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라두스의 꿈, 나보코프 "창백한 불꽃" [도서]

글 입력 2020.01.0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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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본래 훌륭한 지적 유희의 방법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쉽지 않다. 첫 문장부터 난이도가 느껴진다.



『창백한 불꽃』, 999행의 영웅시격 2행 연구로 이루어진 이 시는 총 네 편으로 구성되었으며, 존 프랜시스 셰이드(1898년 7월 5일 출생, 1959년 7월 21일 사망)가 생애 마지막 스무날 동안 미국 애팔래치아 지방 뉴와이의 자택에서 집필하였다.


 

소설이라기보다 한 권의 연구서다. 셰이드의 시에 대한 연구서인 이 책은, 연구서 형식과 뒤에 붙은 긴 주석때문에 몰입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초반에는 독자의 권리를 남용하면서 주석을 무시하고 그냥 읽었지만, 이야기가 중반부로 넘어가면 저절로 책의 앞뒤를 넘나들게 된다. 책의 절반 정도를 읽고 나면 이야기에 푹 빠져들기 때문이다. 줄거리의 가닥이 잡히고 나면 페이지가 훌훌 넘어간다.


이 책의 독자는 활자로 이루어진 게임의 참가자다. 난해한 문장의 문턱을 넘으면, 정교한 공예품을 선물로 받은 아이처럼 흥미롭게 이야기에 집중한다.

 

저자는 킨보트, 주인공은 시인 셰이드이다. 저자는 세 번에 걸쳐 각기 다르게 읽어보기를 권한다. 줄거리보다는 시점의 차이에 집중해야 하는 이 작품은 추리소설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저자는 시인의 죽음을 머리말에 미리 말하고, 자신에게 가해질 비난을 세세히 적어놓는다. 사람들은 나를 믿지 않겠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하려오. 이 가장한 듯한 솔직함은 귀 기울이는 독자를 홀리면서도 경계하게 한다.


<롤리타>에서 느낀 나보코프의 특징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서술자를 제일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는 의심을 누르고 읽어야 한다. 화자와 청자 사이의 위계를 (독자는 그를 멈출 수도, 끼어들 수도, 반박할 수도 없다) 정교하게 사용하는 작가의 능력이 얄미우면서도 감탄스럽다.

 

몰락한 왕국과 시인의 작품 이야기가 중첩되는 이 작품에는 네 명이 주인공이 있다. 믿지 못할 화자인 킨보트와 박제품이 된 시인 존 셰이드, 그의 아내 시빌 셰이드와 '그라두스'이다. 그는 화자 킨보트를 암살하기 위해 젬블라 왕국에서 미국까지 쫓아오는 암살자이다. 허상의 인물인 그는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된다.



'우리는 아득히 먼 젬블라를 떠나 푸른 애팔래치아까지 나아가는 그라두스를 끊임없이 염두에 두면서 이 시 전편을 통해 따라갈 것이다. 그는 시의 리듬이 만드는 길을 따라 어떤 각운은 타고 지나가고, 휴지 없이 다음 행으로 이어지는 시행의 끝부분에서는 미끄러지듯 돌아가고, 행간의 휴지부에서는 함께 숨을 고르고,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가듯 한 행 한 행 타고 내려가다 하단에서는 풀쩍 뛰어내린다. (..) 여행가방을 든 채 5보격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이동하다 뛰어내려 새로운 생각의 열차를 타고, 호텔 로비로 들어가 셰이드가 단어 하나를 지우는 동안 침대 등을 끄고, 시인이 그날 밤의 작업을 마치고 펜을 내려놓으면 잠든다'


 

이 매혹적인 묘사는 무언갈 암시한다. 작가의 펜을 따라 움직이고 정지하는 존재. 그라두스는 사심없이 책에 빠져든 독자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이 일련의 판타지. 킨보트는 없는 국가를 만들어 내고, 스스로를 왕이라 생각하고 암살자의 존재같은 환상을 만들어 낸다.


우스울 수 있는 이 노력에 나는 감탄하고 빠져들었다. 그건 왜일까? 독자는 킨보트의 글이 진실을 훼손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정교한 장치를 분석하고, 되짚어 보고, 위대함의 원석을 찾고자 애쓴다. 이 작품에는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예술에 복종하는 작가의 헌신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건, 흠모하는 사람이건 예술이 삶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걸 종종 느낀다. 인생은 그보다 지루하고 실망스럽다. 햇빛이 찬란하게 비추면 나비의 날개는 아름답지만, 그늘 아래서 보면 그저 죽은 벌레가 아닌가. 이 유한성의 무게 아래서 킨보트는 상상의 왕국을 빚어낸다. 보석처럼 빛나는 과거를. 나는 패배한 사람처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킨보트에게 연민을 느낀다.


독자는 킨보트의 시빌 셰이드가 될 수도, 비판적인 교수진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그의 그라두스가 되고 싶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의 목소리를 의심 없이 좇다 결국 함께 몰락을 맞이하는 사람. 독자는 도덕과 윤리를 넘어선 공간에서 진지하게 허구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응원한다. <창백한 불꽃>은 그 세계를 밝히는 작은 촛불이다. 그 곳에서 킨보트는 다시 한번 그라두스에 대한 꿈을 꾼다.



'나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다른 변장과 다른 외관으로 꾸밀지 모르지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나는 많은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사가 허락한다면, 되찾은 나의 왕국으로 배를 타고 귀환해 큰 소리로 흐느끼며 회색빛 해안선과 빗물에 어슴푸레 빛나는 지붕을 반길지도 모른다. 정신병원에서 몸을 움츠리고 신음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디에서 그 장면이 펼쳐지든, 누군가가 어디선가 조용히 출발할 것이다-아니, 누군가는 이미 출발했고, 아직은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표를 사고, 버스 배 비행기에 오르고, 착륙하고, 백만 명의 사진사를 향해 걸어가고, 결국 내 초인종을 울릴 것이다-더 크고, 더 훌륭하고, 더 유능한 그라두스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 걸까? 킨보트와 마찬가지로, 삶이란 물리 법칙보다 더 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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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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