대한 시각을 취재했다. 그들은 가차 없이 자신의 윗세대를 어른 아닌 다만 노인으로 폄하하며, 몇몇 부정적 단어로 그들을 규정지었다. 꼰대, 불편, 의무, 부담, 뻔뻔, 외면, 생색, 초라, 구질, 원망, 답답 등등. (...)


우리는 이런 부정적 시선이 어디서 기인했나 고민했다. 청춘의 인색함일까? 역지사지 못하는 무지일까? 다만 싸가지가 없어서 일까? 우리는 청춘들의 이러한 시각이 어른들에 대한 정보의 부재, 관찰의 부재에서 온 것이라 결론지었다.(어른들이 청춘의 아픔에 갖는 무지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 속과 언론 속 시니어는, 참으로 재수 없지 않은가.

 

- tvN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 기획 의도

 


<디어 마이 프렌즈>에 등장하는 10명의 주요인물 중 9명이 65세 이상, 즉 사회가 인정하는 노인이다. 그간 봐왔던 드라마에 비하면 참으로 파격적인 인물 구성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나라 노인 인구, 주변에서 보이는 노인의 숫자에 비례하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비중이다. 9명의 인물이 지닌 생의 배경, 그에 따른 취향과 성정 역시 가지각색이다.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과 다시 로맨스를 시작하고, 끊임없이 SNS를 관리하며, 노브라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배낭여행을 하는 어느 미국영화의 늙었지만 멋있는 주인공처럼 세계 일주를 꿈꾼다. 모둠 치즈 플래터를 곁들어  와인을 마시며, 야밤에 친구와 드라이브를 즐긴다. 그러는 한편 지금껏 쌓아온 연륜으로, 자신을 깔보던 카페 손님에게 거침없이 일침도 날린다. 따스한 품으로 울먹거리는 자식을 안아주기도 한다. 물론 외롭기도 하고, 치매와 고독사의 위협에서 두려워하며, 은퇴한 남편 때문에 골머리를 썩인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디마프 2.JPG 디마프 현장포토.JPG


 

혹자는 이들이 어쨌건 허구의 인물이 아니냐 반문할지도 모른다. 뉴미디어의 부상에 따라 SNS와 유튜브에 자발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는 노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9년 KBS 연예대상 시상자로 유튜버 박막례 씨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았다. 이들이 전시한 삶의 단면은 기성 미디어가 놓쳤던, 개인적인 호오와 가치관을 빼곡히 담아내었다. 편견을 조장했던 주범인 미디어는 그 저변이 확대되면서 의도와 상관없이, 노인을 향한 편견을 해소할 만한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어디로 간 건지 의아해했던 그 개성의 소유자들은 방송 조명 대신 햇빛을 받으며 덤덤히 일상 속에 있었다.

 

 

 

그래서 논픽션, 그들의 일상


 

안경자 씨, 이찬재 씨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

 

안경자 씨와 이찬재 씨 부부는 직접 그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2015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햇수로 6년째다. 이찬재 씨는 뉴욕에서 꼬박 일주일을 배운 뒤 SNS를 시작했다. 남편과 달리, 호기심이 많아 당시에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모두 사용했던 안경자 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100세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아직도 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이 많죠.”

 

 
70493366_419389178716884_1377656700891912186_n.jpg
출처: 안경자, 이찬재 부부 인스타그램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

 

 

이찬재 씨는 “추상화도 아니고, 상징이나 은유가 있는 그림” 대신 모임에 가던 날 옷차림, 눈에 쉽게 띄는 것들, 자주 생각하는 일들에 관한 그림을 주로 그린다. 계정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그 그림은 당시 브라질에 거주하고 있던 부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각각 한국과 뉴욕에 사는 손자들을 향한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그림의 소재만큼이나 돋보이는 것이 이 부부의 평범한 듯, 다채로운 일상이다. 다음은 매번 그림에 덧붙는 편지들이다.


 

“어떠니? 할아버지 반바지 차림. 이렇게 입고 고등학교 동창생 모임에 갔어. 다들 80가까운 노인들이야. 낮에 식당에서 만나 두어 시간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즐거운 자리거든. 무척 덥길래 별 생각없이 브라질에서처럼 진스 반바지를 입고 갔어. 근데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차림이 예의없게 보이나 봐. 한 친구가 슬쩍 다음엔 반바지 입고 나오지 말라고 주의 주더라. 두말않고 끄덕였지.” - 2019년 9월 10일 


“할머니는 뭐든지 배우고 싶은데 그러니까 게임이라든가 BTS 노래나 춤동작이라든가 킥보드 타는 거라든가 그런데 다 어려워. 어느 것 하나 맘대로 안돼. 하기야 본래 난 노래나 춤은 젬병이었으니까. 하지만 셀카 찍는거야 왜 안되는지 정말 모르겠더라. 이렇게 하라고 해서 오른 손에 핸폰 잡고 각도를 맞춰보지만 휴우, 실망! 다들 자연스럽게 멋지게 찍던데 왜 난 하라는대로 해도 안되는지 속상해. 도대체 비결이 뭔지 넌 아니? 하긴 너야 셀카에 별 흥미가 없을테니 물어보는 내가 잘못이지.”- 2019년 9월 11일

 


때로는 의도치 않게 친구와 생각이 어긋나고, 그래도 곧바로 즐거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게임과 방탄소년단의 춤, 킥보드를 배우고 싶고, 좀 더 멋진 셀피를 찍고 싶은 속마음을 주위사람과 공유한다.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생기는 고민과 실망도 여과 없이 털어 놓는다. 크리스마스에는 빨간 니트와 초록 니트를 각각 맞춰 입고 신나게 캐롤도 부른다. 최근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에 참여하기 위해 영상도 찍었다. 멀리 사는 친구에게 보내는 듯 담백한 어투의 편지에, 흔히 조부모와 손자 사이를 묘하게 가로막는 -대개 전통적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벽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희생적이거나 헌신적이지 않고, 어른으로서의 체통을 고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럴 필요 없이 그들은 가족과 사랑하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시니어 모델, 최순화 씨

 

최순화 씨는 2018년 F/W 헤라 서울패션위크의 키미제이 쇼로 데뷔하여, 3년차에 접어든 패션모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온 잡지를 보면서 내심 모델을 꿈꿨다고 한다. 집에 있던 벨벳 천을 직접 재봉하여 옷이나 장갑 등을 만들었던 일도 그의 관심사에 따른, 자연스러운 발로였다. 육아, 결혼 생활 등 여자에게 주어진 전통적인 의무를 다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그는 60년이 지나 다시 그 욕망을 좇기 시작했다.


 

51665120_837454033273625_6562232350991676137_n.jpg
출처: 최순화 인스타그램 (@soonhwa01)

 

 

타고난 패션 감각이며 옷을 다루는 손재주, 재능을 가진 그였지만 모델 생활이 순탄하게만 흘러온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수입을 벌어들이기 힘들 만큼 시니어 모델은 적은 시장이었으며, 주부로서 체화한 경직된 생활 감각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직업관을 뚜렷하게 세워야 했고, 함께 일을 배우는 한참 어린 동료들과 허물없이 지내야 했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데미안의 구절처럼, 지금껏 축적해온 것들을 깨부수어야 할 순간이 그에게 도래했다. 흔히 청소년 필독 도서로 꼽히곤 하는 데미안의 구절은 비단 불안한 청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들딸뻘 되는 젊은 친구들에게 존대를 했어요. 말을 편하게 하라고들 했지만 되도록 그러지 않았어요. 나이 먹어 다시 시작하는 사회생활은 교만함이 없어야 젊은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유연해져야 해요. 수십 년 사회생활을 한 시니어 모델 지망생들 앞에서 허튼 행동을 하면 윗사람으로서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매사에 조심스러웠죠.”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옷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우아하게’ 소화하고 싶어요. 나이 많은 시니어 모델도 구멍 난 청바지를 소화해야 진짜 모델이 아닌가 생각해요. 패션 잡지를 찾아보고, 패션쇼에 참석해 다양한 스타일을 눈으로 익히고, 리듬을 온몸으로 느껴보기 위해 난타를 배우는 것은 나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 여성동아, 시니어 모델로 ‘인생 2막’ 연 최순화, 2019년 8월 668호



자아에 충실한 삶을 사는 동안 그는 거듭 변화하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중이다. 5년 간 한 번도 모델 학원을 결석하지 않은 만큼 노력하는 그의 발전에는 한층 가속이 붙었다. 부끄러움의 일부였던 흰 머리는 직업 모델로서 그녀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으며, 모델 학원을 다니면서 자신의 어깨가 굽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별명이 “깁스”일 정도로 줄곧 자세가 발랐다는 최순화 씨. 70년이나 함께 한 몸이지만, 아직도 몰랐던 부분이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어떤 옷을 입고, 머리를 어떻게 할까. 쇼할 때는 어떤 포즈를 취할까, 집에서도 전철에서도 늘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일은 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말이다.

 

 

북성 2리 배움학교 8명의 학생들

 

‘묵고 시픈 거, 하고 싶은 거’ 이제는 더 없을 거라 취급 받는 80줄의 나이에 글을 만나며 새로운 신분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이들이 있다. 경북 칠곡군 약목면에 사는, 박금분, 곽두조, 강금연, 안윤선, 박월선, 김두선, 이원순, 박복형, 8명의 학생들이다. 흔히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들 한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어서 새로 배우기 힘들다고. 그러나 “글자를 아니까 사는 기 더 재미지다”라는 북성 2리 배움학교 학생들의 말처럼 힘듦의 여하를 막론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흥미롭다. 때론 커닝도 하고, 게으름도 피워가며 각자의 성격대로 차곡차곡 배웠더니 어떤 가게가 이름을 얼마나 웃기게 붙였는지도 알 수 있었다. 맛을 보지 않고도 이 병에 든 액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으며, 단단히 머릿속에 집어두지 않고도 이사 간 친구네 주소쯤은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51630245_1392151840909971_6997517664553204884_n.jpg
출처: <칠곡 가시나들> 인스타그램 (@grannypoetryclub)


 

그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자신의 마음을 시로든 편지로든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감각을 그대로 글로 옮겨 기록하고, 객관화하여 오래 곱씹을 수 있었다. 정확히 그 지점에서 그들의 노년은 지난날보다 궁핍하고 서글플 수 없었다. ‘왜 더 일찍 배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더 깊게 후회하기 전에 다시 연필을 쥐게 될 내일을 기대했다.



4345_17645_507.jpg
출처: 다큐 <칠곡 가시나들> 스틸컷

 

 

변화와 시작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그들의 삶을 갈수록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누구의 개입 없이 그저 일상을 담아낸 다큐 <칠곡 가시나들>이 은은히 입소문을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획된 MBC 예능 프로그램 <가시나들>에 출연하게 되었다. TV에 나오려면 일단 카메라에 익숙해져야 했으며, 처음 보는 어린 연예인들의 이름을 외워야 했고 그뿐 아니라 같이 합을 맞춰 주어진 과제도 해나가야 했다. 눈에 띄는 오프닝 영상을 찍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기도 했다. 다 재미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다큐는 상영을 내렸고, 예능은 종영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은 둥근 글씨만큼이나 정체 없이 흘러갈 것이다. 그간의 경험과 배움이 합쳐져 밀도 있는 할머니들의 일상은 카메라를 마주했기에 시작되었던 것이 아니라, “고마 사는 기 와 이리 재밌노”라는 깨달음으로부터 연유했기 때문이다.

 

***

 

처음 이 글을 쓰게 된 시작은 노화가 너무 두렵기 때문이었다. 아닌 척할 수는 있어도 결코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그 두려움을 심화시켰다. 실버타운에서 정해진 시간에 주는 대로 밥을 먹고 TV와 독대하는 노인들에게 나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곤 했었다. 작가 최현숙 씨가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는, 그 대상에 대한 ‘자기 불안’이라 정의했던 것처럼, 지금에야 생각하건대 그 시선의 뒤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날 서 있지 않았나 싶다. 내 취향이나 주관이 조금도 깃들지 않은 채 도장 찍어내듯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노인들은 대개 그런 일상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노년을 긍정하지 못한 채 오직 불편함과 쓸모없음으로 노화를 조명해온 미디어의 소비자로, 사회의 성원으로 산 결과였다. 케케묵은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는 노년, 다시 말해 햇볕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노인들은 쉽게 설명될 수 없는 한 명의 개인이었다. 특이했던 취향은 살아온 세월에 따라 축적되면서 더 뭉근해지기도 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종잡을 수 없이 별나지기도 했다. 뉴미디어 속 적나라하게 전시된 그들의 삶이 그랬을 뿐이다. 구태여 새롭다거나 혁신적이라고 칭송할 것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사람은 결국 '당신'과 '나'다. 밴드 음악을, 밀크티를, 산책을… (    )을 좋아하는 우리. 논픽션 그대로의 노년의 삶은 서글프지도, 외롭지도, 따분하지도 않았다.

 

 




* 글에 사용된 대표 이미지의 출처는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입니다.

 

 

참고 자료

- 신수현, 「뉴미디어 활용이 노인의 삶의 질 향상 및 미디어 인식에 미치는 영향: 영상제작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를 대상으로」,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2019

- 박채리, 「노인에 대한 낙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령집단별 비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7

- 김준아, 「한국 영상 콘텐츠에서 재현된 ‘노인’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2017

- 지영서, 「고령화 사회 한국의 노인 미디어 연구: 공영방송 KBS의 노인대상 프로그램 제작 환경과 제작사 인식을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 2010



[우제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