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으며 생각한 ‘매일 하는 행위’에 대해 [사람]

글 입력 2020.01.2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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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노동자 이슬아의 <일간 이슬아 수필집>


 

요즘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있다. 이 책을 펼치기 전 그녀에 대해 지금껏 아는 바가 많이는 없었다. 그녀는 20대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글을 좋아하고, 그저 나의 천여 명이 넘는 인스타 팔로잉 목록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다 점점 많은 이들을 만나고 있는 그녀의 행보가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내가 함께 팔로잉 하는 많은 독립 책방에서, 카페에서 그녀의 강연이 줄을 이었다. 소위 북스타그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녀의 책을 읽는다. 사람들이 왜 그녀를 그토록 원하는지, 단지 그 사실이 궁금해서 책을 한 권을 읽어보자 생각했다.

 

태초의 호기심은 20대에 ‘연재 노동자’로 먹고 살고 있다는 그녀의 삶이 궁금해서였다. 나에게 글로 먹고 살기란 신문사의 기자나 잡지사의 에디터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당당히 글로 삶을 꾸리며, 자신의 출판사를 가지게 된 그녀는 어떤 삶의 궤적을 만들어 온 것인가? 가장 먼저 그 기원으로 닿기 위해 헤엄 출판사의 첫 책이자 ‘일간 이슬아’ 연재 글이 모여 있는 책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펼쳤다. 그녀의 책을 읽으니 그간 내가 스쳐보았던 행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궁금했던 글로 먹고사는 삶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고작 3살이 어린 내가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책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이슬아’스럽고 감칠맛이 나는 글이었다. 그녀는 한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이 하루에 보내는 글의 '포만감'이 적당하지 않았을까 예상했다. 그 말이 맞았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으며 이야기는 가득 채워져 만족스러웠다. 나는 여태껏 글을 읽으며 한글이 이렇게 다채롭고 맛깔나는 언어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표현력이 정말 좋았다. 호피 무늬 하나도 초라하며 야성적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언어 선택에 줄곧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내며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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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슬아 작가 인스타그램



2018년에 펴낸 책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아무도 청탁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구독자를 모집해 글을 직접 메일로 발송하며 시작된 ‘일간 이슬아’ 연재의 모음집이었다. 그녀는 판을 스스로 짰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매월 1만 원의 구독료를 지불하면 평일 내 글을 보내준다는 그 발상이 참으로 신선했다. 매주 꽃을 구독하고, 매달 속옷마저 구독할 수 있게 된 최근 소비 형태를 보면 ‘그럴 수 있네’라고 생각이 들지만 직접 구독자를 모집하여 가격을 책정하고, 메일로 발송하여 연재를 하는 것은 사실 그간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을 이기고 당당하게 구독료를 지불할만한 글을 써내는, 작가의 자신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너무나도 능동적이고 솔직한 연재라고 생각했다. 재치마저 있었다. 글로 먹고 살기란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영하'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야 가능하단 생각을 했던 내가 같은 20대의 연재 노동자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글을 읽기 위해 나는 그간 어떤한 노력을 했던가? 나의 글을 읽히게 하기 위해 어떤 판을 짜보았던가? 인스타그램 헤비 유저라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그녀는, 이 시대를 잘 이용한 창의적인 인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매일 하기 (do)


 

그녀는 23살의 나이에 '한겨례 21 손바닥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몇 년간 곳곳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사로 살아왔다. 여러 신문사와 잡지에 기고를 하고 있으며 현재는 출판사의 대표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글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시선과 세상이 느껴졌다. 복희와 웅이라고 일컫는 부모와의 세상, 애인과 함께하는 세상,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세상은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참으로 풍부했다. 만약 내가 그녀로 태어났다면 이토록 깊고 다채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읽고, 또 써왔을까 가늠할 수 없다. 젊은 나이에 작가로서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게 된 그녀는 그간 써온 글 자체에서 젊음의 기운이 가득 느껴졌다. 20대가 할 수 있는 고민을 내가 지금껏 써오지 못했던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굉장히 솔직했다. 자신에 대해서도, 부모에 대해서도, 애인에 대해서도,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서도 말이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이 나의 글을 매일 구독한다면 나는 이토록 솔직할 수 있었을까? 중심이 굳세고 심지가 튼튼한 사람이 아닐까, 스스로를 울보라고 표현하는 그녀지만 그마저도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요즘 하고 있는 ‘독서 프로젝트’를 하면서다. 책을 매일 읽고 있기 때문에 책을 고르며 그녀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독서 프로젝트’란 매일 한 쪽이라도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나만의 소소한 프로젝트다. 그저 지속하는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책을 가까이 두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다. 아직 매일 하는 것을 꽤 두려워한다.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20대 후반에도 지속력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기 싫어 새해의 시작과 함께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1월은 새로 시작하기 좋은 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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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의 세 번째 책으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선택하게 되었고, 책을 읽으며 이슬아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먼저 꾸준함으로 비범함을 만든 사람이다. 그녀는 매일 연재를 하며 두렵다고도 말한다. 감사하다고도 말한다. 또한 매일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어딘가 청탁을 받지 않고 스스로 판을 짜며 매일 글을 쓰기 위해, 다음 날이 오기 전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방 안에 홀로 앉아 모니터를 마주했을까.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이 가능하다. 출근을 하지 않지만 출근에 맞먹는 압박과 부담이 따라올 것이다.

 

그녀가 말하길 메일을 통해서 많은 비난과 다정과 제안이 도착한다고 한다. 자신이 잘하고 싶은 일에 대해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감이 동반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피드백이 이렇게 직격타로 돌아온다면 나는 아직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글을 자신의 직업으로 만들기 위해 당당히 맞서고 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사이에는 한 달의 연재를 마치며 독자들에게 자그마한 편지가 들어있다. 연재 프로젝트 ‘일간 이슬아’의 한 달 분량을 마치며 보낸 글일 것이다. 한 달 동안 감사했다며, 앞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할 것이라며 또한 어떠한 일은 죄송했다며 말한다.

 

나는 그녀의 시행착오에 더욱 눈과 마음에 머무른다. 그녀의 풍부한 세계와 언어도, 그녀만이 보여주는 개성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녀를 정말로 좋아하게 된 것은 스스로 구독료를 받고 연재를 하면서 겪어낼 부담감과 압박감과, 실수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글에 옮기는 모습이 참 굳건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수가 생기기 전에 거듭 확인하고, 독자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맞겠지만 그녀에게는 어떠한 변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죄송과 감사에는 진실성이 가득 느껴졌다.

 


‘일간 이슬아’는 평일에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서 구독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는 프로젝트다. 한 달에 20편을 보내고 월 구독료 만 원을 받으니까 글 한 편에 500원인 셈이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어묵 한 꼬치보다 저렴한 가격이지만 내 글이 어묵만큼의 기쁨인지 잘 모르겠다. 어묵보다 감동적인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이 달의 구독자를 모집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올리고 구글 설문지를 통해 신청을 받는다. 매일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커다란 일과이지만, 그 외의 잡무를 처리하는 데도 오랜 시간을 쓴다. 구독자를 모집하고 관리하고 각종 문의에 답변하고 수금하고 명단을 정리하고 동료들의 글을 받고 편집하고 입금해주는 등의 일들. 메일함은 마치 나의 업장 같다. 많은 질문과 인사와 항변과 비난과 다정과 제안이 매일매일 도착하는 장소다. 쌓인 메일에 답장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버리는 날도 있다. 그런 일을 할 때면 스스로가 사무직 종사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명에게 만 원씩을 받고 연결되어 있는 이 관계에 관해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구독 신청서에 자신의 일상을 조금 적어주는 이들이 있다. 지난달에 충치 치료를 하느라 돈이 쪼들려서 구독을 한 달 쉬었는데 너무 아쉬웠다는 사람, 여름방학 동안 공장에서 알바한 돈으로 ‘일간 이슬아’의 과월호들을 구입한다는 사람, 혹은 월급이 5일 뒤에 들어오는데 5일만 기다려줄 수 있는지 묻는 사람, 신청해놓고 구독료 입금을 못했는데 글이 도착해서 놀랐다며 지금이라도 서둘러 만 원을 보내겠다고 하는 사람, 이달의 커피 두 잔을 포기하고 내 글을 구독한다는 사람, 그 밖에도 여러 사람의 이야기 적힌 신청서 내역이 매달 쌓여간다.

 

나는 만 원이라는 돈이 각자에게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새삼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수신자들의 하루와 일주일과 한 달을 상상한다. 자정 즈음에 글을 발송해도 3초 만에 나의 글을 열어보는 누군가의 밤과, 숨 막히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며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보는 누군가의 아침을 생각한다. 나에게 선불로 만 원을 준 이들의 생을. 그들과 나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2018.08)

 

‘만 원씩 받고 글 쓰는 날들‘ 월간 <채널예스> 2018년 9월호 / 글 : 이슬아


 

나는 겨우 몇 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블로그에 소소한 프로젝트 글을 올리는데도 많은 노력과 예민이 필요함을 느낀다. 수 십 번의 시도를 통해서 실패를 해봤으니 이제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누군가 나의 프로젝트를 감시하고 있을 사람을 위해 꼬박꼬박 독서를 하고 글을 남긴다.

 

이슬아 작가는 그러나 자신만의 세상이 아닌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스스로 구독료를 정하고, 모집하고, 그만한 가치의 글을 꾸준히 써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녀가 존경스럽다. 무엇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절대량을 쌓는 것은 그 행위 자체에 비범함을 선사한다. 한 번의 큰 성공은 운과 환경과 당시의 상황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한 번에 닥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량을 쌓아 그것을 눈에 보이는 결과로 만들어내는 사람은 꾸준함의 힘을 아는 사람이다. 이슬아 작가는 이제 그 절대량이 수면 위로 떠올라 많은 사람들에게 요청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금 손에 쥔 <일간 이슬아 수필집> 책은 그 절대량과 꾸준함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꽤 많이 두껍다. 그 속에서는 무수히 다양한 생각과 시선이 담겨 있다. 글의 마지막에는 글을 연재한 날짜로 꼬박꼬박 마무리된다. 그 날짜들을 바라보며 매일 한 편의 글을 써내기 위해 스쳐갔을 감정들을 상상해본다. 2020년에도 ‘일간 이슬아’를 기대해도 좋다는 그녀의 말에 또 한 번 매일 연재 노동 앞에 서는 그녀를 상상해본다. 방 안에서 나만의 블로그에 조그마한 프로젝트를 연재하고 있는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구독료를 받으며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돈으로 치환하기 위해 충실히 노동을 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일'이라는 단어 앞에 당당히 맞서는 자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나는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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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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