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형 -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글 입력 2020.01.0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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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이든 책이든 영화든 좋아하는 게 참 많아서 누군가로부터 제일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퍽 난감해진다. 모든 작품이 다 저마다의 매력으로 빛나는데 어떻게 그중 하나만을 고른단 말인가. 그러나 시에서만큼은 예외다. 누가 내게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윤동주’라고 답할 것이다.

 

중학교 때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여진 시’를 처음 접하고 너무 좋아서 필사까지 한 기억이 있다. 윤동주가 시를 썼던 일제강점기는 암흑의 시대였다. 끝없는 암흑 속에서 그는 식민지의 지식인으로서 살아가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그의 모든 시에 ‘부끄러움’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나는 그 부끄러움이 좋았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절망적인 자책이 아니다. 자신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현실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윤동주의 시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단연 <쉽게 씌여진 시>였다. 그만큼 그의 부끄러움과 의지를 잘 나타낸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그가 쓴 여러 편의 시를 배웠고 모든 작품을 좋아했지만, <별 헤는 밤>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별 헤는 밤>이 떠올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별 하나에…’로 시작하는 구절들이 말이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본 탓이었다.

 

 

포스터2.jpg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빈센트가 죽고 난 뒤, 그의 유작전을 열려는 동생 테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테오는 유작전을 준비하면서 계속해서 형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몇 번 영상 자료를 접한 게 다일 뿐, 뮤지컬 공연을 실제로 본 건 <빈센트 반 고흐>가 처음이었다. 주변에 몇 번이고 같은 뮤지컬을 보는 뮤지컬광인 사람이 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된 이후부터 공연 예술의 매력을 서서히 알아가는 터라 그가 그렇게 찬양하는 뮤지컬이 어떤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호기심과 기대를 잔뜩 안고 도착한 공연장에서 멜로디를 타고 전달되는 서사와 감정은 내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4).jpg

 

 

초반부 빈센트의 노래에서 흘러나온 ‘달과 별의 하모니’라는 가사는 포스터 문구이기도 해서 이미 내겐 익숙한 말이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하고 그와 관련된 프리뷰를 작성했을 때 그 문구는 내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직접 배우의 목소리로 음악의 형태가 되어 들으니 더없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가사 안에 별을, 자연을 사랑했던 빈센트의 진심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내가 그 가사에서 느낀 건 빈센트의 진심만이 아니었다. 나는 뮤지컬의 거의 시작 부분부터 시 <별 헤는 밤>을 떠올렸다. 그들이 부르는 흥겨운 노래에서 ‘달과 별의 하모니’가 들린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나만의 별을 헤고 있었다.

 

뮤지컬을 보면서 <별 헤는 밤>을 떠올린 건 비슷한 제목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의 영향이 컸다. 나는 오랫동안 두 작품의 제목을 헷갈려 했었다. 시를 두고 ‘별이 빛나는 밤’이라 하고 그림을 두고 ‘별 헤는 밤’이라고 착각한 적이 많았다.

 

나도 뮤지컬 초반에는 단지 제목이 비슷해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별’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력해서 어쩔 수 없이 떠올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뮤지컬이 아무리 진행되어도, <별이 빛나는 밤>이 아닌 다른 그림의 이야기가 나와도 나는 마음속으로 <별 헤는 밤>을 읊조리고 있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형….’

 

잔인한 폭력이 자행됐던 일제강점기에서 짧게 끝나버린 윤동주의 생애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글자가 더 잘 어울린다. 가난과 사람들의 핍박에 시달리다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고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그들에게는 예술이 있었다. 윤동주는 계속해서 시를 썼고 고흐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시와 그림이 있었기에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디딜 수 있었다.

 

뮤지컬의 내용은 크게 새롭진 않았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가 전반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윤동주를 떠올린 상태로 관람하니 또 다르게 느껴졌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에서 자책이 아닌 의지를 보았던 것처럼, 그의 생애에서도 슬픔이 아닌 애정이 보였다.

 

어린 시절 미술사에 관한 책에서 처음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을 봤을 때, 그 아래에 그림에는 고흐의 불안한 내면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고흐의 모든 그림을 그 설명에 따라서 보았다. 자화상에도, 정물화에도, 풍경화에도 항상 고흐의 불안한 내면만을 찾아내었다.

 

뮤지컬에는 그림이 그리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뮤지컬은 스크린에 고흐의 작품을 띄움으로써 실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뮤지컬의 한계를 영리하게 극복했다. 스크린에 떠오르는 건 이미 내가 숱하게 봐왔던 그림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고흐가 저렇게 애정을 담아서 그렸을 것으로 생각하니 기분이 뭉클해졌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3).jpg

 

 

앞서 내가 마음속으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형….’ 이라고 읊조렸다고 밝혔다. 원래 시에서 ‘별 하나에 형’이라는 구절은 없다. 내가 뮤지컬을 보면서 혼자서 떠올린 문장이었다. 형의 유작전을 열어주려는 동생 테오가 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빈센트와 테오, 두 형제의 우애는 모두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빈센트를 논할 때 동생 테오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테오는 빈센트가 죽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최근까지 형을 향한 테오의 헌신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형이라도 고흐의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 게 뻔히 보이는데 화가로서의 형을 끝까지 믿고 지지하는 테오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뮤지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뮤지컬의 테오 역시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사후에 그의 유작전을 준비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뮤지컬은 그런 긍정적인 면만을 담지 않았다. 형이 위험한 사랑에 빠졌을 때, 병약한 몸을 붙잡고 그림을 그리려 할 때 거세게 반대하는 면도 함께 담았다.

 

그래서 테오의 진심이 더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좋은 소리만 나올 리가 없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도 모두 내 것이기에 상대가 자신을 돌보지 않을 때 애정을 기반으로 한 갈등이 빚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테오가 빈센트를 위해 태어난 존재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건 테오의 애정을 희생으로 받아들였던 나의 착각이었다. 그는 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게 아니다. 그저 형에 대한 애정을 자신의 방법으로 표현한 것뿐이다.

 

그래서 별을 헤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윤동주에게서 누구보다 형을 사랑했던, 추억했던 테오가 보였다.

 

*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연이어 보고, 그 사이에 <러빙 빈센트>까지 보았다. 의도치 않게 연말의 대부분을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고흐에 관해 이렇게 자세히 탐구해본 적이 또 있나, 싶다.

 

2019년의 끝에서 나는 드디어 고흐를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많이 아프고 외로웠지만, 그만큼 그림을 사랑했던 내 친구 빈센트. 앞으로 마주하게 될 고흐의 그림은 이전과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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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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