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야기를 변화시키는 작은 날갯짓,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공연예술]

글 입력 2020.02.2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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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이야기를 변화시키는 작은 날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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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은 한 편의 이야기에 비유되곤 한다. 삶이 이야기라면 각각의 챕터를 이루는 것들은 뭘까? 취업 준비생으로서 이력서에 쓰는 한 줄의 경력이나 남이 써주는 전기의 딱딱한 사실 말고, 진짜 나의 삶에 대해 쓴다면 그 이야기는 어떤 문장들로 쓰이게 될까.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토마스와 앨빈, 두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 삶의 장들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토마스는 자살한 친구 앨빈의 송덕문을 쓰려고 하지만 한 문장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다. 앨빈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의문과 죄책감 때문이다.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진 유명 작가’로 자신을 소개하는 톰은, 사실 송덕문뿐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의 작품도 쓰지 못하는 슬럼프에 빠져 있기도 했다. 톰에게 ‘아는 걸 써’라면서 나타난 것은 그의 머릿속 앨빈의 형상이다. 그렇게 둘의 유년 시절부터 마지막 만남까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톰의 유년의 이야기를 이루는 것들은 전부 앨빈과 함께한 순간들이다. 둘의 첫 만남인 레밍턴 선생님의 할로윈부터 앨빈 아버지의 신비로운 책방에서의 모험과 같은 따뜻한 추억의 더미. 그리고 톰이 성장한 후에도 앨빈은 햄릿에서 유령의 출현 같이 모든 사건의 시작으로 남는다. 톰에게 작가의 꿈을 갖게 해준 <톰 소여의 모험>을 선물해준 것도, 대학에 제출할 단편 <나비>를 보내라고 해준 것도 앨빈이었기에. 그런데 톰은 앨빈과 마을의 작은 책방을 떠나고, 그의 마음 속 거리마저 앨빈에게서 멀어져 간다. 그가 새롭게 쓰기 시작한 인생의 장은 ‘보다 커다란 일, 돈과 명예’이다. 그의 명성을 가능케 한, 소설은 어떤 내용이었나? 그 소재는 모두 앨빈과 함께한 이야기였다. 그러니 앨빈과의 두절 이후 그가 더 이상 글을 잘 쓸 수 없던 것도 당연하다. 앨빈과 톰의 마지막 만남, 앨빈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고인의 생을 시시한 삶으로 치부하고, 앨빈은 그의 영감의 출처를 묻는다. 나비처럼 작지만 더없이 소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이 톰의 삶이란 것, 앨빈이 톰에게 일깨워주려던 것은 그것이었는데 톰은 앨빈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날카롭게 되받아친다.
 
앨빈의 죽음에 가장 가까웠던, 그리고 톰의 자책감의 가장 깊은 바닥에 있던 장례식의 기억을 회상에서야 톰은 마침내 깨닫게 된다. 톰의 이야기 속에 남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자신을 가장 사랑해준 앨빈의 이야기라는 것을. 톰이 송덕문을 완성하여 마지막으로 뱉는 대사, ‘앨빈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는 톰이 지지부진하게 쓰지 못했던 시초의 문제, 송덕문을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톰이 지금껏 써왔던 소설들은 앨빈과 함께한 이야기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곧 자기 삶에 있어서 앨빈이 차지하던 어마어마한 부피를 마침내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앨빈은 왜 자살했을까?’ 톰이 마침내 가장 두려운 기억을 마주해 도달한 결론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답은 주어져 있었다. ‘아는 걸 써 톰, 아는 대로’ 문서로 기록된 자료와 달리 머릿속의 기억은 항상 현재와 엮여 있다. 스쳐간 진실을 찾기 위해 톰은 기억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앨빈의 진실은 그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밀봉되었기에 알 수 없다. 그러나 톰은 분명 하나의 진실을 발견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선 안 된다는, 진부하지만 진정 옳은 진실을. 대규모의 기상 현상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으로 만들어진다는 나비 효과처럼, 우리 삶의 이야기도 사소해 보일 정도로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다. 

 


[차송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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