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미를 잃고 있습니다. [사람]

취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글 입력 2020.01.0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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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나는 요즘 자꾸만 취미를 잃고 있다. 오랫동안 즐겨왔던 나름의 취미들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악기 연주가 취미였다. 피아노, 플롯, 기타, 드럼까지,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은 항상 재미있었다. 피아노는 17년째 치고 있고, 다른 악기들도 기초 과정은 모두 뗄 정도로 배웠다. 하지만 누군가 잘 치냐고 묻고, 한 곡 연주해달라고 부탁하면 매우 곤란하다. 자신 있게 연주할 만한 곡은 한 곡도 없다. 악기는 그저 취미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실력이 되면 수준이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렇게 애매한 수준이 되면 전문적으로 잘하고 싶어진다. 피아노를 나름 17년이나 쳤다는 자부심에 마음만은 즉흥 환상곡을 눈 감고도 친다. 현실은 죽어라 연습해야 칠 수 있을까 말까 한 정도다. 연습은 나름대로 즐겁지만, 취미이기 때문에 ‘죽어라’ 연습할 시간이 없다. 또 연습을 하다가 잘 안되면 즐겁지 않다. 그래서 연습을 안 하면 목표한 곡을 칠 수 없다. 내가 과한 욕심을 가진 것일까. ‘취민데 뭐’라는 마음으로 즐겨야 하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10년째 비슷한 실력에 머무는 건 즐겁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피아노 치는 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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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은 가장 늦게 배웠지만, 가장 많은 애착과 미련을 가진 악기다. 중학생 때 처음 접한 후, 지금껏 배웠던 악기와 전혀 다른 느낌에 매료되었다. 피아노도 지나칠 정도로 세게 치는 나에게는 드럼의 시원한 소리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정말 즐겁게 배우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그만두었지만, 언젠간 다시 배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최근 드럼을 다시 배웠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기대감에 처음엔 즐거웠으나 몸에 힘이 없어서 시원한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려면 운동부터 시작해야 했다. 온 힘을 다해 큰 소리를 내면, 귀가 아파서 피곤하고 치기 싫었다. 드럼의 큰 소리를 좋아하는데, 모순적이게도 크게 치기가 싫으니 즐거울 리가 있나. 그렇게 취미를 또 잃었다.

 

원래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다. 무언가 ‘덕질’할 때 해를 넘겨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노래도 여러 번 들으면 지겨워져서 듣기 싫어진다. 그런 나에게 공연 관람은 좋은 취미였다. 같은 공연도 하루하루가 다르고, 한 공연이 질리면 다른 공연을 보면 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회전문'을 돌지는 않았으나, 꽤 즐겁게 취미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즐겁지 않다. 극장에 가는 길과 수많은 사람들 틈 안에 있다는 것에 대한 피곤함이 앞선다. 이렇게 또 취미를 잃는 것일까.

 

이렇게 취미를 잃어가는 요즘,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낀다.

 

며칠 전,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관람했다. 이전 시즌부터 여러 번 보던 작품이고, OST도 닳고 닳을 정도로 들었다. 그런데도 이번 관람에서 유독 마음에 와닿는 가사가 있다. 인민군 ‘동현’은 가족들이 남으로 떠날 때도 군인으로서 쌓아온 것들을 위해 북에 남아 열심히 싸웠다. 무인도에서 여신님을 만나고, 동현은 자신에게도 ‘가족’이라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어진 길만을 따라서 달려온 그 끝에는 낯선 내가 서 있다. 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달려온 그 끝에는 낯선 내가 서 있다. 나아갈 수도 도망칠 수도 없어 외면했던 그 마음, 그 마음을 찾아 … 길 잃은 날 데리러 난 돌아갈 곳이 있어"

 

-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돌아갈 곳이 있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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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나를 모르겠다. 꿈이나 목표도 없고, 취미는 잃어가고 있다. 내가 안다고 자부했던 나의 모습이 이토록 낯설 수가 없다. 나는 피아노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게 아니었나. JTBC 드라마 <청춘시대> 속 ‘강이나’는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있어도 길을 잃나 보다.’라고 말했다. 나는 나아갈 수도 도망칠 수도 없어 같은 자리에 서서 길을 잃은 나를 외면해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중요한 것, 그 마음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을 뜻한다. 취향이 있다는 것은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고, 그것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길만을 계속 걷다가 만나는 ‘낯선 나’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알고 행동하는 ‘익숙한 나’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고, 무엇을 할 때 기분이 나쁜지, 기분이 나쁠 땐 어떤 것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

 

길을 잃은, 낯설어진 나를 데리러 갈 방법은 익숙한 나를 찾는 과정과 같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말할 수 있도록, 취향을 찾으러 떠나야 한다.

 

하지만 취향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지, 라고 마음먹는다고 바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걸 좋아해야지, 마음먹는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내 마음이지만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공연을 보고 나오면 보통은 ‘좋네.’하고 끝난다.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좋았던 적은 손에 꼽는다. 그 느낌이 그립다. ‘좋다’는 느낌을 가득 느끼고 싶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복권에 당첨된 듯한 축복처럼 느껴진다.


찾기 위해서는 결국 뭐든 해봐야 한다. 많이 경험해봐야 무엇이 좋고 싫은지 알 수 있다. 취미를 잃어가는 지금도 새로운 취향과 ‘익숙한 나’를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잃어버린 취미가 다시 즐거워질 수도, 취향이 더욱 더 다양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고, ‘매우 좋다’는 감정을 마주하기까지 수많은 ‘보통’과 ‘나쁨’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낯설어하지 않으려면, 길을 잃지 않으려면 해봐야 한다. 결국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일 텐데, 나조차도 내가 낯설면 얼마나 외롭겠는가.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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