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생 사랑을 갈구하던 아이의 자유를 향한 마지막 게임 [공연예술]

연극 <엘리펀트 송>
글 입력 2020.01.1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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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이끌어내려는 정신과 의사와 진실을 사이사이에 숨긴 채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환자. 이런 소재가 신선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엘리펀트 송>은 관객들을 인물들의 심리 게임 속으로 완전히 몰입시킨다.

 

마이클은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롭지만 동시에 아주 영리한 아이였다. 간호사 피터슨은 그린버그에게 ‘마이클은 이 병원의 그 누구보다 똑똑한 아이예요.’라고 마이클을 설명한다. 너무나 영리해 의사들을 자신의 게임에 빠져들게 만들 수 있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외롭고 안쓰러운 아이인 마이클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극이 시작되고 병원장인 그린버그는 로렌스 의사 실종의 단서를 밝히기 위해, 그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환자 마이클에게 그와 마지막으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그가 어디로 갔는지를 묻는다. 마이클은 줄곧 코끼리 이야기와 그럴듯하면서도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로렌스를 자신이 죽여 저쪽 옷장에 넣어놨다, 로렌스와 자신이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이야기하는 마이클에게 그린버그는 ‘넌 어떤 것도 제대로 말하고 있지 않다’고 대꾸한다. 하지만, ‘아니요 난 제대로 말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못 알아듣는 거지’라는 마이클의 대답처럼, 마이클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 단 하나의 목표, 의미로 수렴되고 있었다.


“이게 단순히 뭘 확인하고 말고의 문제 같아요? 내 얘기가 나 좀 도와달라는 절박한 외침으로 들리진 않냐고요! 이젠 이 웃긴 연극을 그만 끝내고 싶다는 절박한 외침!”


마이클이 원하는 것은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이었다. 죽음을 통한 자유, 그리고 사랑. 처음 마이클이 ‘내가 원하는 것은 자유’라고 했을 땐 마이클이 정신병원을 나가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이클은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와 트라우마로 인해 결국 사랑을 받아들일 수조차 없는 아이였다. 마이클은 아마 ‘사랑받는 것’에 대한 괴로움에서의 자유를 원했을 것이고, 그것은 죽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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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은 로렌스에 대해 묻는 그린버그에게 끊임없이 코끼리 이야기를 한다.

 

 

“코끼리는 사랑하는 코끼리가 죽으면 슬퍼할 줄도 안대요. 다윈은 코끼리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했어요.”

 

“코끼리는 포유류 중에 임신 기간이 가장 길대요. 22개월! 엄마 뱃속에서 22개월 와 부럽다.”

 

“코끼리가 사라져도 그렇게 걱정해주실 건가?”

 


코끼리의 임신 기간이 22개월이라는 사실을 부러워하던 마이클은 후에 엄마와 친했냐는 질문에 엄마 배 속에 있던 10달 동안만 친했다고 답한다. 마이클은 엄마와 아빠가 유일하게 서로를 사랑했던 24시간, 그 마지막 순간에 생긴 아이였고, 인기 있는 오페라 가수였던 엄마는 마이클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그리던 아빠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러 갔을 땐, 어린 마이클의 눈앞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코끼리를 죽이는 아빠를 마주해야 했다. 그렇게 아빠를 만나고 돌아온 마이클을 처음으로 엄마가 데리러 오고, ‘안소니’라는 코끼리 인형을 주며 오로지 마이클만을 위해 ‘코끼리 노래’를 불러준다.

 

“나한테 희망을 줬어요. 나도 엄마한테 사랑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 사랑을 지속해서 줄 수 있지 않으면 아이한테 희망을 줘선 안 돼요.”

 

코끼리 노래를 들으며 마이클은 이제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보았지만, 엄마는 다시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사라졌다. 희미한 희망조차 사라진 마이클은 자신이 엄마의 방해물이라고 느꼈다. 엄마가 약병을 들고 쓰러져 있을 때도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죽기 직전 마이클이 들어야 했던 말은 ‘사랑한다’도, ‘미안하다’도 아닌 ‘음정 3개를 틀렸어’였다.

 

때문에 마이클은 자신이 음정 3개만도 못한 가치를 가진 아이라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사랑받지 못한, 자신이 가치 없다고 믿게 된 아이는 자신이 항상 주변 사람들을 상처 주는 본성을 타고 났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길밖에 없다고 굳게 다짐했을 것이다.

 

극을 끝까지 본 관객들은 로렌스 의사도, 피터슨 간호사도 마이클을 위해 울어줄 만큼 사랑했는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을까 하며 한편으론 답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로렌스 의사와 피터슨 간호사가 주는 사랑조차 마이클에겐 어차피 사라져 버릴 못된 희망이라 느껴졌을 것이다.


 

“내가 하는 게 협조 아니면 뭔데요? …이거 먹어라. 자라. 일어나라 마이클.  … 하루종일 협조만 하고 있잖아! 오늘 하루만 당신이 내 규칙을 따라주면 안 돼? 오늘은 내가 정한 대로 할 거야! … 오늘은 내 얘기를 경청해주는 사람하고 우아하게 대화할 거야! 알겠어? 날 종이 쪼가리로 분석하지도 않고 내 병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하고!”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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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버그가 진료기록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안 봤어?’라고 묻는 마이클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오늘만큼은 협조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겠다고 선언한다. 마이클은 마지막 하루를 환자가 아닌 ‘마이클’로서 이야기한 후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린버그를 유인할 게임을 구상한다.

 

마이클은 로렌스 의사의 행방을 알려주는 대신, 피터슨은 이 문제에서 빠져야 한다는 것과 진료기록을 보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줄 것, 그리고 초콜릿을 세 개 줄 것을 요구하며 거래를 제안한다. 그린버그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요구들을 받아들인다.

 

마이클의 요구들 역시 ‘죽음’이라는 목표를 위한 길이자, 어쩌면 그것을 알아달라는 신호였다. 만약 그린버그가 진료기록을 본다면 마이클이 극심한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도, 세세하고 딱딱하게 서술된 마이클에 대한 정보, 혹은 ‘편견’들을 알게 될 것이다.

 

마이클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진료기록을 보지 않은, 선입견이 없는 사람과 환자 대 의사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래서 마이클은 당당하게 이야기를 마구 펼쳐놓다가도 그린버그가 진료기록을 보려고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된 듯 쩔쩔맨다. 화려한 언변으로 그린버그를 휘어잡는 것 같지만, 진료기록이라는 사소한 것 하나에 수그러드는 마이클은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그토록 간절히 자유를 꿈꾸는 아이 같다.


마이클이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을 몰랐던 극의 초반에서는 '피터슨은 이 문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의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마이클의 의도를 알고 돌아보면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자신에게 사랑을 준 피터슨에게 마이클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린버그 앞에서 당당한 마이클이 피터슨의 ‘너 괜찮아?, 도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라는 다정한 걱정에는 코끼리 인형 ‘안소니’ 뒤로 숨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그린버그를 게임에 끌어들이기 위해 거짓말로 피터슨에 대해 나쁘게 말하며 도발하다가도, 피터슨이 들어오면 어쩔 줄 모르는 아이가 된다. 그렇게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내면의 상처들 때문에 피터슨이 주는 사랑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마이클의 모습이 한없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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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 끝낸 후 마이클은 아몬드가 들어 있는 초콜릿을 받아 하나씩,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주 태연하게 먹는다. 그 모습에서 마이클은 정말 죽음이 자유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음을 볼 수 있다. 마이클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린버그와 관객들을 끝까지 완벽하게 속이며 초콜릿을 먹는다.

 

마이클은 아몬드 초콜릿을 먹고 죽기 전, 로렌스 의사와 통화를 하며 그가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란 것을 확인한다. 그린버그는 마이클이 로렌스 의사에 대한 답을 내어주기 싫어서 의미 없는 말들만 늘어놓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의 죽음이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마이클은 코끼리에 자신을 투영하여, 자신의 말 사이사이에서 꾸준히 신호를 던지고 있었다.

 

이 안쓰러운 아이는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목소리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마이클을 끌어안고 간절하게 ‘아가, 숨 쉬어’라며 울부짖는 피터슨에게 마이클은 ‘안소니가 사랑한대’라며 안소니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사랑을 어수룩하게 전하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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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버그는 마이클의 게임에 빠져 들어 그를 환자가 아닌 ‘마이클’로 대하면서 마음을 열었다. 그래서 자신이 초콜릿을 줘 마이클이 죽었다는 죄책감이 더욱 클 것이다. 마이클이 오늘 조금 이상하다는 것도,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도 눈치챘지만 막지 못한 피터슨도 어쩌면 이날이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이클의 선택을 탓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90분 내내 죽음과 자유, 즉 사랑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사랑을 갈구하던 아이가 자유를 향한 마지막 여정에선 ‘마이클’로서 대화하고, 자신이 사랑받았음을 확인하고, 안소니의 입을 빌려야 했지만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도 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여정의 끝엔 그토록 원하던 ‘자유’가 가득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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