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은 합리적 개인입니까? -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글 입력 2020.02.0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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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는 편이다. 평소 고집도 있으면서 남의 말에 잘 흔들리는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큰일이 닥쳤을 때나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는 내 원래 기질을 무시하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이 책,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를 읽은 이유는 이성적 인간에 대한 동경 정도였던 것 같다. 나도 사람들에 휘둘리지 않고 주관을 뚜렷하게 가진 채 똑부러지게 살고 싶다, 하는 소망에서 책을 펼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조금쯤 팔랑귀이고 조금쯤 아집이 있지만 MBTI 검사를 해보면 F보다 T 성향이 크게 나오니 감정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들린다. 마치 감정에 휘둘려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분노나 슬픔 같은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는 무례한 사람으로 묘사되기 일쑤다.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세상에는 완벽한 이성적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성적 인간’이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감정적이므로 ‘감정적 인간’을 완벽히 정의내리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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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우리를 지배한다



책에서 말하는 감정이란 단순한 희로애락이 아니다. 개인의 주관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본능과 느낌을 통틀어 감정이라고 지칭한다. 나의 생각, 나의 행동, 그리고 나의 무의식까지, 감정은 내 몸과 머리 곳곳에 스며들어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가 어떤 것을 옳다고 혹은 틀리다고, 좋다고 혹은 나쁘다고 여길 때 이를 결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감정이다. 실험 심리학의 창시자인 빌헬름 분트는 1890년에 이른바 감정의 우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정’이라는 개념 뒤에는 사소하고 순간적인 감정적 분출들이 숨겨져 있다. 인간은 이러한 순간적인 감정적 분출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따라 그러한 감정에 접근하거나 그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한다. 이는 어떤 것이 좋다 혹은 나쁘다고 느끼는 최후의 감정과 근본적으로 같다.

 


즉 감정은 내 행동과 판단의 기저를 이룬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게 싫어.’와 같은 판단에서 우리는 ‘이러이러한 이유’가 판단의 객관적 근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 그 이유를 선별하고 호오를 가리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객관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책을 읽는 내내 요즘 전 세계에 공포를 가져 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각났다. 마스크를 2만, 3만 개씩 사재기하는 사람부터 SNS에 환자 행세를 하는 영상을 업로드하는 사람까지, 전염병이 가져오는 폭풍은 병 그 자체보다 훨씬 거대하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도 잔기침 때문에 왠지 모를 불안에 휩싸여있기는 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내 잔기침의 원인은 평범한 감기, 혹은 요 며칠 쌀쌀해진 날씨와 건조한 기후 때문이겠지만 아쉽게도 판단의 주체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그 탓에 자연스럽게 불안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도 난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지




우리는 모든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집단적 망상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망상은 가짜 뉴스와 소셜 미디어의 시대, 정치적 포퓰리스트들이 세계적으로 승승장구하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매우 위험할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나는 감정적이지 않다’, ‘나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 등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공신력 있는 정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의 입맛에 맞는 정보라면 그 어떤 논문이나 연구 결과보다도 믿음직한 ‘사실’이 된다. 정보의 출처가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안타깝게도 최종 판단의 키를 쥐고 있는 건 머리가 아니라 감정이기에.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온갖 음모론들이 절대로 지구상에서 소멸하지 않는 이유 역시 이와 같다. 우리는 늘 명쾌하고도 독특한 이유를 원하고, 저절로, 혹은 우연히 발생했다는 결론은 믿지 않는다. 거짓을 조금 섞더라도 매력적인 인과관계 설명이 더 그럴듯하게 들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진심을 다해 그 거짓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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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음모론: 달 착륙 음모론



사회학자 로버트 스콧은 자신의 저서 <기적의 치료: 성인과 순례, 그리고 믿음의 치유력>에서 중세 유럽의 이러한 사상이 일종의 집단적 편집증으로 이어졌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곳곳에서 사람들은 신의 분노를 예감했고 어두운 숲속의 음험한 존재를 언급했으며, 이러한 불안한 감정들로 마음을 압박하는 것들을 이야기들 속에 담았다. 겁을 주는 내용들이 묘사되었음에도 이러한 공포 이야기들은 인간의 두려움을 줄여주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장 참지 못하는 것은 불확실함이나 양가감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해명을 원한다.



이 책 속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도 특히 ‘해명을 원한다’는 말이 내게 강하게 와 닿았다.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일에서도 우린 습관적으로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나의 감정이 받아들였을 때에만 인과관계를 믿는다. 감정이 ‘NO’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그 원인은 폐기된다.


책을 읽고 난 후, 앞으로 조금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평생 감정적인 사람으로 남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내 본능 어딘가, 아주 깊숙한 곳에 감정이 기저를 이루고 있기에.


물론 완벽하게 합리적인 개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불안과 부정적인 감정들, 혹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감정들이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살아야겠다. 객관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많은 판단들 역시 감정의 체를 한 번 거친 후에 살아남은 의견이라는 것, 주관을 배제한 판단은 있을 수 없다는 것. 더 나은 의사 결정을 위해서 염두 해야 할 사실들이다.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 합리적 개인이 되기 위한 16가지 통찰 -

 

 

지은이

세바스티안 헤르만

 

옮긴이 : 김현정


출판사 : 새로운현재


분야

인문/교양일반


규격

140*205(mm)


쪽 수 : 292쪽


발행일

2020년 1월 2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297-0578-5 (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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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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