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두려움을 의식했고 아침에 그가 샤워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래층으로 내려와 함께 아침을 먹을 거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그가 커피를 마시지 않고 곧장 정원으로 나가 버리면 기쁨이 얼어붙었다. 점심까지 기다리다가 그가 한마디도 말을 걸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한 시간 후면 나는 또 소파에 누워 잠들 터였다. 이토록 불행해 하고 투명인간 같고 푹 빠져 버린 애송이에 불과한 내가 싫었다.”<콜 미 바이 유어 네임>, p. 80

주인공 엘리오는 피아노 편곡을 취미로 하는 열일곱살 짜리 남자아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는 혼자서 책 읽는 것을 즐긴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 아이가 정말 답답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좋아하는 감정을 혼자 삭이려 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의 감정을 다 눈치채고 있었으며, 사랑하는 감정이 없는 여자아이에게 욕정을 느끼지만,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 나잇대 남자아이답게도 변덕적이었고, 충동적이었다.
“나는 그처럼 되고 싶은 걸까? 그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그저 그를 갖고 싶은 걸까? 꼬이고 꼬인 욕망 속에서 ‘되다’나 ‘가지다’는 철저하게 부정확한 동사일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p. 89

엘리오가 사랑한 남자는 올리버라는 대학교수였다. 올리버는 소설에서 꽤 매력적인 인물로 나온다. 엘리오의 엄마가 영화배우라고 종종 부를만큼 그를 싫어할 수가 없는 사람, ‘나중에’라는 말로 선을 넘는 질문을 차단하지만, 그렇다고 무례하게 들리지 않도록 신경 쓰는 사람. 아침마다 조깅 또는 수영하고, 맛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시작하면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 아예 시작하지 않겠다”고 참을 줄 아는 사람. 엘리오는 올리버가 말하는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고 하는 말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는 듯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단지 그에게 내 작은 세상을 보여 주려는 게 아니라 내 작은 세상이 그를 받아들여 주길 바라서라는 것을. 내가 여름날 오후면 홀로 찾던 장소가 그를 보고 괜찮은 사람인지 판단하여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래야 훗날 다시 왔을 때도 내가 기존의 세상을 피해 스스로 만든 세상을 찾으러 이곳에 온다는 사실을 기억할 테니 말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p. 101


그러나 로맨스 소설,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는 말로 칭송받는다고 하더라도 허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과는 관련 없는 사건으로도 충분히 괴로워질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은 배제된 채 사랑이 가장 최우선의 가치인 것처럼 서사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을 함께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따위의 따분한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들의 삶은 세월이 흘러도 일상은 가장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사랑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몇 년의 시간 따위는 “몇 년 후”라는 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을 그 시간은 아주 짧게 요약된다.
다 읽고 나서 급격히 돌아오는 여전한 그대로 머물러있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허무해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다음 권 <파인드 미>를 읽고 싶어지는 이유는, 어쩌면 아무것도 해결될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가 달콤한 것을 먹고 싶어 하는 식탐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