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함께하는 나만의 불금 즐기기 - 막차에서 첫차까지 ALL-NIGHT

WOMEN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사마에게 + 윤희에게>
글 입력 2020.02.2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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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입구(이수)역에 있는 메가박스에는 특별한 문화공간이 있다. ‘10을 향한 9의 열정’ 바로 아트나인이다. 아트나인은 0관과 9관, 오직 2개의 관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일반 영화관에서 보기 힘든 예술영화를 상영한다. 아트나인의 특별한 프로그램으로는 ALL-NIGHT이 있다. 바로 막차시간부터 첫차 시간까지 3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는 것이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만 진행된다. 6시간 연달아 보는 것이 힘들 관객을 배려해 밤새 따뜻한 커피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며, 한 편씩 끝날 때마다 20분씩 쿨타임을 가진다. 또한 두 관에서 다른 라인업으로 밤새 상영한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의 연령대가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이다. 친구랑 같이 온 사람부터 혼자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고, 대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영화 시작 직전, 아트나인의 관계자분이 관객들에게 심심한 안부를 물으며 상영 영화에 대한 생각을 본인만의 입담으로 짧게 설명한다. 단골 고객이 많다 보니, ‘오늘 보러오셨네요’하며 아는 체도 한다. 이번에 관람한 영화는 전석 매진이었는데 역대급 라인업이라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사마에게 + 윤희에게>였다. 세 영화는 'WOMEN'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선별된 것이다.

 

 

*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 편 다 '여성'과 ‘소수자’를 다루는 영화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윤희에게>는 성소수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마에게>는 시리아 내전안에서 자유를 갈망하고 외치는 소수자를 보여준다.


첫 번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여성 감독이 찍은 여성 중심의 퀴어 영화다. 심지어 정략결혼을 위해 초상화가 필요한 귀족 아가씨와 그녀를 그리러 온 화가의 이야기이며, 18세기 프랑스라는 시대를 가지고 있다. 최근 영화계에서 도저히 관심이 없을 수가 없는 영화이다. 이를 대변하듯이 수많은 대중들의 기대작으로 손꼽혔으며, 시상식에서 노미네이트되고 칸에서 2관왕이라는 쾌거 또한 얻었다.

 

영화의 문외한이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는 ‘감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상의 색감을 이용한 대비와 배치, 매일 같이 마리안느(화가)의 방에서 타오르던 모닥불이 엘로이즈(아가씨)에게로 옮겨 갔을 때, 차갑고 추워보이던 초반과 달리 둘이 사랑을 확인한 순간부터 미묘하게 따뜻해지는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코르셋을 단단히 조인 몸매를 풍성하게 부각한 드레스가 아닌, 나체이거나 가벼운 잠옷 차림의 그들일 때 가장 서로에게 솔직한 사랑을 한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영화 후반부에 눈에 띄는 부분은 오르페우스 신화 이야기이다. 같은 신화를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가 연인이 아닌 시인의 선택을 한 것이라 하고, 엘로이즈는 오르페우스가 뒤돌아 본 것이 아니라 에우리디케가 뒤돌아보라고 했을 것이라 한다. 항상 오르페우스 신화는 오르페우스의 부주의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고 에우리디케는 신화의 주인공임에도 배제된다. 그녀의 말을 통해 통해 에우리디케가 하나의 주체적인 인물로써 살아나고, 그 행동의 타당성을 말한다. 초상화가 완성되고 그들의 사랑이 인정받기 힘들기에 마리안느는 도망치듯이 집에서 나온다. 문을 닫기 직전에 엘로이즈는 ‘뒤돌아봐’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뒤돌아보는 순간 문은 닫히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 엘로이즈가 마치 에우리디케처럼 먼저 ‘뒤돌아보라’라고 한 이유는 사랑을 지속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닌,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남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평생 추억할 것임을 이 장면과, 마지막의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통해 관객에게 증명한다. 그 순간 다시 울린다. 비발디의 사계가.

 

두 번째 영화 <사마에게>는 우리가 흔히 아는, 시리아 난민에 관한 이야기이다. 알레포를 너무나 사랑해서 떠나지 못했던, 자유를 외쳤던 가족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와드 알 -카팁으로 그녀는 내전으로 폐허가 된 알레포에서 딸 ‘사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다. 꾸며낸 것이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사로만 접하던 시리아 내전의 일상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녀는 알레포를 너무 사랑해서, 지키기 위해 남았다. 그 곳에서 사랑을 했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 사마는 ‘하늘’이라는 뜻으로 태어난 날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보며 지었다고 한다. 관람하며 참혹한 일상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상상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자다가 언제 집 지붕 위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른다. 나의 아이가, 나의 형제가, 나의 친구가 죽는 일은 너무나도 잦다. 그 와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마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든 와드 알-카팁 감독님께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며 시리아 난민에 대한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나라를 피해 도망친 것이 아니라, 그곳이 너무나도 막막하기에 쫗기듯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감히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 영화는 <윤희에게>이다. 김희애, 김소혜 등의 익숙한 배우와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이미 익히 들은 작품이다. 운이 좋게도 관람 날, 아트나인 관계자분이 오늘이 마지막 상영이라고 하셨다. 어느 날, 윤희에게 편지가 한 통 날라온다. 이를 몰래 보게 된 윤희의 딸 ‘새봄’은 윤희에게 함께 여행을 제안하고 떠나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온통 눈이다. 항상 설경이라는 것은 따뜻해 보이는 마치 설화의 한 부분같은 이미지를 남겨준다. 영화 속에서 담담하게 흘러가는 윤희와 준의 감정선과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영화에 대한 기본 정보를 보지 않은 상태로 찾아간터라 퀴어영화라고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새봄이 엄마에게 ‘엄마는 아빠만나기전에 연애해봤어?’라고 하는 순간 ‘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윤희와 준은 연인이었던 사이였다. 관계가 알려지는 순간 주변으로부터 무서워 도망쳤던 둘은 여전히 서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새봄의 아빠가 윤희를 찾아왔을 때 우는 장면이었다. 먼저 찾아와서 재혼 사실을 알릴 정도로 얼마나 그가 그녀를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을 홀연히 떨쳐낼 수 있는 윤희는 본인만의 인생을 다시 준비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를 보고 같이 나온 사람들과 함께 첫차를 기다리며 여운을 즐겼다. ALL-NIGHT은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아주 우연히 다른 관점들을, 다른 생각을 선물해주는 시간이다. 다음 올나잇은 어떤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만약 하루의 끝과 시작을 영화속에 흠뻑 빠져있고 싶다면 정말 추천한다.

 


[김화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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