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념과 혐오 사이, 연극 마터(MARTYR) [공연]

글 입력 2020.02.11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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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순결한 자, 돌을 던져라

연극 마터(MARTYR)

 

 

2020_백수광부_마터_포스터(최종).jpg



벤야민은 수영수업에 들어가지 않는다. 수영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종교적 신념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엄마와 선생님들은 벤야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벤야민의 지도교사이자 과학 선생님인 로트는 벤야민이 심한 사춘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이끌어주려 하지만, 하루종일 성경을 읽는 벤야민의 신념과 반항은 더욱 거세진다. 로트는 벤야민을 상대하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하지만, 벤야민의 반항을 제어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로트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

 

연극이 끝나고 소극장에는 찝찝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나 역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 연극 마터는 그만큼 무겁고, 불쾌하기까지 했던 연극이었다.

 

극은 수영수업을 거부하는 벤야민과 어머니의 갈등으로 시작된다. 어머니의 계속되는 추궁에 벤야민은 종교적 신념때문이라고 밝힌다. 아마 벤야민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수영시간에 여학생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이나 제어할 수 없는 신체적 변화에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거부감은 성경 구절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지고 만다. 교복을 입고 수영장에 뛰어들고, 신체 부위를 다 가리는 수영복을 입을 것을 주장하면서 벤야민은 학교의 문제아로 부각된다.

 

 

2020_백수광부_마터_홍보사진 (2).jpg

 


특히 벤야민은 과학선생인 로트와 가장 심하게 대립한다.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설명하는 로트와 성경 구절을 통한 벤야민의 시각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생식과 피임에 대해 강의하는 로트의 수업에서 벤야민은 이는 부정한 것이라며 전라로 시위를 하기까지 한다. 진화론을 배우는 날엔 원숭이 가면을 쓰고와 로트를 조롱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서 벤야민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가장 극심하게 대립하는 로트였다. 로트는 초반의 벤야민을 바라보며 학생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스승의 의무를 되새기는 교사였다. 벤야민의 행위를 사춘기 학생의 일탈이라고 단순히 치부해버리는 마르쿠스 선생 같은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생 전체를 책임지고 관리해야하는 교장은 또 어떠한가. 그는 소통이나 대화 없이 그저 학교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회피하려는 인물이었다.

 

로트는 벤야민을 이해하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한다. 하지만 성경을 읽는 로트는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로트가 성경을 읽어갈수록 벤야민과 로트의 갈등은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성경 구절 하나하나를 반박하는 로트를 향한 벤야민의 분노와 증오는 점점 더 커져가고 벤야민은 급기야 로트의 이름을 지적하며 유대인이라고 혐오하기까지 한다. 로트의 애인인 마르쿠스 선생은 광신도가 되어버렸다며 로트를 혐오하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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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막바지에서 상황은 더 극단적으로 이어진다. 몸이 불편한 게오르그의 다리를 고쳐주겠다며종교적 신념을 주입하던 벤야민은 급기야 게오르그를 이용해 로트 선생의 사고사를 계획한다. 게오르그는 양심적 가책을 느끼며 이를 실행하지 않았고 분노한 벤야민은 게오르그의 머리를 돌로 내리친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에서 극중 인물들은 모두 한 곳에 모인다. 갈등하는 벤야민과 로트, 그 둘을 중재하려 하는 듯해 보이지만 전혀 소통하지 않는 다른 교사들, 부모의 역할을 회피하고 교사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벤야민의 어머니, 벤야민을 단지 자신이 운영하는 교회의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던 목사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인물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그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서로를 향한 끝없는 혐오가 계속되는 장면을 바라보며 지금 이 시대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해나 공감없이 반대 진영을 향해 끊임없이 혐오를 쏟아내는 모습.


연극 마터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마터
- MARTYR -


일자 : 2020.01.29 ~ 2020.02.16

시간
평일 8시
주말 4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선돌극장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기획

극단 백수광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극단 백수광부
 
 
극단 백수광부(白首狂夫)는 1996년 연출가 이성열과 젊은 배우들이 실험연극 공동체를 표방하며 출발했다. 장정일의 시집을 해체 재구성한 <햄버거의 대한 명상>이 창단작이다. <굿모닝? 체홉>, <야메의사> 등 배우들의 몸과 즉흥연기에 기반 한 공동창작 작업을 지속해왔으며, 최근에는 문학적 텍스트에 기초한 정밀한 무대 또한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햄릿아비>, <과부들>, <봄날>, <여행>, <그린벤치> 등의 대표작이 있으며, 해체된 일상의 낯섦과 강렬한 시적 충동이 공존하는 역동적인 세계를 구축해왔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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