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리, 뉴욕, 런던 말고 서울 [영화]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와 <밤을 걷다>로 보는 서울
글 입력 2020.02.0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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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냉정과 열정 사이>, <어바웃 타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일명 ‘여행 떠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을 보다 보면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피렌체, 영국 런던, 미국 뉴욕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각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은데, 왜 유독 이 영화들을 보면 그곳으로 가고 싶어지는 걸까?

 

그 이유의 키워드는 ‘지금, 여기’이다. 과거를 다룬 시대극이나 미래의 도시가 아닌, 내가 비행기를 타고 가면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 ‘지금’이어야 한다. 즉 동시대의 모습과 가까울 수록 좋다.

 

그리고 ‘여기’는 각 도시의 거리이다. 여행의 과정에는 각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 구체적으로 말하면 도시의 길을 걷고 구경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래서 ‘여행 떠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의 비밀은 바로 현대 도시들의 거리이다. 지금 비행기를 타고 떠나면 직접 보고 걸을 수 있는 현실성,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낭만의 적절한 조합은 우리의 여행 욕구를 자극한다.

 

그렇게 파리는 <미드나잇 인 파리>, 피렌체는 <냉정과 열정 사이>, 런던은 <어바웃 타임>, 뉴욕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대표적인 영화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서울을 걷고 싶게 만드는 영화로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생각난 것은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와 <밤을 걷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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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최악의 하루> 스틸컷

 

 

 

지금 서울은


 

한국 영화에서 동시대 한국의 거리를 담은 영화는 많지 않다. 시대극을 제외해야 할뿐더러, 대부분 특정한 실내 장소에서 서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도 많은 부분이 거리가 아닌 정해진 실내에서 이루어지듯이 말이다. 거리를 복도의 확장된 형태로 생각할 때, 복도가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생각할 때, 거리는 그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때도 있는데, 바로 ‘산책’이다.

 

산책은 거리를 돌아다니는 행동 자체가 목적으로, ‘어디를 몇 시까지 가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내려두는 일이다, 나아가 지름길만을 추구했던(또는 그래야만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가장 빠른 길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가본 길이 아니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이 산책이다. 그래서 단어가 주는 편안한 느낌, 자유로이 유영하는 느낌이 있다. <최악의 하루>와 <밤을 걷다>는 이러한 산책 같은 영화이자, 산책하는 영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영화 <페르소나> 중 <밤을 걷다>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밤 산책을 하는 등장인물 둘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오래된 가게들을 오른편에, 담쟁이 덩굴이 감긴 돌담길을 왼편에 둔 종로의 길. ‘샷다’가 내려진 철물점과 낡은 디자인의 간판은 너무나 눈에 익다.

 

<최악의 하루> 역시 익숙한 여름날 골목의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산책로에서 조깅하는 사람들, 집과 집 사이의 골목, 햇빛을 받는 붉은 벽돌담. 이는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대한 암시라든지, 영화 안에서 중요한 공간을 미리 보여주는 등의 목적이 아니다. 그저 거닐어 다니는 산책처럼, 카메라는 서촌과 남산의 길들을 보여주며 그 사이로 등장인물이 걸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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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밤을 걷다> 스틸컷

 

 

 

여행자의 시선으로


 

한국 관람객에게 이국적이거나 새롭지 않은 서울의 길은 카메라에 담기고, 영화가 된다. 무더운 여름날의 뜨거움과 습기, 풀벌레 소리, 그냥 지나쳤던 골목에 여행자의 시선이 깃든다. <밤을 걷다>와 <최악의 하루>에 담긴 이 시선을 따라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기에 놓치고 있었던 분위기를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름날 종로구를 산책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꼭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아도 가능한 가장 간편한 여행을 시도해보자.

 

 

[안루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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