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툴루즈 로트렉, 그의 순간을 상상하다 - 툴루즈 로트렉展

화려한 벨 에포크의 물랭루즈와 거리 위 사람들을 그리던 그의 순간을 상상하다,
글 입력 2020.01.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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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첫 전시회를 보러 버스를 타고, 언제 타도 늘 무미건조한 지하철에 올랐다가, 밋밋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예술의전당을 향해 걸어갔다. ‘2020년 처음으로 만나는 작품이자, 찾아가는 전시회가 툴루즈 로트렉이라니,' 걸어가며 생각했다. ‘첫’이라는 수식어에 무엇인가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새삼 소소한 의미를 더해보고 싶었다.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머릿속으론 시간의 흔적 가득 쌓여 색이 바랜 종이 위에 새겨진 로트렉의 그림 속 사람들을 기억해보고, 그가 그렇게 드나들었다던 물랭루즈를 떠올려 보고, 그가 살았던 삶의 모습을 되짚어본다. 여러 장면과 내용이 스쳐가지만, 사실 이 세 가지는 모두 직접 만나본 적 없이 들어만 봤던 것들이다. 마치 툴루즈 로트렉에 대한 나의 기억은 납작한 종잇장의 모습이었다. 아직 어느 무게를 담아 본적 없어 팔랑거리는 나의 툴루즈 로트렉에 대한 기억을 바라보면서, 그곳에 새롭게 담아갈 대화와 사색을 기대하면서 툴루즈 로트렉展에 입장했다.


 


툴루즈 로트렉展

_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jpg

 


[Review]

툴루즈 로트렉, 그의 순간을 상상하다

 

 

전시회에 입장하고 나서 입구에 드리워진 검은 커튼을 거둬내면, 활기찬 기운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는 붉은 벽의 방을 마주한다.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오!’를 외치게 되는 공간이다. 좌우를 둘러보면 벽에 걸린 TV 크기의 스크린 속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구현된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 속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화면 속 모습은 그야말로 '물랭루즈'였다. 화려한 붉은 빛의 방, 밝은 조명 아래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로트렉이 그린 '물랭루즈' 속 댄서들이 춤을 추고 있다. ‘아! 이것이 물랭루즈, 가장 화려했던 시대였던 벨 에포크*의 분위기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졌지만 공간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물랭루즈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공간에서 작은 전율을 느꼈다.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라는 의미. 1900년대 초 파리, 전에 없던 평화와 풍요를 누리고 문화 예술적으로도 아름다웠던 시대를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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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Moulin Rouge, Th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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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내 꾸며진 물랭루즈의 거리



이번에는 붉은 커튼을 거둬내고 다음 구간으로 넘어가니,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물랭루즈의 밤거리가 구현된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풍차와 화려한 글씨와 빛의 네온사인,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글로만 물랭루즈를 알고 있던 나는 ‘아마 몽마르트의 거리가 이런 모습이고, 이런 느낌이었겠구나’라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밋밋한 일상만 살다 와서 그랬던 건지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 세계 중심에 서 있는 물랭루즈와 그 거리를 구현한 도입부에 예상보다 더 빠져버렸다. 물론 진짜 몽마르트의 거리처럼 완벽하게 구현된 것은 아니었으나, 로트렉의 작품 세계를 만나기 전 당시의 분위기를 먼저 이해하고 느끼는 데에는 충분한 구현이었다. 그렇게 벨 에포크 속 물랭루즈를 더 선명하게 느끼고 나면, 툴루즈 로트렉의 생애를 알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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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valier


 

나는 툴루즈 로트렉의 드로잉을 보며 해가 지는 저녁, 드로잉북과 평생 친구인 연필을 가지고, 다가오는 밤을 빛으로 맞이하는 물랭루즈에 찾아가는 툴루즈 로트렉을 자주 상상했다. 사회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상관없이 밤을 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일렁이는 조명 아래 곳곳에 자리를 잡아 대화하고 술을 마시며 또 춤을 춘다. 그리고 그 무리 사이에서 주문한 술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바삐 손을 움직이며 사람들을 스케치하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슉슉슉 로트렉의 드로잉북 위에 그려진 거친 선들 사이로 저 앞에 춤을 추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려진 모습이 아니라 춤을 추고 있는 움직임 그대로. 잠시 툴루즈 로트렉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걸어가다가도 멈춰서서 그의 그림을 구경하거나 적어도 눈에 한 번 담아보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궁금해진다.


드로잉은 마치 유연한 뼈대같은 그림의 장르라고 생각한다. 드로잉이라는 뼈대 위에 색채와 화가와의 과정을 얹으면 그 방식에 따라 또다른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드로잉에는 한 사람만의 시선과 예술 세계를 기준으로 대상을 포착한 순간과, 그 장면을 놓치거나 잊기 전에 옮기기 위해 움직이던 손의 속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가볍고, 그리는 데에 부담없이 흘러가는 속도와 과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오랜 기간 다듬어진 그림보다 화가가 대상을 해석하는 직관적인 인상이 남겨진 모습이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마치 천천히 고민과 사색을 거쳐 완성된 그림은 화가의 의도가 멋지게 구성되어 찍힌 순간이라면, 드로잉은 한 화가의 예술 세계가 흘러가는 모습을 파파라치가 찍어낸 흔적같다.


툴루즈 로트렉의 드로잉들도 그랬다. 여유보다는 순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쫓아가는 듯, 그리려는 순간에 흐르는 인상을 펜으로 긋고 채운 모습의 드로잉에서 그의 작품에 남겨진 움직임을 떠올릴 수 있었고, 표정이나 움직임을 연구했었는지 한 모습이 반복되며 그려진 드로잉을 보며 그가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담기 위해 했던 노력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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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le Lender Dancing The Bolero in Chilperic



전시회에 가기 전, 전시에 대한 자료를 읽으며 툴루즈 로트렉이 상류사회를 조롱하기 위해 몽마르트의 여인들을 즐겨 그렸다는 지점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상류사회를 조롱하기 위함과 몽마르트의 여인을 그렸다는 두 내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직접 전시회에 가서 로트렉 작품의 시작에 더 가까이 놓여있는 드로잉들을 보고 다시 그 내용을 떠올리니 왜 그의 예술 세계를 그렇게도 이해할 수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나는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기록할 뿐이다"

-툴루즈 로트렉


우리는 종종 툴루즈 로트렉을 “관찰자”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가 그린 그림 속 사람들을 보면 로트렉이라는 화가의 의도보다 그려진 그 사람에 대한 것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는 외면만이 아닌, 또 그리고 내면만이 아닌, 관찰자의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의 몸짓과 얼굴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의 화풍으로 담아내는 화가였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주체로서의 해석보다는, 잘 보이기 위해 무엇인가를 더 그려내기 위한 의도보다는, 화가로서 대상이 자신의 움직임과 표정으로 허락한 언어들을 하나 하나 찍어내 빛과 숨결을 새기고 살결을 새기는 화가였다. 그런 그에겐 사람과 대면하는 데에는 그 사람 자체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반대로 사람을 벗어나 남들과 다름을 굳이 드러내기 위해 포장된 단상들은 거추장스러워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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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Moulin Rouge


 

물랭루즈에선 귀족처럼 상위 계층의 사람도, 매춘부나 배우와 댄서들처럼 더 낮은 계층의 사람도 모두가 똑같이 움직이고 함께한다. 춤을 추고, 대화하고, 술을 마신다. 물랭루즈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라도 사람을 구분하고 규정짓는 사회 계층의 경계가 흐려지는 곳이었다. 사람의 본능과 욕망이 지위에 상관없이 흘러가는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은, 상류사회의 사람이라며 아침이 되고 사회에 나가면 다시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우쭐해한다. 그들이 애써 멋지게 자신을 포장하려고 했던 것을 귀족 가문이었던 툴루트 로트렉은 보다 더 잘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자신이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고 뼈가 부러져 성장이 멈췄다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말로 열심히 포장하려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무시도 그가 상류사회를 보는 것에 대해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다 같은 사람이면서, 상류사회 사람들에겐 마치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위선과 가식으로 포장된 그들에게선 인간적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불가피하게 낮은 곳에 거의 쫓겨 살아가고, 자신을 감쌀 그 무엇도 쥘 수 없었던 물랭루즈의 여인들이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사람답다. 툴루즈 로트렉에겐 그것이 인간다움이었고, 그의 예술 세계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또 뮤즈였을 것이다.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몸에 지니게 된 장애로 인해 상류사회에서 멀어지고,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그림을 잡고 가장 낮은 세상에 직접 발걸음을 옮겼던 그의 마음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조금은 그려졌다.

 

‘그가 화폭에 그들을 희극적으로 또는 비극적으로 묘사한 것은 그들을 비웃기 위해 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위선과 가식으로 똘똘 뭉친 상류사회를 조롱하기 위해서였다.(툴루즈 로트렉전 보도자료) 라는 내용은 단순히 그가 상류사회를 겨냥하고 그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 그의 예술세계가 쫓고,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가다 보니 당연하게 상류사회를 등지고 섰을 그의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는 앞을 바라보고 그림을 그리며, 종종 등지고 서 있던 상류사회에 흘깃 시선을 던지며 사람답지 못한 허무맹랑한 모습에 조롱의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로트렉의 그림을 보다 보면 이것저것 더해서 고급스러워 보이려는 상류사회의 모습보다, 인간의 감정을 넘나들고 본능과 욕구에서 헤엄치는 여인들의 모습이 더 사람답다는 걸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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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aire

 

 

"언제 어디서나 추함은 또한 아름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짜릿하다"

- 툴루즈 로트렉

 

 

그가 예술가인 이유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여서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것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포착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이고 다시 세상에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툴루즈 로트렉에게 남들의 추함은 사람이 지닌 아름다움이었고, 사람들에겐 추함으로만 보일 때, 그는 사람다움을 발견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예술가였다. 툴루즈 로트렉이 남긴 말은 적어도 그의 예술 세계가 흘러가는 모습이 그러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런 걸까, 추하고, 처절하고, 때론 익살스러운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나는 특히 여러 석판화 가운데 정말 강렬하게 그려진 배우의 그림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었다. 그 작품은 한쪽 팔에 폭 안기는 크기의 종이 위에 배우의 얼굴부터 어깨까지가 그려진 초상화였다. 툴루즈 로트렉답게 매끄러운 표면보다 얽혀있는 선들이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고, 그림 속 배우의 얼굴에는 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는 아마 조명 빛이 강했던 공간 아래에 있는 배우를 그렸기 때문일 테고, 물랭루즈에서 조명이 강한 곳이라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곳은 바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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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레뷔 블랑쉬(La Revue Blanche) 속

툴루즈 로트렉의 일러스트

 


(글에서 이야기하는 석판화 작품 사진을 나누면 좋겠지만 전시장 내 작품 촬영 금지였기 때문에, 대신 촬영이 가능했던 로트렉 작품의 인쇄물 사진을 함께 나누어 본다.)


누가 봐도 그 그림은 배우를 그리기 위해 직접 마주 앉아서 그린 그림이 아닌, 무대에서 연기하는 장면을 포착해 그린 그림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밝은 조명만이 만들 수 있는 진하고 선명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림자로 덮인 눈에서는 강렬한 눈빛이 나오고 있었다. ‘매혹적이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표정과 눈빛이었다. 그 그림 앞에서는 마치 한 장의 그림이 아닌, 흑백 영화의 스틸컷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살아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배우다운 배우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실제 키가 작았던 툴루즈 로트렉이 배우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그랬는지, 아니면 무대가 높아서 그랬는지, 다른 초상화들처럼 배우의 얼굴이 정면으로 볼 수 있는 높이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바라봐 턱이 조금 더 부각된 모습이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보았을 배우의 눈짓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사소한 부분들이 모두 그는 배우이고, 지금 화려한 조명 아래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연극을 보며 연기하는 배우를 재빠르게 드로잉했을 툴루즈 로트렉을 다시 한번 더 상상했다.


툴루즈 로트렉의 시선은 생각보다 더 날카롭게 한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그 사람만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포스터들에서 더 잘 드러나고 있었다. 지금껏 보던 드로잉과 석판화 속 얽힌 선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단순명료한 선과 색 사이에서 사람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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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pe de Mlle Eglantine

 


특히 에글랑틴 무용단의 포스터는 밝고 활기찬 노란 색감으로 이미 사로잡힌 시선을 한 번 더 끌어당긴다.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들은 특유의 선과 색의 섬세한 배치로 그림에서 포인트가 되는 곳에 사람의 시선을 끌어오고 있었다. 4명의 댄서의 얼굴은 유일하게 채색이 더해진 머리 장식에 감싸여 눈에 띄면서 우리로 하여금 그 사이에 그려진 표정에 주목하게 하고, 반대로 선으로만 묘사된 옷의 위로 유일하게 선명한 검은색으로 그려진 댄서의 신발은 다리를 힘껏 차올리며 춤을 추고 있는 댄서의 몸짓에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춤을 추는 댄서의 발의 끝은 모두 포스터에 새겨진 “Troupe de Mlle Eglantine(에글랑틴 무용단)”이라는 글씨로 향하며 그 포스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주목하게 한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사소하지 않게, 절묘하게 구성되어 그려진 그의 포스터 작품들은 과연 그가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였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지금 보아도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다. 시각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자극을 받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매력적이라면, 당대에는 얼마나 매력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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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e Michael

 


상상해볼 필요도 없이, 과거 벨 에포크 시절 그의 포스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뜯어가던 수집가들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는 그의 포스터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증명한다. 의뢰받은 회사에 결국 여러 핑계로 사용되지 못한 포스터를(Cycle Michael) 툴루즈 로트렉이 자가 비용으로 200부 한정으로 제작해 판매했는데 금세 다 팔렸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사실 전시를 보며 ‘헉’하고 반한 작품 몇 점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 작품을 벽에서 떼갈 수 있었다니! 새삼 부러워진다 (나는 대신 애써 마음을 진정하며 전시회 굿즈를 사는 것으로 마음을 채웠다).

 

전시 공간을 채운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들을 보며 그의 포스터들이 걸린 화려했던 벨 에포크의 거리를 상상했다. 분명 그 거리는 또 하나의, 모든 대중에게 열린 툴루즈 로르렉만의 미술관이었을 것이다. 나처럼 그때의 사람들도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았을까. 소소한 질문을 찍으며 전시의 포스터 구간을 마지막으로 로트렉의 예술 세계와의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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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구간에서 넘어간 후 자리 잡고 있는 전시의 마지막에는 툴루즈 로트렉의 생애에 대한 영상과 사진, 그리고 작품이 남겨진 여러 아카이브 자료를 보며 다시 한번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 전시를 보며 이 작은 사람이 어떻게 거인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거리를 장식한 그의 포스터들, 잡지 매대에 걸려 있던 그의 일러스트 작품들, 물랭루즈의 터줏대감으로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그리고 또 남겼던 여러 석판화와 유화 작품들, 적어도 물랭루즈가 자리한 몽마르트에는 그의 손길 벗어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품과 스케치를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포스터 디자이너와 일러스트 작가로, 한편으론 물랭루즈를 그리는 화가로서 자신의 삶을 기록하던 화가로 살았던 툴루즈 로트렉의 생애가 짧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기도 한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작품을, 그리고 또 얼마나 성장했을 예술 세계를 보여줬었을까.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보면 그는 의도치 않은 신체 조건 때문에 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에서 버려진 사람이었다. 그는 물랭루즈에서 자신처럼 사회에서 외면 당한 사람들의 모습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공감했던 걸까, 아님 연민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겼던 걸까, 그의 삶에 있던 선택의 순간에 여러 질문을 남겨본다. 내 생각을 대답해도 툴루즈 로트렉의 정답은 찾아오지 않을 테니.


모두가 천박하다고 했던 환락가, 모두가 추하고 낮은 것으로만 보았던 환락가의 여인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을 그려낸 툴루즈 로트렉, 다시 한번 그는 낮은 세상을 예술 세계로 끌어안았던 거인이었다는 걸 기억해본다. 그리고 그의 복잡하고 안타까운 삶의 궤적도 떠올려보고, 내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 다시 한번 기억해보면서 전시회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올해 국내에서 열린 툴루즈 로트렉전은 그의 작품 세계의 기반을 이루던 드로잉과 석판화, 그리고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라는 표현을 전시 소개에 넣은 것처럼 그가 남긴 포스터 작품들과 인쇄물들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전시회를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화가의 삶을 더 가까운 곳에서 만나고 이해할 수 있는 전시라 말하고 싶다. 전시의 도입부는 툴루즈 로트렉 작품 세계의 중심이 되었던 몽마르트의 거리와 물랭루즈의 공간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꾸며 놓았고, 작품 간의 시작과 끝에선 그의 생애에 대해 자세하고 또 다양한 미디어로 잘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을 잘 알고 있다면, 그 작품의 시작이 된 툴루르 로트렉의 손길을 직접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화려함보다는,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화가의 태도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전시라고 소개하고 싶다.


아직 전시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랬던 것인지, 전시회를 간 평일 오후에도 사람이 많이 있었다. 특히 도슨트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어서 진행 시간에 맞추어 찾아오는 관람객들이 많아서 그랬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여유롭게 전시를 즐기시고 싶으시다면 도슨트 시간을 피해서 가면 좋으실 것 같다. 그리고 툴루즈 로트렉의 삶과 그가 작품을 위해 남겼던 흔적들을 살펴보는 전시인 만큼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화가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분이라면 도슨트 프로그램과 오디오 가이드를 활용하면 더 풍성하게 전시를 즐기실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플래시 촬영 및 작품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으니(전시장 내 포토존과 마지막 파랑 벽의 포스터 및 인쇄물 구간에서는 가능하다. 카메라를 들기 전 전시장 내 카메라 로고를 꼭 확인하시길!), 이러한 주의사항을 기억해주시면 더 원활하게 전시를 관람하실 수 있으실 것이다.

 

또 언제 국내에서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만큼 이번 전시회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툴루즈 로트렉전은 5월 2일까지 넉넉하게 진행되니 여유롭게 찾아가셔도 좋을 것이다. 그곳에서 지금 보아도 매력적인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잠시 당시 몽마르트의 거리를 걷는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이번 기회에 화려했던 벨 에포크, 그 시대를 거닐던 사람과 밤의 거리의를 빛내는 주인공이었던 물랭루즈를 그림으로 수놓은 그의 예술 세계를 마주하고 또 느끼기를 바라며 툴루즈 로트렉展 리뷰를 마친다.

 

 


 

 

포스터2.jpg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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