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듀랑고' - 가족은 결국 타인이다.

가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글 입력 2020.01.1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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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승, 아이삭, 지미. 세 부자의 듀랑고 여행. 가족의 여행 이야기, 매우 흔한 소재이지만 절대 흔하지 않았다. 곱씹어 보는 재미가 있는 연극이다. 연극을 돌이켜 볼수록 진하게 남는다. 가족이라는 소재를 단지 감동적이고 유대감을 느끼는 존재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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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랑고 속 가족의 모습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각자 개인의 욕망이 있지만, 그들은 선뜻 내놓지 못한다. 나의 결심이 가족원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세계는 나를 보듬고 품어주는 동시에, 세상과 단절시키고 가둘 수 있는 곳이다. 내가 나로 온전히 존재할 수 없는 곳.

 

가족 안에서의 ‘나’는 언제나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다. 가족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지키고 유지하려면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 개인으로서의 욕망을 온전히 실천한다면 그는 이기적이라며 비난을 받을 것이다. 가족은 나의 편이 되기도 하지만, 나를 옭아 먹는 존재이기도 하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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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족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 노력한다. 대표적으로 아버지에게는 책임감이라는 덕목이 요구되고, 어머니에게는 희생이 요구된다. 그리고 자신이 몇 번째 자식인지, 성별이 무엇인지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이 다르다.


그래서 나는 첫째 아이삭이 그런 면에서는 매우 솔직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개인적인 자신의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부승은 아이삭을 이기적이라고 한다. 아이삭이 기타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타치며 노래할 때 그는 매우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보인다.

 

반면에 동생 지미는 자신의 욕구를 숨기려 한다. 아마도 가족을 지키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지미는 온화하고 다정하며 가족을 아낀다. 항상 형과 아버지에게 다정하고, 둘의 다툼을 말리고 중재하며 분위기를 환기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부승은 지미에겐 다정하다. 하지만 지미는 그러한 자신의 역할을 슬슬 견디기 힘들어한다.


수영을 잘하지만, 아버지의 부담스러운 관심으로 인해 수영이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하고, 게다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만,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다. 아버지의 부승은 그동안 오랫동안 충성했던 회사에서 정리 해고를 당한 후, 앞으로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좌절한다. 그런 그에게 불현듯 과거에 가지 못했던 '듀랑고' 티켓을 발견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듀랑고로 향한다.


아내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절친한 친구와 떠나려고 했던 듀랑고에 가지 못했던 부승은, 자신의 욕구를 위해 두 아들을 데리고 듀랑고로 무작정 떠나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혼란스럽고 세 부자는 저마다의 비밀을 알게 되며 갈등을 겪는다. 갈등은 점점 고조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욕구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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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랑고의 결말은 뻔하지 않다. 보통의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 등의 결말은 항상 어떠한 갈등이 해소되거나, 갈등이 커지며 파경을 맞으며 끝난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되면서 마무리되기 때문에 결말이라는, 끝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듀랑고>는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끝난다. 그래서 처음 연극이 끝난 후에는 줄곧 멍한 상태였다. 커튼콜이 끝나고 배우들이 모두 들어간 뒤에도 나는 계속 멍했다. 이게 끝이라고? 그럼 결말이 대체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집에 오면서 연극에 대해 곱씹어보곤,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 연극에는 메시지가 있다기보다 일종의 탐험이다.”라는 작가 줄리아 조의 말처럼, 나는 듀랑고를 통해 어떠한 메시지를 얻었다기보단, 일종의 탐험을 함께 했다. 굳이 결말이 있어야 할까? 어떠한 메시지를 담고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함께 탐험 하고, 각자의 상황과 생각에 맞게 그 탐험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번 탐험을 통해 앞으로 가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이 연극을 보면서, 문득 ‘이해보단 인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실 가족 또한 타인이다. 하지만 가족을 타인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과 가족을 동일시한다. 그렇기에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가족도 엄밀히 말하면 타인이다. 그들의 생각이나 욕구, 가치관은 나와 별개로 존재한다. 그를 인정하고, 그의 행동과 생각을 내 생각과 별개의 것으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가족이라는 집단 속에서 나 자신으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앞으로 그들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또한 타인이기에.


 

[정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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