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차가울수록 인상적이다 -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영화를 통해 복수를 그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글 입력 2020.02.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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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효과나 사운드 없이 영화는 극의 긴장과 몰입감을 마지막까지 이끌어 간다. 기존 관행적 시장의 흐름과 관객 욕구에서 벗어난 새로운 전개를 통해 막을 내린 후까지 충격을 남기기도 한다. 이 작품이 갖는 가장 큰 색깔이 바로 이 부분이다. ‘복수는 나의 것’은 영화라는 콘텐츠가 작가 개인이 추구하는 개성과 메시지가 반영된 가치의 산물이란 점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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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영화는 캐릭터를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눠 갈등을 그려내는데 이는 마르크스주의로 살펴볼 수 있다. 류는 대표적인 노동자 계층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때문에 갈등을 겪는 전형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굉음이 일상적으로 울려 퍼지는 작업 환경에서 무기력하게 작업하는 그의 모습은 작품 속 설정된 노동자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나타낸다. 특히나 청각 장애인으로 설정된 점은 열악한 노동자 처우를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통스러운 작업 환경임에도 남들처럼 굉음을 느끼지 못하고 무던하게 반응하며 누구에게도 배려 받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는 노동자들이 오랜 기간 시달리는 문제 자체를 타개하기보단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버린 현실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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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의 연인인 영미는 자본가와 대립하는 마르크스주의 프롤레탈리아 혁명적 인물로 그려진다. 작품 속 어떤 캐릭터들보다도 자본가들을 혐오하고 무정부주의를 주장한다. 그녀는 문제 발단의 시초가 되는 납치 사건을 류에게 설득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는 자본가와 대립하는 마르크스주의가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급전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자본가인 동진의 딸을 납치 대상으로 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까지 하는데, 이 모습은 단순히 힘없는 노동자 계층의 캐릭터를 넘어 전체 구조에 도전하고 대립하는 역할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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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의 사장과 동진은 자본가로서 부르주아 계층을 대변한다. 류의 사장은 완전하게 노동자 계층과 대립하는 자본가로서 자신의 이익과 입장을 가장 우선한다. 오랜 기간 근무한 류를 부당하게 해고함으로써 노동 계층과 가장 적대적인 지점에 서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사장으로부터 노동 계층인 류가 정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누나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장기밀매업자를 찾거나 보배를 납치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동진은 자본가 입장이지만 조금은 다른 캐릭터로 제시된다. 류의 사장과는 달리 전기기술자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인물로서 노동자와 자본가 두 집단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캐릭터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후, 자본가 계급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질된 ‘부르주아’란 개념이 동진에게 있어선 적용하기에 적합하다. 본래 부르주아란 개념은 르네상스 시대 ‘성벽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중산층 상인을 의미한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성벽 안에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상공업에 종사하고 자수성가한 인물들이 해당된다. 이러한 어원의 개념에서 살펴볼 때 동진의 경우 마르크스주의에서 설명하는 자본가와 마르크스주의 이전의 부르주아 계층까지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극단적으로 노동 계층과 대립하는 자본가의 입장이 아니기에 영화에서 제시하는 동진과 노동자 간의 이데올로기 갈등은 더욱 치열하게 그려진다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


 

매번 변화하고 순환하는 영화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필요한 영화의 구조는 아이러니이다. 아무리 재밌거나 볼거리가 넘치는 작품이어도 기존의 페이소스와 흐름을 지속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한계가 있기에 관객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전개를 통해 충격과 의문을 제시하는 연출이 필요하다. ‘복수는 나의 것’은 이러한 아이러니의 특성을 극대화해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 갖는 아이러니는 특히나 사건에서 부각된다. 영화는 충격적인 극 전개와 대사를 통해 관객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사건은 류의 누나와 보배의 죽음이다. 두 캐릭터의 죽음은 작품의 모티프로 활용되며 급작스러운 전개로 제시되는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극의 흐름과 전개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설정한 구조로써 더욱 강한 충격을 제공한다. ‘복수는 나의 것’의 가장 뛰어난 색깔이 바로 이러한 설정이다. 만약 작품이 캐릭터들의 죽음을 암시하거나 설명할 단서를 조금이라도 남기고 연결에 치중했다면 관객들은 그만큼 충격과 신선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자체의 전개나 엔딩 역시 어둡고 극단적으로 흘러간 것 역시 신파극으로 작품이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감독의 색깔이 아닐까 싶다.


보배의 죽음은 뇌성마비 청년 캐릭터의 개입으로 더욱 충격적인 아이러니를 제공한다. 어찌할 줄 모르는 류를 뒤로 두고 뇌성마비 청년은 익사한 보배에게 다가가지만, 그녀를 구하진 않고 탐하던 목걸이만 물어서 나올 뿐이다. 처음 이 시퀀스를 접할 때는 이 캐릭터가 왜 등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감독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보배가 죽는 전개 역시 누나의 죽음처럼 갑작스럽게 전개되며 관객들은 아이러니를 느끼게 되지만, 뇌성마비 장애인이 보배의 시체에서 목걸이를 빼 오는 설정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시퀀스의 임팩트를 더욱 강렬하고 충격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 캐릭터가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뇌성마비란 설정이었기에 더욱더 주인공인 류를 대안이 없는 나락으로 몰고 가는 역할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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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와 동진이 죽는 장면 역시 관객들의 아이러니를 이끌어내기 충분하다. 두 캐릭터가 죽기 전 각자의 집에서 대치하는 장면은 기존 영화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없던 구조이기에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충분하다. 특히나 자신의 딸이 죽은 장소에서 류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리는 동진의 모습은 작품의 카피처럼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파국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적나라하게 노출된 끊긴 아킬레스건 장면과 피로 물들어 번져가는 강의 그림은 영화의 결말인 파국과 비극적 엔딩을 제시하는 동시에 동진 역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동진은 결국 토막 난 류와 마주보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동진이 처절하게 죽어가는 소리는 제시하며 극단적인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결말을 넘어 엔딩 크레딧까지 이러한 아이러니를 제시한 이유가 무엇일까. 내러티브로써 제시하는 인간의 몰락과 그로 인한 파국도 그렇지만, 영화는 아이러니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영화의방향과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싶다. 복수의 연쇄성과 극단적인 그림을 제시하며 가장 불편하고 치열한 장면들을 관객에게 던짐으로써 관객들은 작품의 캐릭터들과 같이 이전에는 겪어본 적이 없는 침식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창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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