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패션담론(2) - 어댑티브 패션 [패션]

글 입력 2020.02.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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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스맨>에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는 주인공 에그시가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수트를 입는다. 그의 눈엔 전에 없던 자신감이 넘친다. 필자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의 몸에 맞고, 마음에 드는 훌륭한 옷을 걸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행복한 일이다. 옷은 나의 몸을 외부 환경으로 보호하고, ‘멋’이라는 미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하는 도구이자, 개성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훌륭한 표현 수단이기도 하다.

때로 우리는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것 역시 아주 큰 특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가까운 교외의 아웃렛에는 제때 팔지 못해 처분하는 옷이 창고 가득히 쌓여있고, 유행에 민감한 브랜드들은 사계절 내내 끝없이 재봉틀을 돌린다. 그러나 신체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지가 멀쩡하고’, ‘표준 신체 규격을 갖춘’ 사람들을 위해 생산되는 많은 옷은 그림의 떡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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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맥퀸 쇼에 등장한 에이미 멀린스와 그녀의 목제 의족


 
신체적 장애가 미적 가치와 개인의 의사 표현에 있어서까지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다. 선구자적인 인물들은 이러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은 1999년 알렉산더 맥퀸의 S/S 쇼의 오프닝이었다.

장애인 육상선수인 에이미 멀린스가 수공예 목제 의족을 착용하고 런웨이에 등장했다. 장애가 극복 가능한 것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방해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했다. 최근 뉴욕 패션위크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런웨이 오브 드림즈’가 열리기도 했고, 서울 패션위크에도 패럴림픽 대표팀 선수가 무대에 오르는 등 비슷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영역에선 여전히 어려움이 많이 남아있다. 기존의 의류는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스스로 착용하기 어렵고, 활동하기 부적합한 형태와 소재로 제작된 경우가 많다. 많은 장애인이 선택의 폭조차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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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플라이이즈 시리즈. 장애를 가진 한 소년의 부탁으로 처음 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극복을 위해 등장한 것이 소위 어댑티브 패션(Adaptive Fashion)이다. 장애인의 신체적 특징을 고려해 제작된 의류를 의미하는데, 타미 힐피거, 나이키 등의 글로벌 브랜드들이 전문적으로 생산 중이며 국내에서는 삼성물산이 런칭한 브랜드 ‘하티스트’가 대표적이다. 이들 브랜드는 단순히 편한 옷이 아닌, ‘멋지고 예쁜’ 옷을 만드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장애인 의류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수트의 셔츠에 자석 단추를 달아 한 손으로 잠그기 쉽게 한다거나, 겨드랑이 부위에 신축성 있는 소재를 사용해 휠체어를 끌 때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끈 대신 지퍼로 잠글 수 있는 운동화를 만든다. 장애인들의 욕구와 어려움을 고루 고려해 제작한 의류들은 여러 방식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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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능성을 위한 패션을 추구하는 삼성물산의 '하티스트'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WHO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10억 명의 사람들이 크고 작은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그에 비해 어댑티브 패션은 갓 발걸음을 뗀 단계인 만큼, 향후 더 많은 종류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한두 개의 대형 브랜드들의 일시적, 시혜적 캠페인으로 남지 않으려면 후발 주자들의 등장과 시장의 확장도 중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장애인 취업률은 37%에 불과한데, 이들의 장애가 경제적 소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가격에 의류를 공급할 방안 역시 고려해야 한다.

어댑티브 패션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개념임에도 불구, 많은 사람의 공감과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어댑티브 패션 브랜드 하티스트의 슬로건은 “모든 가능성을 위한 패션”이다. 신체적 장애가 누군가의 가능성과 욕구를 절감시켜선 안 된다. 그렇기에 어댑티브 패션의 등장은 그 자체로 매우 반가운 일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역할은 이렇게 긍정적인 행보가 지속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을 보내는 것이리라 믿는다.
 

[류형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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