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곳은 알레포, 정의란 무엇인가? - 영화 '사마에게'

글 입력 2020.01.1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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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leppo,

What’s JUSTICE?

 

 

때로 논픽션은 픽션보다 잔인하다. 안전한 기승전결 구조와 주제가 담보하는 해피엔딩, 그리고 뻔하지만 익숙한 클리셰까지. 공포영화나 전쟁영화를 마음 졸이며 보다가도 결말에 가서 한숨 놓게 되는 것은 모두 픽션이기에 가능한 엔딩 때문이다. 정의가 승리하고 주인공이 웃음 짓는 결말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말은 인류가 오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던 격언이었다. 정의가 승리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희생, 노력, 그리고 피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종종 정의가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고통스러운 과정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젠가 정의는 승리할 거다. 이것은 과정일 뿐이다.’라고 토닥이는 건 무의미한 희망고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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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도 그 과정을 담는다. ‘사마에게’는 용감한 저널리스트인 ‘와드’ 감독이 그동안 미디어가 보도하지 않았던 알레포의 참상을 담은 기록이다. 스마트폰으로 알레포의 현실을 촬영하기 시작하며 출발한 이 영화는, 내전이 격화되어가는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도시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작품이다. 친구이자 동료 ‘함자’와 서로 의지하며 부부가 된 뒤, 딸 ‘사마’를 낳고 알레포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유를 꿈꿨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나의 도시 알레포.

사마, 이곳에서 네가 첫 울음을 터뜨렸단다.


이런 세상에 눈 뜨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어.


사마, 왜 엄마와 아빠가 여기 남았는지,

우리가 뭘 위해 싸웠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사마, 이 영화를 네게 바친다.


 

 

 

비극은 생각보다 침착하다


 

‘사마에게’에는 비명과 통곡이 없다. 자극적인 연출이나 독특한 수사법과 같은 장치도 없다. 상실이 일상이 되어가는 과정을 침착하게 담아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침착함이 그 어떤 울음소리보다 더욱 진하게 마음을 울린다.


이 영화 속 모든 언어는 대사가 아니라 말 그 자체다. 등장인물 역시 가상인물이 아닌 실존인물이며, 모든 장면은 씬(scene)인 동시에 기록이자 기억이다.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죽음과 상처들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비틀거리는 카메라워크에서는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폭격이 가해지고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했다. 그 중에는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도 있었다. 딸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후 피난을 가다가 폭격 탓에 딸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잖아요. 너를 지키려고 떠났는데 너를 잃어버리다니.



아이를 잃은 어른들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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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보며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떠올렸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한강, ‘소년이 온다’ 중)



영화 속에서도 와드와 함자, 그리고 사마는 알레포로 되돌아온다.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뚜렷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사마에게 더 나은 알레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일련의 과정들은 고요하고 또 묵직하게 진행된다. 꾸며낸 명대사 없이도 커다란 울림이 전해지는 까닭은, 그 어떤 픽션보다 현실이 가장 잔혹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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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되돌아보는 현재에서야 외칠 수 있는 말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단순한 문장을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죽을 이유조차 찾지 못한 채 피를 흘려야 했던 수많은 목숨들이 역사가 되어서야 우리는 그 문장을 발화할 권리를 갖는다. 단 한 방울의 혈흔도 바치지 않았지만,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했다는 이유로 ‘정의는 승리한다’고 외칠 자신감을 받는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직 역사 끄트머리에 온점이 찍히지 않은 공간에서는 쉽게 단정하지 못할 문장이기도 하다. 정의는 승리할 테니 조금만 더 힘내라는 문장조차 희망고문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영화 ‘사마에게’를 보는 내내 결말이 두려웠던 이유도 이것이었다. ‘사마에게’는 해피엔딩으로 봉합되지 않은, 아직까지도 투쟁이 진행 중인 역사 한 가운데를 다룬다. 따라서 와드와 함자가 행복하게 웃으며 ‘정의가 승리했다’고 외치는 장면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까지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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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극찬을 받았던 이유는 과거를 과거로 사장하지 않고 끊임없이 파헤치며 그때의 기억과 상흔을 현재로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영화 ‘사마에게’가 가져다주는 울림이 거대한 이유도 이와 같다. 감정과 맥락을 배제한 채 알레포를 삭막하게 기술하지 않고, 2016년의 알레포에서 느낀 감정과 웃음, 울음, 상실과 사랑까지 빠짐없이 기록했기에 이 영화는 영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영화 마지막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이곳은 알레포, 정의는 무엇인가? 라는 푯말 앞에 선 사마. 훗날, 사마가 이 알레포의 기록을 볼 때쯤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기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의는 승리한다, 이 문장도 자신 있게 발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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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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