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매 순간이 영감이라는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 디자인 매거진 CA [도서]

<디자인 매거진 CA>를 읽고
글 입력 2020.01.2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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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개성이 녹여져 있는 인기를 구가하지 않는 비주류의 성격을 띠는 독립출판물을 좋아한다. 내가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경위도 “싱클레어”라는 독립잡지에 기고하던 글 덕택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독립출판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장가치가 다분하다.

 

산뜻한 그린컬러와 블랙컬러의 철자로 디자인된 겉표지가 눈에 띈다. 디자인 매거진 CA 잡지는 현존하는 디자이너들의 그간 행보를 이야기하고, 디자인을 이야기한다. 학생의 신분이었을 때와 졸업생의 신분, 사회인, 즉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과정과 디자이너가 된 이후의 다양한 이야기를 마치 진짜 나의 학교선배처럼 들려준다.

 

예전 어떤 모임에서 옆 테이블에 계시던 어르신들의 대화를 엿듣고 많이 놀랐던 적이 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커피를 드시며, <핀터레스트>라는 검색사이트를 이야기하고 계셨다. 그 사이트에는 없는 게 없다는 말씀을 하시며 할머니들이 수를 놓는 프랑스 자수도안이 예쁜 게 많다던 그 말씀은 모임에 있던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핀터레스트>는 디자이너들에게 없어선 안 될 중요한 디자인사이트이고, 사실 일반인들은 잘 모를 거라 생각했었다. 더군다나 어르신들이 <핀터레스트>를 논하고 계실 줄이야. 그만큼 지금은 젊은 층, 노년층 할 것 없이 디자인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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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학교의 수업에선 절대 배울 수 없는 실전의 이야기들을 선배들이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그리고 내 후배에게 얘기하듯,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다양한 자세를 충고한다. 내가 이 잡지에서 ‘텀블벅’을 창시한 분을 만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타이틀도 멋지다. ‘시민 디자이너’ 소원영.

 

이제야 뜨기 시작하고 사업에 관심 많은 젊은 창업가들의 좋은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는 ‘텀블벅’이 이미 2011년, 9년 전에 나왔었다니. 세월이 빠른 것인지, 그런 분야에 무지했던 것인지, 소원영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읽으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에 기초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협업’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전제와 결과가 있다. 디자이너에게 있어 기록한다는 것은 세밀화된 분야를 떠나서 정말 중요한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메모해 놓은 것 중에서 후에 아이디어가 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열쇠가 되는 과정을 그동안 나는 꽤 여러 번 목격했고, 나 또한 경험했기에 너무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또한, 하나의 분야에서 시작된 디자인일 지라도 결국엔 다양한 분야로 퍼져 나갈 수 있고, 각각의 작업에 맞는 시너지를 내는 동료를 만났을 때 그 결과가 주는 힘은 더 대단하다는 것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이제는 디자인에 구분이 없는 것 같다. 신발 디자인을 했던 디자이너가 의류를 디자인할 수 있고, 패키지를 디자인했던 디자이너가 웹디자인을 도맡아 성공적으로 디자인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가방디자이너가 문구 잡화 제품을 디자인하는 경우도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런던의 야르자 자매를 이야기하자면, 그녀들 또한 자신들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를 배우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일을 하기 위해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는 것은 해외의 디자이너나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전공한 디자인을 살려 출판물 디자인과 패키지디자인을 하며, 오래된 잡지의 리브랜딩을 성공적으로 작업한다.

 

그녀들의 디자인은 잘 맞는 사람이 함께하는 편안한 분위기의 스튜디오에서 시작된다. 클라이언트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과 생각의 공유라는 것에서 방향을 잘 잡고 과거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디자인을 하고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디자이너에 있어 게으름과 식어버린 열정은 역시 어쩔 수 없이 도태되는 내리막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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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직업 이외에 나 또한, 무언가를 제작하여 만들어서 판매해 보고 싶은 적이 있었다. 해외여행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로 다이어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소량으로 제작하는 공장을 알아보았고, 작업은 그래도 내가 잘 활용할 줄 아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로 어느 정도 디자인은 해 놓았었다. 그런데 다이어리 하나를 만들어 판매사이트에 올리는 것까지가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문구사이트를 보다 보면 무지 다이어리에 겉표지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판매되는 제품이 많았었기에 조금 간단하게 생각하고 도전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렵고, 무엇보다도 소량은 단가가 너무 비쌌다. 아무리 간단해 보이더라도 판매하기까지는 정말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 경험이었는데, 성경을 모티브로 한 공책을 만들어 판매한 양선희 디자이너의 이야기는 나의 저 끝 언저리에 있는 도전정신을 다시 한 번 건드리고 있다.

 

바보 같은 생각을 자주 하다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에 대한 해답을 얻기도 한다는 그의 대답이 나에게 바보처럼 밀어붙이라며 자꾸만 도전정신을 부추긴다. 자신들이 좋아서 시작한 프로젝트 덕분에 오히려 업무를 끌어오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걸 보며 역시 즐기면서 하는 사람을 못따라간다는 얘기를 떠올리게 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이제는 MD와도 겸업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에 나와 있는 대다수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와 직접 상담을 하고 그들이 확실히 정하지 못하는 디자인과 그 기능적인 면의 경계를 디자이너들이 잡아내어 포커스를 맞추고 제작에 들어간다.

 

사실, 디자이너와 MD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디자이너가 너무 디자인 쪽에 치우칠 때, 단가라던가 디자인 외의 부수적인 부분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것이 MD의 주된 업무인데, 이제는 이 두 가지의 업무도 디자이너가 도맡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음을 설명한다. 물론 앞으로는 이 두 가지를 똑 부러지게 하는 디자이너들이 더 주목받을 것임이 분명할 것이다.

 


“훌륭한 아이디어는 알아서 팔립니다. 저는 한 번도 아이디어를 ‘판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접근법이 왜 옳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하면 되는 거죠. 클라이언트에게 아이디어를 찾은 과정과 배경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입니다.”


- P.43

 

 

나는 이 대화에서 더는 디자이너와 MD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나를 업그레이드 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MD의 자질을 갖추려 노력해야 갰다는 결론을 내렸다.

  

 

헛소리를 없애는 방법 - 해답은 매우 간단하다. "가식적인 업무용 언어가 아닌 일상 언어로 말하고, 대단한 아이디어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앞으로 해야 할 일과 사람에 대해서 말하기.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말하기"


- 맷 벡스터

 

 

디자인에 있어 언제나 중요한 사실은 전제와 결론은 늘 심플하다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게으름을 멀리해야 하고, 열정을 식히지 않을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나 클라이언트에게나 프로젝트에 임할 때에도 늘 솔직해야 한다는 것. 내가 별로인 건 남이 보았을 때도 별로일 확률이 높다는 것. 내가 작업해 놓고 '이만하면 됐어.' 라는 5,60%의 자기만족은 부디 저 멀리 발로 뻥 차버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결론들을 디자인을 관둘 때까지 두고두고 기억할 것. 기억하지 않아도 이미 나도 알고 있다는 것. 디자이너는 스스로 자기만족을 하게 됐을 때, 이미 디자이너로서 도태되기 시작한다는 것. 잊지말자. 선배들의 뼈를 깎는 고통의 생생한 경험담이다.

 

P.92-93의 취준생 디자이너를 위한 권수진 디자이너의 주옥같은 팁들도 절대 놓치지 말고 복사해서 지갑에 넣어 다니자. 아니면 사진을 찍어서라도 예비디자이너들은 소장하고 다녀야 한다. 기회는 언제 어느 순간에 스리슬쩍 내게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우리의 수많은 예비디자이너가 센스있는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디자인 매거진 CA #248

- 2020년 1~2월호 -


발행 : CABOOKS

분야
미술/디자인
그래픽

규격
220 * 300mm
무선제본

쪽 수 : 160쪽

발행일
2019년 12월 26일

정가 : 16,000원

ISBN
977-23-8418-200-9

 

 


 

 

CA

 
세계의 디자인을 보는 창, 디자인 매거진 CA의 관심사는 '한 사람의 훌륭한 디자이너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것을 돕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탄생하는 놀라운 작품과 디자이너의 생각, 그리고 창의적인 통찰력을 담아냅니다. 여유와 깊이를! 연 6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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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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