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르는 순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도서]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 이야기의 모순
글 입력 2020.01.07 19:1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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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이 책을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영화를 비롯한 어떤 스포일러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순수 백지장 같은 상태로 책을 접했다. 그래서 책이 어떤 장르인지 물어보는 남자친구의 물음에 “그냥 여자와 남자의 사랑 이야기 같은데,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소위 BL 소설(boys love)이라고 불리던 장르의 소설을 중학교 2학년 이후를 기점으로 많이 접했다. 언니와 여동생과 함께, 세 자매로만 이루어진 가족 구성원답게 내면에 있던 성적 욕망과 약간의 관음에 솔직했다. 동생이 추천해주는 소설을 내려받아서 읽었고, 언니가 산 만화책을 다 같이 번갈아가며 읽었다. 어떻게 보면 소설로 접해서 현실이 아닌 상상뿐일지도 모르는 세계지만, 그 세계는 나에겐 분명히 어딘가는 존재하고 있을 현실과도 가까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모든 가정이 우리 집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냥 카페에 나가지 않고도 집 안에서 누워서 마치 MBTI 검사 결과를 이야기하듯이 성적 취향 결과를 이야기하곤 했고, 그것은 전혀 야하거나 비밀스러운 이야기보다는 웃기고 재밌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건 좀 상관없는 이야기긴 한데, 탈코(탈코르셋의 준말)의 붐이 불었던 2019년에 따로 달라진 행동이 없었던 것도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렇게 갇혀진 틀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새삼 깨달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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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책을 집어 들 때, 뭔가 어떤 것을 보기 시작할 때 인식을 하고 보는 것과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마주하는 것은 꽤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더군다나 성인이된 뒤로부터는 로맨스 장르를 쉽게 접하지 않게 되었던 이유도 한몫한다. 로맨스를 내 삶에서 직접 경험하고 나니, 종이에 적힌 글자로 된 로맨스를 읽거나, 약간은 억지스러운 영화 장면들을 보는 것이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위대한 사랑 이야기.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라고 적힌 아트인사이트 메시지에 내 의지로 신청했다. 하나의 육체 안에 두 개 이상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읽기 시작했다.
 
아, 사실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당황스러움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책을 읽기 전에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책의 정보를 찾아보지 말고, 무작정 표지나 제목이 주는 어감이 이끌리는 책을 펼쳤을 때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무언의 암시가 깨지는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내가 소설책을 스포일러 하면서 그에 관한 내용을 리뷰하기 꺼려지는 이유 중의 가장 큰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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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랑이라는 소재를 갖고 하나의 책을 쓰기란 굉장히 힘들다.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나누고, 사랑이 끝을 맺는 아주 추상적이면서도 간단하게, 아무런 감흥 없이 쓸 수 있는 문장을 어떻게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문장들로 만들 수가 있을까.

 


“나는 두려움을 의식했고 아침에 그가 샤워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래층으로 내려와 함께 아침을 먹을 거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그가 커피를 마시지 않고 곧장 정원으로 나가 버리면 기쁨이 얼어붙었다. 점심까지 기다리다가 그가 한마디도 말을 걸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한 시간 후면 나는 또 소파에 누워 잠들 터였다. 이토록 불행해 하고 투명인간 같고 푹 빠져 버린 애송이에 불과한 내가 싫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p.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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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엘리오는 피아노 편곡을 취미로 하는 열일곱살 짜리 남자아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는 혼자서 책 읽는 것을 즐긴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 아이가 정말 답답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좋아하는 감정을 혼자 삭이려 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의 감정을 다 눈치채고 있었으며, 사랑하는 감정이 없는 여자아이에게 욕정을 느끼지만,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 나잇대 남자아이답게도 변덕적이었고, 충동적이었다.

 

 

“나는 그처럼 되고 싶은 걸까? 그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그저 그를 갖고 싶은 걸까? 꼬이고 꼬인 욕망 속에서 ‘되다’나 ‘가지다’는 철저하게 부정확한 동사일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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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오가 사랑한 남자는 올리버라는 대학교수였다. 올리버는 소설에서 꽤 매력적인 인물로 나온다. 엘리오의 엄마가 영화배우라고 종종 부를만큼 그를 싫어할 수가 없는 사람, ‘나중에’라는 말로 선을 넘는 질문을 차단하지만, 그렇다고 무례하게 들리지 않도록 신경 쓰는 사람. 아침마다 조깅 또는 수영하고, 맛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시작하면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 아예 시작하지 않겠다”고 참을 줄 아는 사람. 엘리오는 올리버가 말하는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고 하는 말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는 듯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단지 그에게 내 작은 세상을 보여 주려는 게 아니라 내 작은 세상이 그를 받아들여 주길 바라서라는 것을. 내가 여름날 오후면 홀로 찾던 장소가 그를 보고 괜찮은 사람인지 판단하여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래야 훗날 다시 왔을 때도 내가 기존의 세상을 피해 스스로 만든 세상을 찾으러 이곳에 온다는 사실을 기억할 테니 말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p.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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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의미는 나에겐 조금 놀랍게 다가왔다. 절정에 다다른 그들이 올리버를 엘리오라고 부르고, 엘리오를 올리버라고 부르며 타인을 자기의 이름으로 부르는 장면에서 유래된 제목인데, 정말 야하게 느껴졌다. 엘리오가 사정이라던가, 올리버를 보며 쿠퍼액을 흘리는 것, 복숭아를 그의 엉덩이로 상상하며 자위를 하고 심지어 올리버가 그것을 먹는 장면 등 숨기지 않고 묘사하는 장면은 정말 노골적이며 도전적으로 느껴졌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관계를 맺고 나서 죄책감과 자기 혐오감에 빠지는 모습까지 정말로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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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로맨스 소설,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는 말로 칭송받는다고 하더라도 허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과는 관련 없는 사건으로도 충분히 괴로워질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은 배제된 채 사랑이 가장 최우선의 가치인 것처럼 서사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을 함께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따위의 따분한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들의 삶은 세월이 흘러도 일상은 가장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사랑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몇 년의 시간 따위는 “몇 년 후”라는 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을 그 시간은 아주 짧게 요약된다.

 

다 읽고 나서 급격히 돌아오는 여전한 그대로 머물러있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허무해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다음 권 <파인드 미>를 읽고 싶어지는 이유는, 어쩌면 아무것도 해결될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가 달콤한 것을 먹고 싶어 하는 식탐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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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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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스튜핏
    • 공감가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미소지으면서 봤네요ㅎㅎ 잘 읽었습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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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거아거
    • 2020.01.09 04: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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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스튜핏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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