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찌꺼기 염색체'를 지닌 한 남자의 삶과 선택, 그리고 자유 - 상속 [도서]

<상속> 리뷰
글 입력 2020.02.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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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이야기 속에서

빛나는 행복의 노스탤지어!

 

장폴 뒤부아의 소설이 언제나 주목하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그의 소설은 멀리서 주제를 찾기보다는 그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소설로 녹여내는 작가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삶의 불행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이 《상속》의 중심축을 이루는 주제이다.

 

 

상속 표지 입체.jpg

 

 

 

‘찌꺼기 염색체’의 상속


 

스탈린의 뇌조각이라 주장하는 물건을 간직하는 할아버지와 남매간 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어머니와 삼촌, 그리고 그런 어머니가 죽은 날 태연하게 송아지 간 요리를 먹던 아버지. 이 네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자살로 생을 끝맺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폴은 그러한 유전자를 상속받았다. 자살 유전자가 정말 과학적 증명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자라난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폴은 이것을 ‘찌꺼기 염색체’라 불렀다. 그리고 그는 의원을 물려받길 원하는 아버지의 은근한 소망을 뒤로한 채 마이애미로 가 펠로타 선수가 된다. 그는 말한다, 그곳에서의 4년이 삶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아버지마저 기이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폴은 가족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다. 재산과 집은 물론 아버지의 직업까지, 진정한 상속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고향 툴루즈에서의 10년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끝내 벗어날 수 없었던 가족들의 유산, 바로 그 ‘찌꺼기 염색체’와 대면하는 일은 근본적인 삶의 불안을 직시하는 일이었으니까.


 

 

‘견뎌내는’ 삶


 

폴이 스스로의 삶을 사랑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시종일관 무기력한 문체와 가족을 대하는 비관적인 태도는 그가 자신의 삶조차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구해준 개 왓슨을 통해 애정을 느꼈고, 친구 에피파니오를 통해 활력을 얻었으며, 여인 잉빌 룬데를 통해 구원을 찾았다.

 

삶에 대한 사랑의 척도가 꼭 행복과 불행은 아닌 만큼, 그가 삶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내던져진’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뎌내는가’, 그것이 폴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그것은 이제 이 지상에 나 홀로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홀로 맞서 싸워야했다. 내 아버지를 9층에서 뛰어내리도록 몰아붙인 유전자, 격리병동에서 도망친 나환자처럼 분장시켜놓은 그 유전자와 맞서 싸워야했다.


- p.69-70


 

폴은 외면하지 않고, 자각했다. 자신의 유전자와 그것이 불러일으킬 결과를.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함으로써 가짜 희망을 찾거나 구원에 기대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마음의 기원(起原)인 바스크 지방과 펠로타에 온 열정을 쏟아 부었다. ‘가라앉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앞발로 물을’ 차던 개 왓슨의 ‘두 앞발을 그러잡고 배위로 끌어 올렸’듯이, 그의 삶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두 손을 조타핸들에 올려두고, 뱃머리를 가상의 목적지를 향하게 내버려둔 채 울기 시작했다. 그런 순간에 이성을 지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 p.301


 

삶은 때로는 느닷없는 슬픔과 상실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는 폴의 유전자를 지닌 삶만이 아닌, 모든 삶이 예외가 아니다. 그러한 삶의 공격에서 우리는 이성을 이용해 견뎌낸다. 폴이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아버지의 스카치테이프는,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에 따른 슬픔을 견뎌내기 위한 방패로 사용했던 아버지의 이성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의 ‘자유’


 

폴이 마침내 가족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결말은 어떤 식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결국 유전자를 극복하지 못한 비관적인 결말로 바라보며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소설은 열린 텍스트이니만큼 어떤 해석을 하든 자유일 것이다.

 

다만 폴의 자살 또한 삶의 자유를 찾아나서는 그의 선택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불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 4년만 행복했다고 스스로 말한 만큼, 그 외 시간이 불행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단지 그는 가족들의 자살을 겪고, 의사로서 조력자살을 도왔던 만큼 늘 죽음을 가까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뿐이다.

 

그에게 죽음은 또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닌 그 너머의 삶을 그리는 것이다. 폴은 늘 무기력해보이면서도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삶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택했던,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이었다. 비록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

 

2019년 공쿠르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프랑스의 대문호 장 폴 뒤부아. <상속>의 폴은 그의 아홉 번째 폴이라고 한다. 그의 또 다른 폴들의 삶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상속 (La Succession)

 

지은이 : 장 폴 뒤부아 (Jean-Paul Dubois)

옮긴이 : 임미경

쪽수 : 376

발행일 : 2020년 1월 31일

값 : 15,000원

ISBN 89-8437-394-8 03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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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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