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속 그 여자

글 입력 2020.02.2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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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물랭 루즈의 천재 화가 툴루즈 로트렉 展이 열렸다. 19세기 말 파리 외곽에 위치한 댄스홀 물랭 루즈의 화려한 밤은 곧 파리의 밤이었고, 툴루즈 로트렉은 물랭 루즈의 가장 앞자리에서 그 밤을 함께했다.


로트렉은 무엇을 화폭에 담았는가? 흥겨운 무곡에 맞춰 캉캉춤을 추는 여인들, 검은 모자를 쓰고 품위 있게 낮은 목소리를 내뱉는 테너가수, 환호하는 귀족계급들. 이중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는 로트렉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그의 뮤즈 제인 아브릴을 그린 포스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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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아브릴을 홍보하는 로트렉의 포스터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실은 시대가 낳은 추악한 뒷면은 대개 예술의 주제가 된다. 로트렉의 포스터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다. 로트렉의 뮤즈 제인 아브릴은 물랭 루즈에서 활동하는 댄서였다. 물랭 루즈가 위치한 파리 외곽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뒤섞이고 새로운 예술이 실험되는 중심지이자 밤을 홀로 보내고 싶지 않은 많은 남성들이 매춘부를 찾으러 오는 곳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낸 제인 아브릴은 로트렉의 눈에는 단단하고 빛나는 열매였으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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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 포스터 속 제인 아브릴



툴루즈 로트렉 展의 두 번째 전시실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포스터 속 주인공이 제인 아브릴인 이유가 이것이다. 제인 아브릴을 안다면 툴루즈 로트렉이 물랭 루즈에서 어떤 위치였는지, 그가 어떤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봤는지 알 수 있다.

제인 아브릴은 아픔이 있는 사람이었다. 매춘부의 딸로 태어난 그는 무도증, 즉 틱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춤을 추기 시작했고 곧 ‘다이너마이트’라는 별명을 얻으며 크게 인기를 얻었다. 귀족 가문에서 자랐지만 다리에 장애를 가진 로트렉에게 물랭 루즈 사람들의 아픔은 왠지 모를 소속감을 가지게 했고 곧 그가 택한 예술의 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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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과 동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포스터계의 대가가 있다. 바로 알폰스 무하다. 공교롭게도 로트렉의 전시와 같은 시기인 현재 알폰스 무하 展이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로트렉에게 제인 아브릴이 있었다면, 무하에게는 사라 베르나르라는 뮤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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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의 Gismonda 포스터 속 사라 베르나르

 


알폰스 무하는 아르누보 양식의 선두주자로 불린다. 넝쿨 같은 머리카락과 자연에서 차용된 화려한 장식, 섬세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무하의 그림은 벨 에포크(좋은 시대)를 대표한다. 벨 에포크(좋은 시대)라 하니 19세기 산업혁명으로 풍족하고 여유로워진 파리의 생활상을 상상하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다. 일명 ‘좋은 시대’라는 단어는 산업혁명으로 얻은 물질적 풍족함에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린 그 당시를 후대의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만든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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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의 사라 베르나르

 


그래서인지 무하의 작품은 순수하게 아름답다.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고 평화롭다. 무하의 뮤즈이자 연극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는 그 속에서 원래 빛이었던 것처럼 빛나고 있다. 하지만 사라 베르나르 또한 쉽게 연예인의 삶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사라 베르나르는 수녀가 되고자 했지만 스무 살에 미혼모가 되었고, 결국 매춘부였던 엄마와 같은 길을 걷다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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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사라 베르나르

 


로트렉의 작품에도 사라 베르나르를 모델로 한 것들이 있다. 무하의 포스터 속 사라 베르나르와 꽤나 다른 좀 더 개성 있는 모습이다. 동일인물인지 의심할 정도다. 세 가지 이상의 색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로트렉과는 달리 알폰스 무하는 거의 모든 색을 사용했고,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꾸밈없이 화폭에 담으려 했던 로트렉과 달리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름답다는 찬사를 자아내는 요소들을 알폰스 무하는 화폭에 채워 넣었다.
 
둘 중 누가 더 천재이고 예술학적으로 뛰어난지는 가릴 수 없다. 의미도 없다. 단지 무수히 많은 퍼즐로 이루어진 19세기 초 파리의 가장자리 조각을 각기 다른 모서리에 채워 넣었을 뿐이다. 가장자리는 자꾸만 변하지만 그럼에도 꼭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고 싶다.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것이 선일 수도 있고
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악일 수도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살로메>(59p)
 
*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는
사라 베르나르를 위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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