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별을 그린, 별이 된, 별과 같은 그 –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글 입력 2020.01.0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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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는 자살한 형을 그리워하며 그의 생전 작품 전시를 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극의 시작을 알린다. 몸의 절반을 제 맘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점점 기억을 잊어가지만 형의 유작전을 펼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형을 닮은 마음으로 자라도록 ‘빈센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림으로 영원히 남을 그를 기억하며 극이 마무리된다. 그림으로 살고 그림으로 죽은 그의 일생을 눈앞에서 만난 벅찬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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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사랑했던 사람

그림으로 살았던 사람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From 테오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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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화가가 되기로 꿈꾸기 시작한 계기부터 죽고 나서까지의 과정을 모두 테오 반 고흐의 시선에서 담는다. 하지만 테오 반 고흐는 점점 기억을 잊어가는 치매에 걸렸다. 유작전을 준비하는 중에도 형의 작품 순서를 까먹기도 한다. 빈센트와 함께했던 기억을 되돌려 보는 테오 반 고흐를 따라가며 그의 이야기를 만났기 때문에 테오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새삼 떠올라 기억하는 시간들이 더 소중했다. 기억을 잊는다는 건 나 자신을 잃게 된다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마지막 기억일지도 모르는 테오의 이야기를 더 깊게 내 마음속에 새겼다. 형과 나눈 수많은 편지는 남겠지만 그와 함께했던 기억을 잊어가고 눈도 흐릿해지고 몸조차 말썽인 상황에서 유작전을 열고자 하는 노력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에 따른 행동이었음이 충분히 공감되었다. 그가 들려주는 빈센트 반 고흐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신학자가 되고자 했던 빈센트는 종교의 세계에서 중요한 건 믿음보다 이론이며, 진심보다는 권위있는 학벌이라는 걸 깨닫고 절망한다. 또한 뱃속 남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사랑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성사되지 않고 결국 그녀를 다시 한번 지옥에 빠트리게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이 모든 상황에 절망만 느끼게 된다. 아버지의 권위와 명예를 중시하는 이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벼랑 끝 그를 잡아준 건 동생 테오다. 테오는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리고 빈센트는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며 세상을 캔버스에 숨 쉬게 하자’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다.


 

 

생명을 담아내는 울림 있는 그림




인생의 쓴맛을 아는 사람을 그리는 사람. 사람을 닮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어릴 때 다닌 미술학원에서는 내 앞에 놓인 사과나 정육면체 같은 사물을 그대로 그리는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다. 형식과 구도를 정확히 따라 하며 실제를 구현해내는 미술을 배웠기에 그림을 볼 때 얼마나 실사와 닮았는지를 보았다. 그래서인지 피카소의 작품과 같이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모습으로 그려진 작품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림이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흐의 작품은 특이하게 기억에 남았다. 분명 현실이 아닌 것 같은데 현실인 것 같은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했다. 그리고 내가 많은 그림들을 접한 것은 아니지만 고흐라는 화가의 작품은 현실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현실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별이 빛나는 밤>은 평화로운 마을과 무한함이 느껴지는 밤하늘이 있다. 나도 별과 바람과 달빛들 사이로 격렬하게 빠져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림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그가 무슨 마음으로 그림을 구상하고 스케치하여 붓 터치를 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궁금증이 끝없이 생기는 작품이기에 집에도 퍼즐로 이루어진 고흐의 그림들이 걸려있기도 하다. 이렇게 형식과 구도에 얽매이지 않고 캔버스가 담고 있는 생명력을 전해주는 화가로 기억되는 고흐는 내가 느낀 것처럼 그림에 생명을 담아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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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초라한 집,

꺼질 듯한 불빛 아래서

감자를 먹고 있는

자신의 인생을 꼭 닮은 손

거칠고 투박하지만

자신의 땀으로 캐고 땅에서 얻은

그 결실을 먹는 손

이게 내 그림이 말하려는 것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그 속에 있는 더 큰 진실함을 찾는 화가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추구했던 나에게 충격을 안겨줬고 그 이후,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사람이 느끼는 기쁨, 고통, 슬픔, 벅참, 희망, 절망, 고단함 등 모두를 담았다.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말을 하면, 나는 땅에서 피어나는 새싹이 떠올랐다. 탄생, 시작과 희망이 곧 생명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빈센트 반 고흐>를 통해서 인간의 모든 살아있는 감정, 이 세상 모든 생명이 품고 있는 에너지 또한 생명력에 포함된다고 깨달았다.


삶의 고통, 비극, 슬픔, 절망을 포함해 삶에서 느낄 수 있는,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이 생명력이었다. 고흐는 이 생명력에 색을 입혀 표현해냈다. 그래서 현재의 사람들도 고흐의 작품을 보며 각자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어 그의 작품을 찾는 것 같다. 생명력에 색을 입힐 수 있게 되었을 때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 상태에 빠졌던 그 과정을 생각하면 함부로 그의 인생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이 뮤지컬을 통해 그의 삶에 있었던 여러 감정과 상황들을 만나게 되어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졌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1).jpg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4).jpg

 


그리고 이 뮤지컬만의 3D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무대에 펼쳐진 고흐의 작품을 볼 수 있어 더 그의 마음이 와닿았다. 관객들은 꽃 피는 아몬드 나무로 둘러싸여지고, 고갱을 맞이했던 그의 방에 들어가 보고, 주변 곳곳에 펼쳐진 그의 자화상을 보게 되고, 별이 빛나는 밤에서 고흐를 만나게 된다.


 

 

그림과 함께하는 삶




여전히 그림은 팔리지 않고

기운 빠지는 생활의 연속



고흐는 생계를 이어갈 만한 확실한 수입 거리가 없었다. 넘버 <돈이라는 놈>에서도 고흐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델료가 충분하지 않아 인물화 대신 정물화를 그리고, 자화상을 그린다. 끼니 대신 물감을 사며 정신적 배고픔을 해결한다. 편지에서도 동생에게 돈을 빌린 미안함이 뚝뚝 묻어난다. 하지만 그림만이 무의미했던 고흐 인생의 탈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붓과 캔버스를 놓을 수 없었다. 삶이 힘들지만 누구보다 진실이 보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단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삶을 견딘다. 그래서 더욱 인생의 쓴맛을 아는 사람을, 농민들을, 주변 사람들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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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자신의 미술 인생을 바꿔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고갱이다. 하지만 화가로서 완벽한 동반자라고 생각했던 고갱의 만남은 극심한 갈등으로 끝이 났다. 고흐는 프랑스에서 고갱에게 공동 작업을 하자고 제안해 두 달 동안 같은 공간에서 같은 대상을 그린다. 하지만 계속해서 충돌만 일어났고 결국엔 너무나 다르다는 걸 깨달은 고갱은 떠나지 말라고 절규하는 고흐를 두고 떠나버린다.



그림을 위해 생명을 걸겠어. 그림 때문에 난 많이 아팠고 사람들은 날 미친놈이라 기억하겠지만 아무래도 좋아. 계속 그릴거야.



고갱이 떠난 후, 그는 귀를 자르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리고 파리 근교 오베르에 정착해 생활하다가 권총으로 삶을 마감한다. 그림과 함께한 그의 삶이 온전한 기쁨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온전한 기쁨이었고 그의 그림은 누구에게나 온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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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가 전해주는 빈센트 반 고흐의 일생은 별과 같다. 별은 저마다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보이는 밤하늘엔 별이 거의 없다. 강렬한 색을 띠고 있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분명히 존재한다. 고흐도 세상에 그런 존재이지 않았을까? 얼마나 멋지고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그의 아버지와 안톤 선생님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이 알지 못했다. 생명을 건 그의 그림들을 왜 그리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하지만 하늘에 있는 별의 절반 정도는 다른 별 하나와 인력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테오와 빈센트처럼. 빈센트는 테오가 있었기에 그림을 시작했고 심장이 뛰는 이 일을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테오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가 죽고 나서 테오의 노력으로 사람들이 이 별의 존재와 가치를 알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일생이 찬란하게 빛나지는 못했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은 찬란하게 영원히 빛나고 있다. 달과 별의 하모니로 가득 찬, 테오와 빈센트가 기억나는 밤이다.

 


내 삶의 절정, 그림을 완성하네

내 그림을 위해 내 생명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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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 그림에 인생을 건 한 남자의 이야기 -

 


일자 : 2019.12.07 ~ 2020.03.01


시간

화, 수, 목, 금 8시

토 3시, 7시

일 2시, 6시

월 공연 없음

 

*

01.24(금) 2시, 6시 공연

01.25(토) 2시, 6시 공연

01.26(일) 2시, 6시 공연


장소 : 예스24스테이지 1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4,000원


 주최/기획

에이치제이컬쳐 주식회사


관람연령

만 12세 이상


공연시간

110분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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