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미 길라잡이(4) - 와인에 대해서 [문화 전반]

와인은 어려운 술일까
글 입력 2020.01.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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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에 흥미를 느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와인에 관해 그닥 잘 알지 못한다. 굳이 꼽아보자면 초보 중에서도 초보에 가깝다. 혹시나 매우 전문적이고 깊은 지식을 원했던 사람이라면 이 글에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면서 무슨 취미?’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혹여 그렇다면 나의 다른 글인 <나만 취미 없는 세상>을 권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취미는 꼭 전문적일 필요가 없다.

 

나는 술을 아주 잘 마시는 편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대한민국 여자 기준으로 평균 정도의 주량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또한 술 특유의 알코올 향이 상당히 거북하게 느껴져서 간혹 친구들과 소주를 마실 때는 숨을 참고 얼른 물을 털어 넣거나 소주에 토닉워터를 섞는 등 최대한 술 냄새를 가리려 한다. 또한 술을 마실 때는 안주가 거의 무조건 필요한 사람으로써 안주 없이 술만 먹는 것은 너무나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런 만큼 주당이거나 엄청난 애주가로 불리기는 확실히 아닌 사실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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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어쩌다 와인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나 하면 답은 꽤나 간단하다. 나의 또 다른 취미 중 하나는 바로 ‘향수’이다. 그 만큼 나는 향 그 자체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와인은 정말 향긋하고 아름다운 향이 나는 술이었다. 맥주는 향이 나긴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와인만큼 다양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소주는 딱히 향이랄 게 없었고, 조금 다른 맛을 내는 고급 소주들조차 알코올 향이 강하게 느껴져 꺼려졌다. 위스키는 향에 있어서는 풍부함을 자랑하지만 도수가 너무 높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와인은 크게만 나누어도 화이트, 레드, 로제, 요즘은 오렌지 와인까지 다양한 빛깔과 향을 품고 있다. 난 끊임없이 탐험하고 새로운 것이 계속해서 나오는 취미를 좋아하는데, 와인은 그것에 제격이다. 같은 포도를 이용해 만들어도 만드는 이에 따라 그 맛이 다르고, 만드는 이가 같아도 포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심지어 같은 와인 메이커에서 이전과 같은 포도품종을 이용해 만든다 하여도 포도의 빈티지(포도 수확 연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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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와인은 보통 가장 먼저 떠오르는 프랑스가 있는 유럽 쪽, 일명 구세계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 칠레 등의 신세계까지 거의 전 세계에서 훌륭한 퀄리티의 와인을 생산해내고 있다. 그렇기에 아마 평생 마셔본 와인은 절대 다시 마시지 않아도 절대로 모든 와인을 다 마셔볼 순 없을 것이다. 언제나 아직 접해보지 못한 새로움이 있다는 것은 질리지 않을 이유가 되어준다.

 

흔히들 와인은 어려운 술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쉬우려면 한없이 쉽고 어려우려면 한없이 어렵다. 최근 몇 달간의 나는 와인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고 비교해가며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찾아보고 도서관에서 유명한 와인관련 도서를 대여해 읽어보기도 하며 그냥 마시기보다 조금 더 공부하며 마시고 있다. 그 덕분에 예전엔 몰랐던 사실에 관해 알게 되며 흥미로운 취미 생활 중이다.

 

이렇게 공부 아닌 공부를 하며 마셔보니 왜 와인이 어려운 술이라고 말하는지 바로 와 닿았다. 프랑스 와인 딱 하나만 놓고 말한다 생각해보자. 일단 발음조차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의 지역 명이 대거 등장한다. 그 많은 곳의 위치와 지명, 마을이름, 등급체계를 일일이 보다 보면 막막함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프랑스 하나만 놓고 생각해도 공부하려면 꽤나 골치가 아픈데 전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 와인 산지가 존재한다. 이쯤 되면 와인을 즐기려 공부하는지 공부하려고 와인을 마시는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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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정보들은 꽤나 이상적인(?) 취미 생활을 위한 것이고 보통의 사람들은 소믈리에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 이상 굳이 이렇게까지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가 파스타를 먹을 때 어떤 면을 썼는지, 어떤 지역의 특색을 담고 있는지, 치즈의 종류는 무엇인지 등등에 관해 알면 재미있겠지만 굳이 몰라도 된다. 실제로 사람들은 파스타를 먹을 때 딱히 그런 것에 있어서 고민하고 먹지 않는다. 와인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되면 와인은 절대로 어려운 술이 아니게 된다. 포도품종과 산지, 양조장이 어디인지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그저 나의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다.

 

와인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이전의 나는 화이트 와인에 얼음 한 조각을 넣어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얼음의 시원함과 화이트 와인의 깔끔함이 어우러져 아주 기분 좋은 신선함이 느껴졌다. 천천히 얼음이 녹아 나중엔 와인이 밍밍해지지만 그 조차 술을 가볍게 마시고 싶던 나에게는 알맞은 밍밍함이었다. 그러나 와인에 대해 알아가면서 마음 한 켠에는 이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불편함이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어떤 글을 읽게 되었다. 다시 찾지는 못했지만 아마 음식관련 칼럼이었던 기억이 있는데,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유학 시절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전문가에게 수업을 들었을 당시 그 분이 ‘리슬링(포도의 품종)’와인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걸 가장 즐긴다는 사실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이다. 많은 이들이 그 방법을 듣는다면 아마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저명한 와인 전문가는 정석에서 한참 벗어난 방법으로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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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나 또한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와인을 즐기는 것이지 와인의 즐거움을 위해 내가 힘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와인의 뒷 배경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면 없는 대로 즐기는 것이 맞다. 또 그것이 오래오래 취미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억지로 공부하듯이 접하다 보면 금새 질리고 지치기 마련이다.

 

만약 누군가가 단순히 마시는 것을 넘어서 조금은 공부해보고 싶다 한다면 나는 ‘포도 품종’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포도의 품종은 수천 가지가 넘지만 와인에 가장 많이 그리고 대중적으로 쓰이는 품종은 몇 가지로 축소된다. 각각의 품종들은 개성이 모두 제각각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묵직하고 굵으며 ‘피노 누아’는 섬세하고 우아하다. ‘소비뇽 블랑’은 신선하고 산도가 높으며 ‘샤르도네’는 화이트 중 묵직한 편이다. 이런 식으로 각각 품종의 성격을 익힌 뒤 그에 맞는 와인을 마셔본다. 이때 확실히 하고 싶으면 한가지 품종 100%로 만들어진 와인을 선택하거나 그것이 힘들면 그 품종의 성격이 확실히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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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선택한 와인을 서로 비교하며 향을 맡고 음미하다 보면 차이가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애매할 때도 많겠지만 확실히 향의 차이가 느껴지는 와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 때 느껴지는 오크향, 바닐라향, 풀향, 망고향, 라임향 등등 다양한 향을 기록해본다. 이런 방식을 통한다면 저절로 공부도 되거니와 더 깊게 공부해볼지 아니면 편하게 마시는 취미로 가질지 정해지리라.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와인을 너무 멀게 보지 말라는 것이다. 취미는 내가 얼마나 그것을 즐기고 있고 함께할 때 행복한지에 달려있지 지식의 양과 전문성에 있지 않다. 와인의 나라인 프랑스에서의 와인은 식사 때 함께 마시는 술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소주나 막걸리쯤일 것이다.


그들은 물 대신 와인을 가볍게 마신다. 위에서 썼듯이 와인 전문가 조차 얼음을 동동 띄워 대충 마신다. 혹시 와인에 관심이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벽에 겁먹고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면 당장 와인 한 병을 사서 마셔보자. 길고 긴 인생의 또 다른 재미 하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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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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