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성당 화재, 그 후...

글 입력 2020.02.22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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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변하지 않는 도시 파리.


1년에 한 번 가족들을 보기 위해 한국에 간다. 매년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공항에 내리지만 집까지 가는 길을 매번 헤맨다. 갑자기 생겨난 건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가게들. 부모님이 계신 주소는 몇 년째 그대로인데, 나는 매년 다른 도시를 방문하는 느낌을 받는다.


2008년 프랑스의 앙제라는 도시에 살았었다. 2018년의 어느 겨울, 약 10년 만에 옛 추억을 찾아보기 위해 앙제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10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는데도 마치 어제 왔던 것처럼 도시를 누빌 수 있었다. 10년 전에 거닐던 거리, 살던 집, 자주 가던 빵집.. 다시 오기 전까지 10년 동안 도시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흰머리가 늘어난 빵집 주인과, 더 짙어진 주름의 집주인 할머니를 봤다면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있었을 테지만.


프랑스는 그런 나라이다. 중심인 파리도 10년이 지나도 큰 차이가 없다.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과 유적지를 지키고 보호하려는 강력한 문화예술 정책 때문이고, 그로 인한 강력한 도시 미관의 규제 때문이다. 길거리 간판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나라이다.


짧은 시간, 너무도 많이 그리고 빨리 변하는 한국의 모습은 사람들 마저 빠르고 쉽게 변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느릿한 프랑스가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을 느릿느릿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여유 있게 인생을 즐기는 파리지앵, 프랑스인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정작 사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느릿느릿하고 변하지 않는 아날로그 행정처리, 아직도 중요한 문서를 편지로 주고받고 (오리지널 도큐먼트를 중요시하는데 중간에 잃어버리면 답도 없다),  80년대 한국의 대학교를 연상시키는 듯한 대입 원서 처리 방식, 수강신청 방식 (최근 온라인 지원이 생겨나고 있기는 하다) 들을 보면  그냥 변하지 않는 것인지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것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핑계로, 나 역시도 한없이 게으 삶을 살고 있다. 차일피일 미뤄두는 일은 하루에 한 개씩 이틀에 두 개씩 벌써 몇 개가 쌓였는지도 모른다. 그 중 하나 노트르담 성당 전망대 올라가기가 있었다.


파리의 삶이 주는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는 유명 관광지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매달 첫 번째 일요일은 무료 개방이기 때문에 유명 박물관이나 성당을 못 갔다는 것은 사실 안 갔다고 해야 맞는 것이다. 매달 있는 날이니 다음 달에 가면 되지, 오늘은 날씨가 안 좋아.. 등등 노트르담 성당 전망대 올라가기로 마음먹은 지  벌써 몇 해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노트르담 화재. 가까스로 전소되는 것과 정면의 두 탑의 모양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성당 지붕을 태워버린 화재로 인해 전망대는커녕 내부는 물론, 성당 앞의 광장과 매년 봄이 되면 흐드러지게 피는 꽃나무가 있는 정원까지도 모두 출입할 수 없게 되었다.


화재 후 마크롱 대통령은 5년 내에 복원을 마치겠다고 했다. 집 앞 상가 건물을 철거하는 데에도 3년이 넘게 걸리는 나라인데, 문화유산 그것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적이 화재로 손실되었는데 고작 몇 년 안에 복원하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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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한창인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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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나기 바로 2주 전 찍은 사진.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노트르담 성당이 불탈 줄은.

그리고 이 아름다운 꽃나무를

가까이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직까지도 보수 공사 중이고 여전히 붕괴 위험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커져만 가고 있다. 복원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보수가 되려면 앞으로 3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아직 복원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복원의 시점을 어디로 둘 것인가. 노트르담 성당은 몇 세기에 걸쳐 완공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파괴가 되어 다시 짓기도 했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복원을 할 것인가 바로 화재 이전으로 돌릴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의 역사처럼 보수 후 새로 지을 것인가. 무엇이 원형이고 어디까지 똑같이 해야 하고 어디까지 다르게 해야 하는가. 이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것이 보존과 복원의 숙명일 것이다.


보존과 복원을 생각할 때면,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떠오른다. 물론 복원이 아니라 아직까지고 계속해서 짓고 있는 것이지만, 가우디가 죽었을 때, 그때 그대로 미완성인 채로 두면 어땠을까. 그 자체로 문화유산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노트르담도 화재가 난 그대로 두자는 의견도 있다.


결국 프랑스인들은 늘 그랬듯이 변화를 택하지 않는듯 하다. 최근 가장 힘을 얻고 있는 의견은 예전 그대로 복원을 하자는 것이다. 그들에 비해 짧은 시간 살고 있으며 빨리 빨리와 더욱 새롭게 더욱 다르게가 몸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도 쉽사리 변화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이라고 오죽할까. 이대로라면 전통과 역사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노트르담 성당 복원 제2라운드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다. 이 역시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도대체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무리 답답하고 느릿한 프랑스라도, 이 느림의 미학이 프랑스를 문화대국으로 만들어준 힘이라면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기꺼이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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