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TV/드라마]

글 입력 2020.02.0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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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이란 바둑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바둑을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자칫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 단어는 드라마 <미생>이 방영된 이후 그리 특별하지 않은 단어가 됐다.

 

윤태호 작가의 작품, 웹툰 <미생>에서 시작한 이 드라마는 현실감 있는 스토리와 사실적인 연출로 시청자들에게 호평과 사랑을 받았다. 특히 직장생활이라는 소재를 통해 상사와의 관계, 업무 환경 등 직장 내의 현실을 생동감 있게 보여줘 한국드라마에 신선함을 안겨줬다.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취재만 3년이 걸렸다는 웹툰 <미생>은 직장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직장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실제로 웹툰 <미생>은 누적 조회수가 10억 건을 넘어설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 <미생>은 이러한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탄탄한 스토리를 가지고 출발했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는 이미 쌓아둔 인지도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드라마와 웹툰은 엄연히 다른 플랫폼이기 때문에 원작을 각 플랫폼에 맞게 각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는 많지만, <미생>만큼 웹툰과 드라마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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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은 바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장그래'가 프로 입단에 실패한 후, 지인의 도움으로 대기업 인턴이 돼, 사회생활을 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기존의 한국드라마는 주인공이 시련을 이겨낸 후 성공한다는 신데렐라 스토리 또는 남녀 간의 연애 스토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미생>은 이러한 드라마와 달리 비정규직의 현실, 한국 사회 내 여성의 역할, 직장에서의 업무 활동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드라마의 주된 스토리를 끌고 가는 네 명의 신입사원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 청년층이 가진 고민과 이들이 직면한 사회 문제를 보여준다. 드라마의 주 시청자층인 2~30대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실존하는 회사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게 꾸민 세트, 무역회사라는 설정에 충실한 대사까지, 디테일한 연출도 드라마 <미생>의 묘미 중 하나다. 또한 <미생>은 직장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동료애와 사내 정치에 대한 문제를 생생하게 다룬다. 사내 정치, 상사와의 관계 등 시청자에게는 다소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 상황도 바둑이라는 특정 소재를 통해 거부감 없이 풀어낸 점도 눈에 띈다.
 
드라마 <미생>은 현실을 반영한 스토리와 함께 주변에 있을 법한 현실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기존 드라마에서 찾기 쉽지 않았던 매력을 보여준다. 평범함을 자체만의 매력으로 포장해 특별함으로 만든 좋은 사례다.

 
 
우리의 삶은 때론 드라마와 같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프로 바둑기사를 꿈꿨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프로 입단에 실패한다. 평생을 바둑만 했기 때문에 아무 스펙도 없는,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청년이 되어 사회에 던져진다.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고 요령도 없기 때문에 팀원에게 눈치 받기 일쑤다.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장그래는 상사인 오 과장에게 이런 말을 한다. "모르니까 가르쳐주실 수 있잖아요." 장그래의 한마디는 사회초년생들이 회사에 입사하며 겪는 어려움을 대변하며 청년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청년이 장그래 캐릭터에 이입했다.
 
하지만 장그래는 가장 판타지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쉽게 말해 '주인공 버프', 주인공이기 때문에 갖는 혜택이 있다. 그는 검정고시 출신에 스펙이 전혀 없는 청년이지만 낙하산으로 대기업 인턴 기회를 거머쥔다. 회사의 크고 작은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하기도 한다. 악조건에서의 경쟁 PT는 그의 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사장님이 등장하며 운 좋게 해결되고, 그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큰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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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나 장그래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다. 자본주의 체제 속 이익만을 추구하는 회사 앞에서 작아지는 개인의 무력감을 솔직하게 보여준 결말이다. 장그래가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판타지에서 현실로 돌아오고, 실패와 성공이 반복되는 자신의 삶을 보게 된다. <미생>이 '그래봤자 드라마'로 전락하지 않은 이유다.
 
이외에도 오 과장, 선 차장 등의 캐릭터를 통해 아버지, 워킹맘 등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정도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이처럼 <미생>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주변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며 '미생'인 우리를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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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드라마를 꺼내온 이유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가장 많이 떠오른 드라마가 <미생>이었기 때문이다. 실수투성이에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미생인 내 모습이 작아 보일 때가 많다. 완생이 되기 위해 달리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미생>에서는 완생의 삶을 사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생이기에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성장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어쩌면 완생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일지도 모른다. 미생이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완전하지 않은 미생의 당신을 응원한다.
 

[조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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