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저는 기꺼이 구원을 거절하겠습니다 - 마터 [연극]

글 입력 2020.01.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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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초연으로 제 6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을 수상한 수상하여 그 작품성과 완성도로 호평을 받은 <마터>가 보다 탄탄해진 무대로 재공연에 오른다.

 
 
<시놉시스>
 
벤야민은 수영수업에 들어가지 않는다. 수영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종교적 신념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엄마와 선생님들은 벤야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벤야민의 지도교사이자 과학 선생님인 로트는 벤야민이 심한 사춘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이끌어주려 하지만, 하루 종일 성경을 읽는 벤야민의 신념과 반항은 더욱 거세진다.
 
로트는 벤야민을 상대하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하지만, 벤야민의 반항을 제어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로트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교회에 가야 했다. 하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신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신앙심은 생기지 않았고, 나에게 종교는 사회 문화 현상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못했다. 나는 종교인들이 가진 신념을 그들만의 질서라고 생각했는데,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궁극적으로 잘살아 보려고 하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주장에 대해 의아해지는 순간이 많아졌고, 계속해 질문해야 했다. 왜, 도대체 신념이, 인간 위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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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서 '개인의 자유'를 찾기란 어려웠다. 나는 유학 시절 기독교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그곳에 나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큰 반발심 없이 잘 지내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여성, 성소수자, 비종교인 등에 대한 "신념에 가득 찬" 목소리를 들을 때는 숨이 막혔다. 여자의 '순종', 성소수자의 '치료', 비종교인의 '구원', 하나같이 전부 혐오가 섞인 단어들이었지만,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 중 '구원'이란 말을 정말 싫어한다. 물론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간절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바람처럼 모두가 구원을 목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기숙사 내에서 학생들은 구원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운명을 나눴다. 물론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불쌍하게 보고, 안타까워하고, 차별했다. 나는 그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믿음이 없는 티를 그다지 내지 않았다. 함께 기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다만, 불편함을 참지 않았고, 그게 때때로 성경에 부딪혔기 때문에 나는 그곳에서 "나쁜" 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나를 구원해주고 싶어 했다.

나를 구원하려는 그들의 마음은 알았고, 그게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도 잘 안다. 때때로 내 손을 잡고 기도하던 손들의 온도가 무척 따뜻했던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동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구원 받았으니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라는 권위적인 마음이 반갑지 않다. "믿어야 해."라는 말보다 "믿지 않는다니, 널 위해 기도할게."라는 말이 더 불편하다.

종교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종교는 여전히 오래된 서적 뒤에 숨어 사회를 외면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수자를 차별하는 일에 절대 "차별"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저 동정과 연민, 그리고 안타까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타인이 그로 인해 차별을 당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구원받지 못할 것은 "진리"이고, 그건 참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념은 그렇다. 너무도 당연해서,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게 진리여서, 그 믿음 앞에서 자신도 타인도 중요치 않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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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한국어 토론 강의를 들었다. 매주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고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하루는 주제가 '동성애'였다. 찬성과 반대를 선택해서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 동성애가 찬성과 반대를 논할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수업은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서 가장 불편했던 강의 시간이었다. 발표를 위해 나온 학생들은 교수님의 진행에 따라 찬반 토론을 시작했고,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급하게 진행되었던 만큼 맥락도 그다지 없었고, 근거도 불충분했지만, 교수님은 그냥 좋아하셨던 것 같다.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하던 학생의 다수는 기독교 윤리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인권과 동성애는 "아예 다른"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찬성'(찬성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다.)하는 학생들이 아무리 인권에 대해, 혐오 범죄에 관해 이야기해도, '성경'은 반대 입장의 학생들의 완벽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어딜 가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등장하는 '에이즈', '일탈' 등의 이야기가 줄줄이 나왔고, 편협한 이야기들의 끝에서 그들은 누구보다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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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수업에 성소수자가 있었다고 생각해보자. 자신의 바로 앞에서 학생들이 자신을 "찬성, 반대"하는 토론을 한다. 그리고 교수님은 자신을 반대한 학생을 칭찬하고, 그들은 추가 점수를 받는다. 자신을 반대하는 근거를 직접 듣고, 그 반응을 전부 체감한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그 학생이 아무렇지 않게 교실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을까? 과연 이 수업에 혐오적 요소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없었다고 한들, 이 주제가 정당화될 수 있던 토론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함께 수업을 듣던 학생들에게 낯선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차가운 말들에 베인 듯했다.

토론은 개인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하게 된다. 개인의 신념, 그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신념이 인간 위에 있다면, 나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믿음도 타인을 베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생을 잘 살고 싶어서 믿는 것들이지 않은가. 강한 믿음은 시야를 좁힌다. 점점 좁아지고 결국 더 많은 타인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정말 자신이, 사회가, 그리고 신이 바라는 일인지 꼭 생각해보며 신념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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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터>는 종교에 한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강한 신념에 의해 형성되는 혐오 갈등에 대해 상징적으로 다루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질문한다. 의도적 차별보다 잔인한 것은,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살아 숨을 쉬고 있는데",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 자신은 작아지고 세상은 위협적으로 변한다.

인간의 다양성 하에 생겨나는 수많은 신념들 속에, 과연 단 한 번의 혐오를 겪지 않고 생존할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어딘가 우리는 숨 막히는 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다.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강한 신념이 존재하는 한, 완전한 생존은 불가능하다.

강한 믿음, 좁은 시야, 시야 밖의 배제. 혐오의 굴레를 끊어내야 한다. 시야 밖의 존재에 대해 알려야 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연극 <마터> 역시 이 굴레를 깨기 위한 의미 있는 연극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연극의 관객은 그 의미를 더욱 불붙일 소중한 존재들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연극 <마터>와 함께하기를 바란다.
 

 


 
 
마터
- MARTYR -


일자 : 2020.01.29 ~ 2020.02.16

시간
평일 8시
주말 4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선돌극장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기획
극단 백수광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극단 백수광부


극단 백수광부(白首狂夫)는 1996년 연출가 이성열과 젊은 배우들이 실험연극 공동체를 표방하며 출발했다. 장정일의 시집을 해체 재구성한 <햄버거의 대한 명상>이 창단작이다. <굿모닝? 체홉>, <야메의사> 등 배우들의 몸과 즉흥연기에 기반 한 공동창작 작업을 지속해왔으며, 최근에는 문학적 텍스트에 기초한 정밀한 무대 또한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햄릿아비>, <과부들>, <봄날>, <여행>, <그린벤치> 등의 대표작이 있으며, 해체된 일상의 낯섦과 강렬한 시적 충동이 공존하는 역동적인 세계를 구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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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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