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나은 나를 꿈꾸며, "깨끗한 존경" [도서]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
글 입력 2020.01.1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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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불과 2년 전, 크고 작은 청탁들을 받으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던 작가 이슬아는 청탁을 받아 원고를 쓰는 기존의 형식을 벗어나, 자신의 SNS를 통해 직접 한 달 치 독자를 모집하여 하루에 한 편의 수필을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한 달 구독료 만 원, 글 한 편당 500원을 지불하면 매일 밤 자정 메일함에 수필이 한 편씩 도착해 있는 것이다. 학자금 2500만 원을 갚기 위해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 날마다 뭐라도 써서 보낸다!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아주 성공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2018년에 연재한 ‘일간 이슬아’ 수필들을 엮어서 출판한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후, 2019년의 일간 이슬아는 수필에 국한된 형식에서 벗어나 수필, 서평, 인터뷰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연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형식은 각각 다른 제목의 책으로 출간이 되었고, 그중 인터뷰집인 <깨끗한 존경>에 대해 소개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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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이슬아 작가의 글을 읽으면 그가 삶의 행간을 잘 읽어내는 사람임이 느껴졌다. 그것이 슬픔이든, 사랑이든, 용기이든 그녀의 시선을 거친 세상은 좀 더 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하는 인터뷰라면 정말 믿어지는 내용일 것이었다. 삶의 행간을 읽어내 듯이, 이슬아 작가는 <깨끗한 존경>을 통해 자신보다 좀 더 나은 이들을 읽어내고 그 이야기를 독자인 우리에게 전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는 정혜윤 pd, 김한민 작가, 유진목 작가, 김원영 작가로 총 네 명이다. 네 인물이 전하는 이야기는 모두 다른 이야기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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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PD와 이슬아 작가



정혜윤: 깨끗이 존경하는 거예요. 저는 연민으로 잘 못 움직여요.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존경심이고 감탄이에요. 그들은 슬프기는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저보다 훨씬 괜찮고 위대한 사람들이에요.

 

- 깨끗한 존경 44p


 

영화 <벌새>에서 “함부로 동정하면 안 돼. 알 수 없으니까”라는 대사가 있다. 이는 동정이나 연민이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엔 나를 위한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정혜윤 pd도 또한 누구도 동정하지 않고 함부로 연민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슬픔의 힘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을 깨끗이 존경하며 그 힘으로 움직인다.

 

정혜윤 pd는 세월호 유가족, 911 참사 유가족,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 등 수많은 유가족 분들을 만나며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과 책을 써낸 인물이다. 그는 시선의 이동과 연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자신의 시선이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향해 있는 것을 정혜윤 pd는 견디지 못한다. 그는 시선의 이동을 통해 연대를 이루어 낸다.


내가 공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 순간의 나를 위한 감정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정혜윤pd가 말하는 사랑과 슬픔이 가리키는 더 나은 변화의 방향이란 어느 쪽일까.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기준이 사랑과 슬픔이 되는 사람의 삶은,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떠한 형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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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작가



김한민: 위대한 사람을 믿지는 않아도 위대한 만남은 있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이 만나서 위대함이 생기는. 한 사람 씩 보면 다 별 거 없고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만났을 때 생기는 스파크가 있죠.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처럼, '너는 나잖아'. 그게 타인이든 동물이든 키우는 개든 도살장의 돼지든... 타자가 나와 다를 바 없어지면서 나는 '많은 나'가 되는 거죠.

 

- 깨끗한 존경 107p


 

김한민 작가도 정혜윤 pd와 같이 ‘확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또한 내가 너무 나인 순간들을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김한민 작가는 <아무튼 비건>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비건 지향적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건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들과 그로 인해 바뀌게 될 것들에 대해 읽고 있자면, 나를 포함한 지구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너무나도 ‘나’였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외면의 천재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너무나도 '나'인 순간은 다 볼품이 없다. 하지만 '나'에서 벗어나 타자와 만나 '우리'가 된다면 그것은 어떠한 위대함을 낳는 것이다. 자신의 이기성에서 벗어나 나라는 개인이 타자와 끊임없이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그 타자도 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한민 작가가 꿈꾸는 '우리'로 가득찬 세상이 언젠가는 도래하게 될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너무도 작은 나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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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작가

  


말하자면 나는 의도적으로 특정한 감각을 강화시키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말이다. (중략) 내가 가진 적은 것들이 나를 비참하게 할까봐 대범한 마음과 대범한 태도를 가지려고 했다.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무엇보다 몸이 그 마음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나는 나를 훈련시켰다.

 

- 유진목 <디스옥타비아> 105p


 

유진목 작가의 말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셔터를 내린다’는 표현이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반응이 나의 정신적 에너지를 너무나도 소진 시킬 때 그에 응답하지 않기 위해 정신의 셔터를 내린다는 것이었다. 그가 이처럼 ‘셔터’를 내리는 것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함이다. 유진목 작가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는 달인인 사람처럼 보였다. 조심스럽게 자신만의 서사를 밀고 나가면서 동시에 거침이 없어 보인달까.

 

이슬아 작가는 그것을 사랑과 용기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쓸쓸한 곳을 사랑과 용기로 가득 채워내어 자신에게 스스로 전지전능한 신이 되는 것이다. 유진목 작가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구원이 되는 사람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향한 전지전능함이 있다. 항상 오롯이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이 버거워 타인에게 기대려고 했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기였을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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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와 김원영 작가

 


김원영: 춤 워크숍에서 여러 상대방과 손등을 대고 같이 움직일 때가 있어요. 그 몸짓을 할 때의 느낌이 사람마다 정말 다르게 전해지더라고요. 제가 가진 편협한 조형미와 거리가 멀어도 같이 움직였을 때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어요. 누군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확실히 다양해지는 중인 것 같아요.

 

- 깨끗한 존경 229p


 

변호사이자 연극배우인 김원영 작가는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그는 그저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장애인의 신체와 아름다움, 존엄과 매력, 사랑과 우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에겐 ‘정상성’이라는 관념이 존재하고, 그것에 가까울수록 아름답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는 정상성이 아닌 고유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서로의 신체에 대해 깊은 존중을 하는 것이다. 공적인 영역을 넘어서 사적인 영역까지도 아우르며 말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사실 아직 많이 멀었다.) 사적인 영역에서의 권리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쉽게 잊고는 한다. 우리는 흔히 몸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며, '몸'이 현실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놓치고는 한다. 누구의 신체도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각자의 영역에서 우리는 모두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는 이 당연한 말을 김원영 작가의 말로서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네 명의 인터뷰의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좀 더 나아간다면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될 수 있다. 나의 부끄러운 부분을 마주하고 그것을 밟고 일어서며 나보다 나은 이가 걸어간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 바로 ‘깨끗한 존경’일 것이다. 그들을 존경하며, 동시에 그들을 깨끗하게 존경하는 이슬아 작가를 존경하며 더 나은 나를,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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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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