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말 듀랑고에 가고 싶으시다면 - 듀랑고 [연극]

글 입력 2020.01.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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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듀랑고>의 무대 한가운데에는 앞을 향해 달려가는 '부승' 가족의 자동차가 있었다. 듀랑고행 기차역을 향해 그들은 앞을 보고 달렸다.

그들은 끝내 닿지 못할 듀랑고를 향해 페달을 밟고, 마치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인 양 달렸다. 그리고 듀랑고행 기차를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좌절하고 분노했다. '부승' 가족이 회복을 위해 선택한 희망이었던 듀랑고가, 더는 희망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듀랑고에 도착하면, 그 때는


달리는 자동차 안은, 마치 '부승' 가족의 모습과도 같았다. 자동차 본체에 몸을 맡긴 채, 목적지인 듀랑고행 기차역만을 바라보는 그들은, 서로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니, 눈길을 줄 수 없었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들은 자동차에 몸을 실은 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자동차는 '가족'이란 울타리 같았다. 가족이란 이유로 오히려 서로를 직면하지 못하고, 힐끗 백미러 너머로 보는 것에 그친다. 달리는 차 안은, 누구도 솔직한 자신을 내비칠 수 없는 공간이다. 다 함께 향하는 곳이 있으니, 자신을 바라봐 달라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너무 위험하니까. 그리고, 모두 바르게 앉아 바라보고 있는 목적지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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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참 어렵다. 나를 바라봐 달라고 하면, 기꺼이 차를 세워 줄 가족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다. 가족들의 기대를 좌절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잠시 휘청이는 것뿐인 나 때문에 잘 가고 있는 차를 세우고 싶지 않다. 우선 도착한 후에, 가족 모두의 기대를 채운 후, 다 괜찮아지면 그때 마주하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겁도 난다. 내가 참아내던 울음을 토하며 나 좀 봐 달라고 했을 때, "위험하게 지금 어떻게 봐?"라는 말이 나올까 봐 두렵다. 그 말이 나를 걱정해서, 사고를 우려해서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서러울 게 뻔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보다 목적지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이 들면, 백미러 속의 시선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게 된다. 역시 나중에, 도착하고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작은 자동차 안에서, 가족은 순식간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사이가 된다. 시선이 향할 수 없는 관계는 절대 솔직할 수 없다. 함께 바라보는 목적지보다, 함께 달리는 길이 더 값지다는 것을 알아야, 서로를 향한 시선이 백미러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듀랑고는 어떻게 가야 하나요?


듀랑고는 '부승'이 가고 싶던 곳이다. 그는 듀랑고를 기대했고, 그의 아들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부승'은 퇴직 후, 홀로 자식을 키울 것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이 있었고,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여행을 통해 해소하고자 했다. 그는 두 아들이 듀랑고에 가면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 큰아들 '아이삭'은 여행은 원치 않았고, 둘째 아들 '지미'는 아버지를 위해 여행을 준비했다.

연극 <듀랑고>에서 '듀랑고'는, 부모가 바라는 자식의 행복과도 같았다. '부승'은 '아이삭'이 의대에 가기를, '지미'가 수영선수가 되기를 바랐다. 그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마치 듀랑고행 기차역에 도착하면 듀랑고에 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무작정 향했던 여행길처럼, '부승'은 대학에 입학하면 그들이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으로 그들이 그 길을 걷기를 바랐다.

하지만 듀랑고행 기차표는 없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한 달 전에 예매를 해야 했다. 기차역에만 가면 듀랑고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식의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의대에 간다고, 수영을 잘한다고 두 아들의 행복과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여행길에 밝혀진 두 아들의 비밀은, 그들의 행복이 대학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

 
듀랑고는 분명 아주 멋진 곳일 것이다. 어쩌면 '아이삭'과 '지미'가 '부승'의 말처럼 정말 좋아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듀랑고에 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듀랑고에 가는 법을 잘 알아봤어야 했다. 그는 조급했을 것이다. 당장에 듀랑고를 눈앞에서 만나고 싶었을 테다. 막막한 앞길을 두고, 어떻게든 무엇이든 하고 싶었을 것이다.

대학 입학만 하면 그 후로는 어떻게든 잘 될 거라 믿고 살아오던 '부승'이 입학을 못 보고 퇴직을 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그들의 대학에 더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하지만, 그가 조금 더 듀랑고에 대해, 자식의 행복에 대해 여유를 갖고 생각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한 달 후에 기차를 타도, 듀랑고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자식도 없다. 아내의 빈자리를 안고 두 아들을 키우는 건 '부승'에게는 참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모든 책임감을 홀로 진 채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왔다. 그렇게 여유도 융통성도 잊고 목표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이론처럼 계산에 맞춰 돌아가지 않는다. 직장도, 자식도, 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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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이삭'에게, '지미'에게 "듀랑고라는 곳이 참 좋다던데, 가는 방법을 함께 알아보자."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여행은 준비하는 순간부터 시작이라던데, 함께 모여 듀랑고를 찾아보고, 기차표를 예매했다면 어땠을까? "6시에 출발한다."보다는 나은 여행이 되지 않았을까?

사랑하니까 더 조급하고, 사랑하니까 더 바라게 되지만, 그럴수록 더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듀랑고행 기차역만 가고 끝날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가족의 행복, 듀랑고에 도착하고 싶다면, 여유 있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듀랑고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니?" 이 질문들이야말로 가족 모두를 위한 여행길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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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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