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에게 '우리'란 무엇일까? [시각예술]

<올해의 작가상 2019> 박혜수 작가의 신작
글 입력 2020.01.23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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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단어는 나와 청자를 포함한 한 명 이상의 타인을 칭하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아니 남발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가령,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가족 이야기를 할 때, 청자는 나의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문법상으로는 ‘내 가족’, ‘내 엄마’, ‘내 아빠’ 등의 표현이 옳지만 어떤 한국인도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은 우리라는 단어가 나라는 단어를 대신하는 대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나라가 타 국가에 비해 전통적으로 공동체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나와 타인 사이의 친밀성과 결속력을 강조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우리라는 단어는 오히려 배타성을 강하게 띄는 단어이다. ‘우리’가 존재하면 ‘그들’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라고 명명되지 못하는 자들은 그 존재가 지워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우리’에서 시작하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다. 학연, 혈연, 지연과 같은 아주 오래된 문제점들은 물론이거니와, 소수자 혐오 및 차별 문제들도 이런 ‘우리’가 가진 배타성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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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 상 2019>의 박혜수 작가는 이 ‘우리’라는 단어의 양면성에 주목을 하였다. 그의 작품은 ‘당신의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시장을 들어가면 한 쪽 벽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글자들이 눈에 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닌 설문조사의 답변을 분석한 결과였다.


박혜수 작가는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관념적 데이터들을 재구성하고 시각화하는 “아카이브형 작가”인 만큼, 이번 전시도 ‘우리’에 대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식들을 분석하여 그것을 작품으로 옮겨온 것이다.

 

설문의 내용은 흥미로웠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범위를 민족, 주변인, 가족 안에서 설정하고, 각각의 우리에게 느끼는 친밀도를 조사한다. 또한, 설문 참가자로 하여금 우리의 특징과 성격을 정의 내리도록 하며 동시에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참가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우리’는 누구인지 등을 질문하여 ‘우리’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박혜수 작가는 이것을 분석하여 텍스트로 전시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결과들을 다양한 설치작품들로 옮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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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시장 한편에 다이어그램을 설치하여 설문의 결과를 다양한 컬러의 실로 표시하였다. 항상 딱딱한 텍스와 숫자로 접하던 설문의 내용을 시각화된 이미지로 보게 되니 굉장히 새로웠다.


정보의 전달성은 텍스트보다는 떨어지지만 확실히 이미지들이 주는 강렬함이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회사(학교) 쪽에 대해서는 친밀성을 느끼는 정도가 달라 선들이 빽빽하지 않은 데에 반해 ‘우리 가족’ 쪽은 선들이 눈에 띄게 빽빽한게 한눈에 보이는 것이 인상 깊었다.


팽팽한 선들을 뒤로하고 우리 나라에서의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던 중 “당신이 원하는 완벽한 가족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라는 커다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박혜수 작가의 <퍼펙트 패밀리>라는 작품으로, 가상으로 설립한 휴먼 렌탈 주식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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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된 패드로 <퍼펙트 패밀리>의 사이트에서 신청 방법이나 과정들을 둘러보며 웃음이 흘러나왔다. 가족 해체 사회를 살고 있으며 동시에 가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참 위트 있게 표현했다고 느꼈다. <퍼펙트 패밀리>는 돈만 지불한다면 상황에 따라 나에게 필요한 ‘완벽한’ 가족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대행 배우들은 구매자의 정보와 니즈를 습득하여 그것에 맞추어 연기를 해주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신청 페이지’였는데, 관객들이 직접 그 페이지에 글을 작성할 수 있었다. 그저 밥 친구를 해달라는 글부터 가슴 절절한 사연까지. 이 정도 수요라면 하객 대행이나 애인 대행 서비스들도 있는 마당에, 정말 미래에는 이런 휴먼 렌탈 서비스가 유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시의 끝은 <후손들에게>라는 제목의 영상 작업으로, 고독사와 가족의 붕괴를 주제로 한 영상이었다. 고독사를 맞게 되는 사람들은 보통 가족, 지인, 동료 등 누구도 찾지 않아 홀로 남은 노인들이다. 첫 번째 설치물에서 확인했던 어떤 ‘우리’에도 포함되지 않는 ‘그들’인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고 불러주지 않으니 그들은 이 사회 안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되곤 한다. ‘우리’에 포함됨과 포함되지 않음은 한 개인의 정체성과 존재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 2019>의 네 명의 작가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이 굉장히 강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그 결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시 배치 상 첫 번째 작가인 홍경인 작가는 인간과 동물의 위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과, 여성의 저임금 노동을 표현하는 퍼포먼스 작품을 전시했으며, 마지막 작가인 김아영 작가는 SF 장르의 영상물을 통해 난민 문제의 문제를 풀어내었다.


인간 중심 사회에서의 ‘동물’, 남성 중심 사회에서의 ‘여성’, 민족주의 국가에서의 ‘난민’은 우리가 될 수 없고 ‘그들’, 즉 타자에 위치하게 된다. 한 해 동안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타자성이라는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작가가 여성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소수자의 시각을 체화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기에, 여성 작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더욱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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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상 2019> 인터뷰에서 박혜수 작가는 “작품을 전시장이 아닌, 삶에서 이어나갈 수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하며 “제가 던지는 주제에 대해서 관객이 스스로 질문을 찾아 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혜수 작가의 작품은 확실히 전시장에서 미적 감흥을 얻게 해준다기보다 계속해서 사유를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2019년을 막 지나온 지금, 박혜수라는 작가가 던져준 이 이슈에 대해 '우리' 모두가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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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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