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뉴필로소퍼 - 죽음에 관하여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의미
글 입력 2020.02.0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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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새롭게 얻는 하루는,

삶의 줄어드는 하루이기 때문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中



과연 우리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죽음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서는 것과 같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짧고 너무나도 덧없다. '만약 일주일 혹은 내일 당장 내가 죽게 된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을 뒤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 다시는 이전과 똑같이 경험해볼 수 없는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거리들로 점철되어 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생각할라치면 어느 순간 메스꺼워지고 어지러워진다.


이 세상에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몹시 두렵고, 또 나라는 존재가 없어져도 이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굴러간다는 사실이 나를 몹시도 슬프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자서 죽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이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죽음에 관해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내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싶었지만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한꺼번에 담긴 책은 쉽게 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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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뉴필로소퍼 9호에서는 죽음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면밀하게 사고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다루는 주제가 주제다 보니 컨텐츠 자체가 너무 무겁거나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적재적소에 삽입한 감각적인 일러스트레이션과 레이아웃이 마음에 들었다. 죽음이 전시되는 세상, 죽음은 편도 여행만 허락된다, 잘 죽는 법을 알려주는 것은 철학보다 상상력이다 등 다양한 인물들의 칼럼과 인터뷰가 실려있다. 물론 글뿐만 아니라 죽음과 관련한 정보를 아기자기하게 담아낸 인포그래픽, 죽음에 관한 철학가들의 생각들, 존재론적 만화 그리고 죽음을 다룬 책 소개 페이지까지 알찬 구성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것은 클라우스 보의 '삶과 죽음' 프로젝트와 법의인류학자 수 블랙의 '오늘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이다. 클라우스 보는 덴마크 출신 사진작가로 2010년부터 죽음에 대해 탐구하는 Dead and Alive Project를 시작했는데 그린란드, 아이티, 과테말라, 필리핀, 네팔, 인도, 가나, 마다가스카르, 덴마크 등에서 죽음에 대한 현지인들의 인식과 죽음에 관한 의식 등을 앵글에 담았다고 한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그러다 모스크에서 진행된 장례식을 통해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연인이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죽음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거나 무시하고 외면하는 태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이번 호에서 실린 인터뷰에서 그의 프로젝트 목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이는 뉴필로소퍼 9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필로소퍼에 실린 그의 대담하고도 의미 있는 삶과 죽음 프로젝트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특히 인도네시아 타나토라자 지역의 희귀한 장례 풍습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유족들은 세상을 떠난 망자의 시신을 장례식이 진행되는 내내 의자에 앉혀 놓는 디파타동곤 이라는 의식을 치르는데, 아무래도 일반적인 장례 풍습과는 확연히 달라 조금 놀라웠다. 이외에도 필리핀 루부아간 지역의 장례 의식, 인도 바라나시 지역의 장례식, 그린란드 우페르나비크 지역의 특이한 묘지터 등 클라우스 보의 Dead and Alive Project 작품들을 몇 점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법의인류학자인 수 블랙은 법의인류학법과 해부학의 권위자로서 영국 랭커스터 대학교 대외교류 부총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 유년기 시절의 경험을 거쳐 1999년 코소보 전쟁범죄를 조사하는 영국의 법의학팀을 이끌었던 점이나 시에라리온, 그레나다, 이라크 등에서도 활동하는 등 죽음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최전방에서 경험한 블랙의 말이 내게 인상 깊게 다가왔다.


"우리는 일상에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기회만 있으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주 편하게 자신의 죽음관과 자신이 바라는 죽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을 이야기한다. 대화할 준비는 되어 있으니, 기회만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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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중에서 죽음에 대해 좀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의견에 한없이 동의하는 바이다. 이 대목을 읽으니 편지로 서신을 주고받던 친구와 함께 서로의 이상적인 죽음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친구는 종종 그의 집 창가에서 얼어죽은 비둘기의 사진을 내게 보내왔다. 또 다른 친구와는 이메일로 죽음에 관해 몇 가지 질문들을 주고 받으며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때에는 앞서 언급했던 이유 모를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이 찾아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타인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라치면 오히려 신이 나기까지 했다. 그러니 우리도 블랙이 주장한 대로, 죽음에 대해 '언금(=언급 금지)'할 것이 아니라 자주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삶의 유한성을 깨닫는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인생 끝에 죽음이 있기에 우리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과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뉴필로소퍼를 읽으며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우리에게는 두 번의 삶이 존재한다.

두 번째 삶은 우리에게 단 한 번의 삶만이
주어졌음을 깨닫는 순간 시작된다."


/88페이지


 




뉴필로소퍼 Vol.9

- 일상을 철학하다 -



엮음 : 뉴필로소퍼 편집부


출간 : 바다출판사


분야

인문/철학

문예지


규격

180*245mm


쪽 수 : 156쪽


발행일

2020년 01월 05일


정가 : 15,000원


ISBN

977-2586-476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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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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