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아지가 발코니에서 떨어졌다 [문화 전반]

연쇄파동, 나비효과, 내가 붙잡아야하는 것에 대한 이유
글 입력 2020.02.03 06:50
댓글 2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운전은 위험하다. 부자들이 차를 한 대만 보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사람의 수에 가까워지고 있는 그것의 수일 것이다. 익숙해서 잊고 있겠지만 운전은 여전히 위험하다. 버스를 14년동안 몰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오늘 내가 운전하는 버스는 저 여자가 자살하는 도구가 되었다.


버스는 물체다. 기사는 버스의 부속품이고, 그 여자는 ‘나’에게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버스’에 죽었다. 내가 버스보다 더 컸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렇다면, 내가 버스를 움직이게 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버스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 여자는 감히 이 버스에 치여 죽을 생각을 했을까? 그렇다면 움직이지 않는 버스를 개발한 멍청이는 누구일까? 버스 아닌 이동수단을 개발했을 테니, 그 여자는 그것을 선택했을까?

마지막 순간, 그녀의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무엇을…
“보고 있었습니까, 선생님?”
“선생님?”
참 시끄럽다.
“선생님?”
“아, 건너편의 아파트.”
“그렇군요, 눈에 띌 만한 것이 있었나요?”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몰랐다. 운전에 전방주시를 당신들이 단속하지 않나? 지긋지긋하다. 창문 앞에 아직까지도 떨어지고 있는 햇빛 속에는, 음료수의 단내에 꼬여드는 눈이 큰 파리 한마리가 들어있다. 버스의 부속품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연락드리면 협조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아까 받아들었던 남형사의 명함으로 송곳니와 어금니 사이에 끼인 미역줄기를 걷어냈다.
“누나! 조사받고 왔다며?”
“어”
“이런 일 또 오랜만이네. 괜찮아?”
“밥은 잘 넘어가. 나 간다.”
사람들이 우리를 버스, 그 자체로 취급하듯, 나도 사람들을 ‘세상’의 부속품으로 볼 뿐이다. 이런 날은 유난히 내가 사람이 되는 날이다. 나에게 답을 요구하는 날이다.

발목까지 스치는 웃옷의 깃을 턱 아래까지 단단히 채워 가슴의 산을 덮는다. 회색과 갈색 사이의 어중간한 잿빛 머플러를 그 위에 칭칭 동여맨 위로 조금 크기가 다른 두개의 콧구멍이 자리한다.
 



이런 기사를 보았다. “13층에서 떨어진 개가 초래한 세 명의 죽음”

추락하는 개에 맞아서 죽은 할머니, 할머니를 보다가 버스에 치어 죽은 에디 솔라, 그 연쇄적인 장면을 보고 심장마비로 죽은 신원 미상의 남자, 그리고 결국 죽은 그 개까지. 네 개의 목숨에 파동이 일어난다.

나비효과, 그래, 나비효과라고 한다.

 

The Canberra Tims (1988 10 24 Mon).jpg



“왜, 죽으면 안되는거야?”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물었다. 죽음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그건 나쁜 생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마땅히 해 줄 수 없는 얘기도 없다.

예측. 그것 만이 두려움을 발한다. 인류의 진보한 과학은 화성과 달과 태양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사후세계를 관찰한 자들은 증거를 내놓지 않는다. 믿기도, 믿지 않기도 힘들다. 여전히 예측할 수 없다.

가끔 귀가 먹먹해진다. 천문학자가 자살을 많이 했다고 한다. 5cm의 폭도 안되는 실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본 것에서 의미를 찾는 행위가 흐릿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가끔 눈 앞이 흐려진다. 초점을 자유로히 놓았기 때문이다. 눈을 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눈으로라도 볼 것이다. 가끔은 정확한 사물을 보기를 포기하면서 그럴 것이다.
 
이렇다. 나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던, 저 어느 동네의 개도, 신원미상의 남자도, 누가 시발점이 되어 동시에 죽음으로 갔다. 서로 알고 지내던 이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30년 뒤의 나도 짤막하나마 단편을 썼다.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어주겠다 마음먹고 하는 행동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영감에 해당한다. 나비들이 날개짓 친다.

전경을 본다. 배경을 본다. 에디 솔라는 버스에 목숨을 잃었다. 짧은 기사를 봤음에도 내 머릿속은 그 장면을 그림칠하고 있다. 질겁한 버스기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전경으로 들어왔다. 신문기사보다 버스기사를 전경에 둔 사람들에게는 기사는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다.

나는 누군가의 전경이며, 전경과 배경은 연이어서 교차된다. 찰나의 순간, 어떤 시야에서 전경이 되는 순간, 버스기사의 날개가 의미를 가진다. 그것이 내가 버스기사의 심경을 헤아릴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나에게 불어온 이 날갯바람의 냄새는 버스기사의 삶으로 조직된 실에 몇미터 가량의 실타래를 곁에 놓아주게 된다. 또다시, 나비효과라고 부른다.

죽음을 거부하는 이유는, 지극히 이기적이다. 내 몸을 나선모양으로 머리카락 한올에서부터 발뒤꿈치까지 옭아 맬 나비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날개짓이 어느 방향으로, 어느 강도로, 칠 것인지에 대하여, 나는 알 수 없다. 마치 발코니에서 떨어진 강아지와 같다. 영혜에게 보여질, 다른 날개무리를 기다려 보기를, 내 옆에 조금 더 머물기를, 소원한다.

 
Dreamcatcher (Dreamcatcher reality) The Butterfly Effect and the Environment How Tiny Actions Can Save the World 2018 05 24.jpg
The Butterfly Effect and the Environment How Tiny Actions Can Save the World (2018. 05. 24) 
Dreamcatcher (Dreamcatcher reality)

 

 




cover ⓒEyeEm @feelmstock

news ⓒThe Canverra Times Dog's 13-story fall results in 3 deaths (1988. 10. 24. Mon)

 

 

[박나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2
  •  
    • 글 잘 읽었어요, 더 좋은 글 기다릴게요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OUN오운
    • 2020.07.31 03:53:35
    • |
    • 신고
    • 감사합니다. 윤님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