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희망과 욕망과 절망 사이에서, 목소리를 드릴게요 [도서]

글 입력 2020.01.2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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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SF 소설은 나에게 친근한 장르가 아니다. 장르 소설이라도 스릴러나 범죄 혹은 추리물을 더 좋아하는 편인 나는, 솔직히 말해 science fiction에는 별다른 애정이나 취향이 없는 편이다. 너무나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 경외감을 느끼고, 인류나 지구가 멸망한다는 비극적인 내용을 다룬 작품을 볼 때면 물 먹은 솜처럼 마음이 먹먹하고 답답해지기 때문이다. 이 장르에 대한 편협한 오해일 수 있겠지만, 아무리 허구라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비극만 받아들이겠다는 일종의 이기심에서 비롯한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가끔씩은 SF 작품을 찾아본다.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인터스텔라’나, 최근에 봤던 ‘애드 아스트라’, 그리고 더 오래 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콘택트’가 지금 머릿속을 스친다. 아주 멀리 있는 우주를 여행하는 주인공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과 믿음이라고 말하는, 메시지만 놓고 본다면 조금은 뻔한 영화일 수 있겠지만 결국은 사람의 주요한 감정을 건드리는 작품이어서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책 소개


 

날카로운 비판조차 결 곱게 다듬은,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이들을 위한 놀이터.

정세랑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세랑은 이제 한국 소설계의 주축으로 성장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특히 작가와 동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독자층에서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죠.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이곳,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특히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잘 그려내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이런 특징을 지닌 작가들은 꽤 많습니다. 커다란 흐름을 형성할 정도로 많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면 일련의 흐름을 탄 ‘원 히트 원더’로 남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정세랑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견했고, 갈고 닦았고, 각인시켰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포맷 자체가 기발한 연작 단편집도 있었고, 현실에 독특한 상상력을 ‘외삽’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죠. 그리고 그 결과물은 꾸준한 반응을 얻었고요.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기란 꾸준히 쓰기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 단편집의 첫 번째 작품이자 가장 짧은 단편인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은 그 스타일을 소개하는 전주곡으로 딱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세계가 어딘가 잘못됐고, 그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주인공이 거기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온갖 고생을 하지만, 그건 그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주인공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죠. 내가 사랑하지 않는 세계는 나의 세계가 아닌 것입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받아들이고 싶은 세계와 그럴 수 없는 혹은 그러고 싶지 않은 ‘외부’ 사이의 간격은 이 단편집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됩니다(한데 모아서 보면 이런 특징을 읽을 수가 있어서 좋습니다. 단편집의 매력이죠).


특히 여성성과 자연은 ‘이쪽’을 대표하는 키워드입니다. 각 단편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성별이 제시되지 않았거나 여성인데, 성별이 제시되지 않은 주인공의 경우에도 다른 단편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과 서술 스타일이 거의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다들 여자인가? 하지만 그건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실제 성별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관건은 그 인물들이 모두 ‘정세랑 패스’를 통과한 인물들이라는 점입니다. 확장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수렴하려는 사람, 대의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이기려는 열망 대신에 패배하지 않기 위해 승부에 임하는 사람, 공격수보다는 수비수에 가까운 사람들이죠. 에코페미니즘이 내건 기치에 가깝습니다.

 

***

 

정세랑 작가는 책 소개에서와 같이 정세랑은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모습을 잘 그려낸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이에 더해, 본인만이 지닌 독특한 상상력과 편하게 읽히는 텍스트로 기발함과 짙은 공감대를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가에 대해 별다른 정보 없이 선택한 책이었는데, 어쩐지 너무나 공감이 가고 쉽게 빠져들었던 것은 역시나 그가 지닌 매력 때문이었던 것이다.

 

첫째로, 소설 속 세계관과 등장인물들은 견고하게 잘 연결되어 있다. 뛰어난 작품 어디에서나 성립되어야 할 조건이겠으나, 탄탄하게 직조된 세계관에서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교감한다는 점이 새로웠다. 물론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고, 비상식적인 현상들이 일상적으로 나타나지만 이 세계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작가는 독자를 편안하게 납득시킨다. 작품을 읽을수록 수록된 소설들 모두,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색다른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이는 작가가 감정선을 따라 행동하는 인물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평론가에 말에 매우 동의한다. SF소설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순수 문학이라고 생각할 만큼 부드럽게 흘러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읽는 것이 좋았다. 나름대로 인물을 이해하며 작가가 써놓은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판타지 같은 세계가 금방 익숙해져 있고, 이야기의 아쉬운 끝에 와있었다.


인물들이 평면적이지 않고 독자가 화자의 성별을 구분할 수 없게 쓰여진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작품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인물의 성별을 궁금해 했지만 사실 성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하며 읽기를 계속했다. ‘여성이라면, 남성이라면’의 가정에서 아예 떠나있으니 감상하기에는 더 수월한 면이 있었으며 상상하기에 따라 다른 장면이 연출되는 것도 그것대로 흥미롭고 새로웠다.


하지만 이런 특징들을 모두 차치하고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는 ‘희망과 욕망, 그리고 절망 사이의 사람들’ 이라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려보았다. 이 책이 단편집이다 보니, 작가의 문체와 이야기의 스타일을 한눈에 망라하기에 좋았는데 결국 이 세 가지가 주요한 감정이자 메시지이자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희망을 두고 자신과 주변인들이 살아남길 욕망하며 절망을 겪는 일련의 과정. 인간이 오래도록 번영하길 거듭해왔던 문명은 작품 속에서 사라지거나 닿을 수 없는 저쪽 세계가 되어, 이미 오염된 과거의 것으로 치환된다.

 

파괴의 모습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이지 않으며, 인물들에게서도 수비적인 성향이 보인다는 데서 작품의 메시지가 에코페미니즘과 가까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필자가 아직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이 해석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여하튼, 작가는 현재 문명의 붕괴로 환경과 종 차별, 지속가능함에 대해서까지 주제를 뻗어나가며 중요했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주목받게 된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하길 망설이지 않았다. 잔잔한 듯 했지만 정확히 문제점을 짚으며 독자들이 현재 사회의 문제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현상에 귀 기울이도록 판타지로써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 봐 두렵다. 지금의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미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경멸하지 않아도 될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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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정세랑

 

펴낸곳
아작

 

면수
272쪽

 

정가
14,800원

 

발행일
2020년 1월 6일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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