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던지고 드러내고 감당하는 것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어떤 선택이나 행동은 그 의미가 선명해지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글 입력 2020.02.1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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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준호는 입시경쟁의 불안과 초조함을 여성용 레오타드를 착용하고 사진을 찍는 독특한 취향으로 심적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과외모임 엄마들의 과도한 통제와 친구들의 선입견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비밀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레오타드를 입은 준호의 사진이 얼굴이 모자이크 된 채로 올라오고 준호는 그것을 올린 사람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희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체육 수행평가에서 짝을 구하지 못했던 희주가 준호의 사진을 빌미로 체육 수행평가 과제를 함께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준호와 희주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 주변 친구들로부터 의심과 의혹을 받게 된다.


 


저마다의 결핍을 가진 인물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2).jpg

사진 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시놉시스를 읽으면서 희주의 동기가 궁금했다. 희주는 단지 수행평가 과제를 하기 위해 준호의 사진을 올렸을까? 이 의문은 공연을 보면서,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각각의 인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마다의 결핍이 있었고, 그것을 마주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희주는 다른 사람이 곤란해질지도 모를 일을 저지르고는 후회하고 힘들어했다. 레오타드를 입은 준호의 사진을 게시판에 올리고, 가까운 친구였던 민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민지가 가진 안나수이 손거울을 훔친 희주가 밉지 않았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완벽하지 않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스스로도 상처 받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레오타드를 입는 것의 의미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5).jpg

사진 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준호가 레오타드를 입는 것에서 심적인 안정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명확히 규정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단순히 수많은 습관들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준호의 성 정체성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수험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일시적인 행동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연극을 보면서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그것을 명확하게 정하고 설명하기를 바라는 태도 자체가 폭력이 된다는 점을 알았다.

 

준호는 그냥 레오타드를 착용하는 일이 지금의 자신에게 행복을 주고 위안을 주기에 입는 것뿐이다. 어떤 선택이나 행동은 그 의미가 선명해지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찾아나가는 시기라면 더더욱 빈칸은 빈칸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나도 모르게 규정하려고 했던 준호의 취향이 그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임을 알게 되자 준호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짐을 느꼈다.

 

연극에서 예상치 못했던 지점은 준호가 체육 수행평가 시간에 레오타드를 입고 나타나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준호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정면 돌파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쉽게 내던질 수 있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동시에 찾아온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내던지고, 드러내고, 감당하는 것. 준호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사실상 앞뒤 상황이나 이후에 발생했을 일련의 사건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다가왔다. 준호의 전학이 슬프거나 안타깝지 않았다. 준호가 감당하기로 한 선택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인상적인 무대 연출, 아쉬운 음악의 활용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4).jpg

사진 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무대 연출이 기억에 남았다. 일정한 비율로 구획된 철골 구조의 무대 위로 정방형의 조명이 공간을 선택적으로 비춘다. 쇠파이프로 설치된 구조물은 철봉 연습을 할 때나 역동적인 춤을 출 때 활용되기도 하고, 인물들 간의 단절을 표현하거나 두 인물이 연결되는 공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가 앉았던 앞쪽 자리에서는 시야각에 따라 인물이 분할되어 보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시각적 효과는 내적인, 외적인 갈등을 겪는 인물들의 상황과 겹쳐졌다. 전체적으로 검정, 회색 톤의 무대, 그 위로 세워진 쇠파이프가 주는 차갑고 날선 느낌은 계속해서 재단되고, 몰아세워지는 이들의 현실을 시각적으로 전달했다.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분할된 무대는 두 개의 공간을 동시에 표현하기도 하는데, 각각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듯한 전달 방식이 연극적인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전환될 때 그 흐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소리 지르며 끝나는 장면이 있으면 그 다음 장면에서 다른 인물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온다거나, 바로 앞 장면에서 엎어버린 물을 그다음 누군가 대걸레로 닦으며 등장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공간적 배경이 학교라는 점과도 잘 부합하는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쉬웠던 점은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었다. 연극에서 사용된 음악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인물들이 춤을 출 때 나온 경쾌한 음악, 다른 하나는 희주와 준호가 서로가 가진 고민을 나눌 때 삽입된 서정적인 음악이었다. 연극의 흐름과 부딪힌다고 느낀 것은 후자였다. 희주의 대사와 함께 재생되었던 슬픈 분위기의 음악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감정 전달을 방해하는 듯했다. 연극 안에서 희주와 준호가 갈등을 겪고 변화하기까지의 과정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그 틈을 메우기 위한 요소로 음악이 사용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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