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망간 두 마리의 토끼,뮤지컬 배우 '산들'의 재발견,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

글 입력 2020.01.08 16: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 맛있지만 너무 과한 재료


 

영조는 탕평책을 논의하는 장소에 탕평채를 양반들에게 제공했다. 탕평채는 검은색, 흰색, 푸른색, 붉은색이 골고루 섞인 녹두묵의 궁중음식으로, 붕당 간 조화를 요구하는 영조의 의도가 들어간 다분히 정치적인 음식이다.


사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렇다. 모든 것들은 이유 없이 형성되지 않으며, 적절한 구성요소의 조화로움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의 서사는 좋은 재료들을 사용했다. 필자가 찾은 서사의 재료를 네 가지(혁명, 신념의 갈등, 가족 간 정치적 갈등, 성장)로 정리할 수 있다. 뮤지컬의 이야기를 소재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우선 뮤지컬의 전체적인 이야기의 배경에 '혁명'이라는 소재가 있다.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루이 14세와 그가 사는 빛나는 베르사유 궁전 뒤에서 뱃가죽을 긁는 백성들 안에서 혁명의 불꽃이 휘몰아친다. 한편, 프랑스의 곤궁한 현실에서 나이 든 삼총사는 '신념의 갈등'을 겪는다. 사실 이 부분을 신념의 갈등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후술 하겠다.


뜨거운 열정을 마음에 품던 청년들은 은퇴 후 각자의 삶을 마무리 짓고 있다. 아토스는 자식, 달타냥은 제자 양성과 왕후와의 사랑, 포르토스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삶, 아라미스는 신앙과 새로운 신념을 선택했다. 그들의 신념은 시간의 흐름과 사건의 전개에 따라 부딪친다. 갈등의 발생과 해결에는 왕가의 피를 가졌지만 잊힌 왕의 쌍둥이 동생, 필립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전과 같이 풋내기 같지 않지만, 여전히 매력적이고 떠들썩하다.

 

왕권에 대한 야망과 그로 인한 자유의 박탈이라는 루이와 필립(아이언 마스크)의 '정치적 갈등'은 달타냥과 삼총사의 갈등을 발생시키고 해결하는 뮤지컬의 주요 갈등이 된다. 루이 14세는 광기 어리고 잔혹한 암군으로 묘사되는 반면, 필립은 순수하고 백성들을 위하는 성군으로 묘사된다. 루이는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필립을 죽이고 싶어 하며, 필립은 강요된 감옥생활로 정신적 외상을 입은 상태다.


두 아들의 어머니인 왕후는 루이의 폭정에 지쳐 필립을 왕으로 옹립하기를 원한다. 루이로 인해 아들을 잃게 된 아토스의 주도로 삼총사는 루이를 필립으로 바꾸는 계획을 세운다. 삼총사의 도움으로 필립은 탈출하고, 왕으로 교육받는 과정에서 정신적 외상을 이겨내고 마침내 선한 왕으로써 '성장'하고, 마침내 루이를 대체하게 된다.

 

 
 

2. 태양왕 루이의 스포트라이트


 

DSC_1035.jpg

 


이처럼 <아이언 마스크>는 재밌고 많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한 뮤지컬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간 탓에 각 이야기가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우선 '혁명'이라는 소재로 극을 시작한 것에 비해, 루이 14세의 폭정을 묘사하기 위한 정도에 그쳤다. 이에 따라 본 뮤지컬에서 드러나는 '혁명' 설득력이나 비장함은 필연적으로 떨어졌고, 마지막 장면에서 필립이 백성들을 돌보는 듯한 연출도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이는 입 모아 정의를 외치는 삼총사에게 쉽게 몰입할 수 없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본 뮤지컬에서 삼총사의 '신념의 갈등'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분명 삼총사에게 배곯는 백성에 대한 연민과 변화에 대한 욕구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신념을 실제로 옮긴 것은 정의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좀 더 개인적인 것이다. 달타냥,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는 각자 배정된 넘버에서 각자 행동하게 된 이유를 노래하지만, 프랑스 현실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그들의 개인적 삶에 대한 고민이다. 개중 달타냥이 그나마 정의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삼총사의 행동에 합류하는 계기는 결국 '사랑'이었으며, 그가 그토록 루이에 신경 썼던 것은 그들 형제가 왕후와 낳은 아들이라는 은근한 암시로 표현된다.


이처럼 혁명이라는 소재가 힘을 잃고 정의를 부르짖는 삼총사와 완전히 합치되지는 않게 되면서 루이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게 되었다. 루이 14세의 광기는 앞서 말한 사건들에 의해 도드라질뿐더러 크리스틴의 넘버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다. 루이의 극단적인 캐릭터와 두 역을 연기하는 한 배우의 특수성 때문에 다소 난잡하게 뭉친 스토리가 루이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이언 마스크>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루이 14세(와 필립)였다.

 

전개에 있어서도 1막보다는 2막이 더 흥미로웠는데, 1막이 앞서 말한 이유로 다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어지러웠던데 비해, 2막에서는 뚜렷한 목표(누가 봐도 악인인 루이 14세의 교체)를 위한 행동이 순행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좀 더 박진감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서사적 스포트라이트뿐만 아니라, 루이와 필립을 오가는 산들의 연기 자체도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는 넘버인 Confrontaiton을 떠올렸는데, 후기를 읽어보니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필자는 배우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감상했기에, B1A4의 멤버가 루이를 맡는지 모르는 상태로 감상했다. 한때 '아이돌'을 한 명의 아티스트로 보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동방신기의 준수를 이어 출중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아이돌 출신이 꼬리표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아이돌 배우가 주요한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의 역량과 별개로 또 다른 논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 예술 애호가라면, 다양성 측면에서 젊은 배우의 대안이 아이돌 배우로만 채워지는 미래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3. 화려한 군무와 의상


 

DSC_5261.jpg

  

 

필자는 뮤지컬을 즐기는 친구의 영향력으로 유명한 뮤지컬들을 영상으로 접하고, 그 마음을 이어 용돈을 털어 대형 뮤지컬인 <위키드>나 <뉴시스>를 직접 보러 간 적이 있다. 하지만 아주 먼 거리에서 감상했었고, 얼굴에 검은 점과 선이 배우의 감정선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필자에게는 큰 규모의 뮤지컬을 배우들의 표정이 보이는 거리에서 감상한 것이 꽤 즐거운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의상이 가장 눈에 띄었다. 프랑스 시대의 아름다운 의복은 각 배우들마다 다르고, 총사대와 삼총사의 옷도 세련되었다. 사실 옷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이 없기에 어떤 부분이 좋은지 말할 수 없었지만, 귀족들의 가면무도회에서는 정말 입을 벌리고 감상하였다. 군무로 표현되는 칼싸움은 색다른 볼거리였다. 연출에 있어서는 대조를 많이 썼다. 주로 루이 삼총사와 달타냥의 갈등, 가난한 백성들과 루이 14세, 루이 14세와 필립의 대조가 눈에 띄었다.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연출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특별히 귀에 맴도는 노래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는 하나로'라는 느낌의 넘버가 귀에 좀 남긴 했지만, 크게 시그니처가 될만한 노래가 없었다.

 

중장년기 배우와 아이돌 배우의 만남, 다양하고 즐거운 소재, 하지만 서사가 어지러웠고, 정의를 부르짖는 이야기가 맥없이 들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상과 배우들의 열연은 인상 깊었고, 루이의 활약은 도드라졌다. 표값이 아깝지 않은 연극이지만, 이야기 전개의 아쉬움이 연극의 뒷맛을 아쉽게 한다. 차라리 루이와 필립에 초점을 맞추고, 삼총사의 비중을 줄였으면 어땠을까?


개인적으로 크리스틴과 아토스 아들의 이야기는 비중을 줄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영화 <아이언 마스크>는 차라리 루이와 필립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야기의 혼란을 감소시켰다. '중장년의 삼총사', '젊은 쌍둥이 왕 루이와 필립'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던 시도는 이야기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의미가 있었으나, 서사에 있어서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형 뮤지컬에서 이러한 시도가 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검토할만하다.


 

아이언 마스크 2차.jpg

 

 

 

KakaoTalk_20180723_235535454_(1).jpg

 

 

[손진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