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슬픔을 공부하기로 했다 [도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글 입력 2020.02.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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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슬픔은 어렵다


 

자라면서 느끼게 된 것들 중 하나는, 슬픔이 참 어려운 감정이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만 해도 나의 모든 슬픔은 눈물로 드러났었는데, 이젠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경우 슬픔에 울컥하긴 하지만, 때로는 눈물을 애써 참기도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고, 하염없이 무기력해지는 경우들도 생겼다. ‘어떤 슬픔에는 이렇게 대처해야 해’ 라고 분류를 해놓은 건 아니지만, 그만큼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의 층위가 다양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만도 그런데, 하물며 타인의 슬픔은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흔히들 타인의 감정에 대해 ‘공감’한다고들 한다. 그리고 이 공감하는 일은 주로 타인의 아픔에, 고통에, 호소에.. 등과 같이 슬픔의 범주 내에 드는 감정들에 이루어진다. “나는 당신의 상황을 알고, 당신의 기분을 이해한다”며 당신의 마음과 같이하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은 완벽할 수 없다. 당장 함께 운동장을 뛰던 친구가 무릎이 깨져 고통스러움을 느낄 때 나는 그 고통을 온몸으로부터 마음에서 느낄 수 있을지, 가까운 친구가 십 년 넘게 가족으로 지냈던 강아지를 하늘로 떠나 보냈을 때의 슬픔과 공허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지. 살면서 한 번 이상 겪게 될 일상적인 타인의 슬픔에도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완전히 공감할 수 없었다.

 

슬프지만, 슬픔을 공부해보는 일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것이다. 그러나 평생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 졸고, <책을 엮으며>,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책의 첫 글, 서두에 저자가 인용한 문장을 보고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타인의 슬픔에 대해 지겹다라고 말하는 일 – 그 참혹한 일이 바로 얼마 전 까지도, 바로 가까운 곳에서도 흔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 따라서 “슬픔에 공감합니다”와 “슬픔이 이젠 지겹다”가 아무렇지 않게 혼재된 요즘에는 슬픔이라는 감정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는 생각. 둘째, 하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은 결국 무거울 수 밖에 없기에, 이 한없이 무거운 감정을 혼자가 아닌 여럿이 감당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

타인의 슬픔을 함께 감당하려 할 때, 그 슬픔은 내겐 위로로 표현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인식이 곧 위로라는 것’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즉, 정확히 아는 일이, 공부하는 일이 곧 슬픔을 알고 느낄 수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우리는 같은 슬픔으로 위로의 한 마디를 해낼 수 있게 된다.
 
 
 
슬퍼하며, 슬픈 얼굴들을 들여다 보기


이 책은 어쩌면 ‘슬픔 모음집’이라고 해도 될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지난 8년 간 평론가로서 마주한 우리 사회 곳곳의 슬픈 얼굴들이 한 데 모여 있다. 슬픈 이유와 그 표정도 어찌 다양하던지,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슬픔이 있었구나 싶다. 이 말인즉슨,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슬픔들을 몰랐구나와 같다. 슬픔에 대한 그동안의 무지를 깨달으며, 조금 더 슬퍼지기도 한다.

‘인간의 디폴트에 대하여’라는 책 속의 글에서 나는 다시금 저마다의 슬픔을 들여다 봐야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성인으로서의 삶을 그저 편안하고 순조롭게 그럴싸한 모습으로 죽은 사람같이 살지 않는 방법, 무의식적인 일상의 계속이 아닌 삶을 사는 방법, 또한 자기 머리의 노예, 즉 허구한 날 독불장군처럼 유일무이하며 완벽하게 홀로 고고히 존재하는 태생적 디폴트 세팅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 《이것은 물이다》, 나무생각, 2012, 66쪽


 
나의 생각과 감정, 논리들만을 중심에 놓고 새상을 해석하듯 “디폴트 세팅”을 해놓게 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갇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나 아닌 (가상)인물에게 몰입해 울고 웃고,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현실에서건 우리는 ‘나’를 떠나 다르게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그 다른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존재할 뿐인 삶에 의미를 더하고 빼고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슬픔을 공부하는 것 역시도 나와, 당신과, 우리의 선택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나조차 명확히 알 수 없는 나의 ‘디폴트 세팅’을 떠나 내 스스로에게, 당신에게, 우리 모두에게 제대로 된 위로의 말을 해내기 위해 슬픔을 공부하기로 했다.

 

 



[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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